그양 가요
윤기정
잘 있으라며 손 흔드는 김 선생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홱 돌아서며 손자 주영이가 중얼거린다. “그양 가요.” 처음 만났는데도 낯가리지 않고 손잡고 걷기도 하며 할머니, 할아버지보다 김 선생 내외를 따르더니 헤어지기 서운했던 모양이다. 그래도 그렇지 ‘냥’ 소리도 내지 못해서 ‘양’으로 발음하는 어린 것이, 한 달 뒤에나 세 돌 되는 아이의 입에서 나온 말이 뜻밖이었다. 돌아설 때의 표정에 아쉬움이 가득했다. 이 어린 것이 벌써 이별의 심사를 아는가 싶어서 가슴 한편이 서늘했다. 아내가 손자의 마음을 보듬어주려 버쩍 들어 안았다. “왜 ‘그냥 가요.’ 그랬니?” 할머니가 묻자 주영이가 답했다. “부끄러워서요.” ‘아쉽다’라는 뜻이려니 짐작했다.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 소월의 시구가 언뜻 스쳤다. 올 초 이웃이 된 김 선생 내외와 함께 도서관 행사로 춘천의 한 수목원 탐방을 다녀온 날이었다.
강변 산책에 나섰다. 5년째 거의 거르지 않은 산책길, ‘하늘사랑길’이다. 길 한쪽 끝에 있는 천주교 순교 기념 성당이 있어 붙여진 이름 같은데, 길에서 바라보이는 하늘은 너르고 높고 푸르러서 그것만으로도 이름값을 한다. 강폭은 넓다. 강 건너 높고 낮은 산 능선이 겹겹이 물결을 이룬다. 그 강과 산 위로 너른 하늘이 펼쳐있다. 강기슭에는 갈대가 무성하다. 올봄 새로 난 갈대 틈틈이 묵은 갈대가 섞여 바람에 흔들린다. 묵은 갈대는 늙은 병졸의 벙거지에 매달린 꼬꼬마처럼 낡은 갈목 두어 갈래 달고 어린 갈대 틈에서 목을 길게 뽑고 서 있다.
지난가을부터 봄까지 강변의 모진 북서풍에 주저앉지 않고 용케 견딘 몇 안 되는 녀석들이다. 신·구세대가 같이 흔들리며 한 하늘을 이고 서 있다. 먼저 주저앉은 갈대를 발목에 감은 채 함께 서 있으나 그 시간은 길지 않을 것이다. 늘 그랬던 것처럼 강변은 곧 어린 갈대의 푸름으로 가득해지리라. 그렇게 갈 숲의 시간이 흐르고 세대가 바뀐다. ‘그양 가요.’ 시간이 흐르는 갈대밭을 보노라면 손자의 말이 갈잎을 스치는 바람결에 들려오는 듯하다.
당뇨 치료약을 먹기 시작한 지 십 년도 더 됐다. 크게 악화하지도 않고 눈에 띄게 좋아지지도 않는다. 6개월마다 의사와 상담한다. 채혈과 상담을 하루에 하자면 병원에서 서너 시간을 머물러야 한다. 그게 싫어서 채혈은 일주일 전에 한다. 8시간 금식, 공복에 1차 채혈, 식후 2시간에 2차 채혈이다. 전날 저녁부터 굶고 새벽에 채혈실 문 여는 시간에 맞춰서 병원에 간다. 1차 채혈하고 아침 식사를 한다. 두 시간 지나서 2차 채혈이다. 두 시간 기다리기가 무료하여 병원 근처의 산책로를 걷는다. 이번처럼 아내가 따라나선 날은 같이 걸어서 고맙고 덜 쓸쓸하다. “다음 주야. 예약해 놓았으니 쓰자고” 연명치료의향서 얘기를 확인했다. ‘그양 가요.’ 손자의 말이 또 귓전을 울린다. ‘그래, 갈 때 되면 그냥 가는 거야.’
다시 하늘사랑길에 섰다. 7월의 갈 기슭에서 갈목 받쳐 든 묵은 갈대는 어느새 사라졌다. 사라진 게 아니라 싱싱하고 푸른 갈대 사이사이에 무릎을 꺾고 주저앉았다. 묵은 갈대들은 ‘그양 갔을까?’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라는 정서와 ‘그양 가라’는 정서는 멀지 않은 곳에서 서로 닿아있지 않은가? 봄에서 여름 사이 강변의 갈대숲에는 묵은 갈대와 새 갈대가 함께 살았다. 손자와 함께 하는 삶도 일 년으로 치자면 봄과 여름 사이의 시간만큼이나 될까? 주영이가 서른 살 때쯤 결혼을 한다면 내 나이 아흔일곱이다. 손자의 결혼식을 볼 수 있을까? 손자 출생을 앞두고 담배만 끊었을 뿐 술 좋아하는데다가 당뇨병까지 있으니 백세시대라도 쉽지 않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검사 결과는 나빠지지도 않고 좋아지지도 않았다. 의사 상담이 끝나고 연명치료의향서 작성하는 사무실로 갔다. ‘호스피스 병동 이용 여부, 연명 치료 거부, 완화 치료 수용’ 크게 세 가지 항목의 설명을 듣고 아내도 나도 서명했다. 관계 기관을 통해서 모든 병원에 통보가 된단다. 내용은 열람 가능으로 해두었다. 아들에게 일러두었으나 나중에 확인이 필요할 때에 대비해서다. 의식이 명료할 때 내 문제를 정한 것이 못내 기껍다. ‘그래, 때 되면 그냥 가는 거지.’
몇 달 후 카드를 보내준다는 말을 뒤로하고 병원을 나섰다. 연명치료 의향서를 작성하면서 유서 쓰는 기분이 들었다는 사람도 있지만, 유서를 써보지 않았으니 잘 모르겠다. 무언가 매듭을 짓는다는 홀가분한 느낌이지 그리 비장한 느낌이 드는 것은 아니었다. 손자 주영이의 말마따나 ‘그양 간다.’라는 약속을 한 것뿐이다. 주영이가 헤어지는 아쉬움이나 아픔을 너무 일찍 알지 않았으면 좋겠다. 해도 해도 익숙해지지 않는 이별이 손자에게는 많지 않았으면 좋겠다. 푸른 갈대들이 싱그러운 바람결에 한가하게 서걱대는 강변이 불현듯 보고 싶다.
《들꽃 하나 꽂아놓고-아리수 강가에서 14호》 2019.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