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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명 : 봉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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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화위봄<轉禍爲春>    
글쓴이 : 봉혜선    20-07-13 23:57    조회 : 6,150

전화위봄<轉禍爲春>

 

봉혜선

   만보기에 14 걸음이 나왔다. 많이 할 때는 수영, 벨리, 요가, 필라테스 까지 했던 운동을 이렇게까지 줄일 수 있을 줄 몰랐다. 25년 하던 운동을 멈춘 계기는 코로나-19. ‘타발적아니 자발적 거리두기 중 교통카드 청구서가 도착했다. 한 달 요금 1250. 지하철 편도구간 운임이다. , 생각난다. 어느 날 우발적으로 나갔다가 되돌아 온 적이 있다.

   사람의 호흡이 매개인 전염병은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신조어를 일상의 주인으로 만들었다. 1월 어느 날 남편이 아들에게 인터넷으로 마스크를 사라고 했다. 가격은? 100개에 20만원이란다. 푸르르하며 질겁하는 내 앞에서 결제가 이루어 질 때만 해도 마스크 대란에 휩싸이게 될 줄은 몰랐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체육센터가 문을 닫고, 정기적으로 다니던 문학 강의와 인문학 강좌로 향하는 길도 막혔다.

   폐쇄공포가 있는 내게는 마스크를 써야 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한 사태이다. 가부장적 남편의 권위주의적 행태에 짓눌리며 한 마디도 못하던 때 생긴 고질병은 평소에는 증상이 없다가도 막다른 골목에서는 여지없이 불길이 되어 휘감아온다. 외출할 데가 없어진 요즈음 주말에 밭에 가는데도, 분리수거를 하러 나가면서도 마스크를 써야 한다고 타박해서 못하겠다고 남편에게 슬며시 미루었다.

   남편은 기저 질환이 있다. 회사와 집만 오가며 세 끼 밥을 집 밥과 도시락으로 해결하는 남편은 외부라고는 집에서 차까지의 거리뿐인데도 마스크를 잊는 적이 없다. 속만 안 좋아도 나에게 추궁한다. 장이 약한 가족력을 갖고 있는데 무슨 상한 음식을 줬냐고 큰소리한다. 내가 설마 상한 음식을 줬겠나? 같은 음식을 먹어도 멀쩡한 나는 다음날 도시락에 상하지 않을 멸치조림과 김치만 넣으며 소심한 복수를 해보지만 속은 편하지 않다.

   한 달에 마스크가 하나만 필요한 내가 들어앉아 생각하는 건 마스크 장사는 물 만난 물고기처럼 신이 나겠구나, 선거철을 기다리는 사람은 선거에 나오려고 절치부심하는 후보 뿐 아니라 선거운동에 동원되는 임시 계약직이나 현수막을 만드는 소상공인이겠구나 등이다. 변방이라고 늘 변방인 건 아니다. 삶에는 양면이 있고 누구라도 한 방은 있다. 역지사지해야 하는 이유이다.

   저마다 속한 자리가 있다. 부모, 자식, 형제, 친척, 친구, 동료에서 상사와 부하, 지연, 학연, 나라에도 속해 있는 등 자의든 타의든 전후좌우로 관계에 묶여있기 마련이다. 역할도 다르다. 학생과 선생, 관객과 공연자, 운동회원, 합창단원, 식당의 손님과 주인, 소비자와 생산자 중 빠질 수 있는 자리라고는 없어 보인다. 팔색조처럼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며 보람을 찾고 사는 맛을 느끼는 건 극히 자연스러운 일상에 속한다. 소중하지 않다고, 미약하다고 생각하는 하나하나의 내가 빠지면 사회 전체가 흔들릴 수 있다. 한 번뿐인 일생은, 각자의 자리는 그토록 소중하다. 움직임을 그친 후의 생활은 주제 사라미구가 그린 <<눈 먼 자들의 도시>>를 떠올리게 한다. 눈 뜨고 코 베이는... 멈춰 선 자리에서 마스크 속에 입과 코를 감추고 길을 잃지 않으려고 눈만 반짝이고 있었다.

   마라톤 출발선에 선 선수처럼 봄은 겨우내 비축한 힘을 내뿜어 올렸다. 너나없이 자연을 자랑삼아 축제장을 만들던 행사는 무산되었다. 나무는, 자연은 준비하지 않고는 여름을 맞을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으며 축제와 행사에 관계없이 무수한 잎들을 내밀고 있다. 자연은 쉴 때와 성해야 할 때를 구분한다. 어려움을 넘기면 머지않아 사람의 물결은 꽃을 찾고, 여름의 해변으로, 가을 단풍 속으로, 겨울의 눈 덮인 산천으로 몰리겠지. 자연으로 또다시.

   마스크는 20여 년 전 월드컵 응원을 하며 ! 필승 코리아를 외치던 붉은 악마의 하나 된 기운을 떠올리게 한다. 흰 마스크는 머리에 흰 띠를 매고 편을 나누어 한바탕 힘을 겨루던 줄다리기와 차전놀이를 연상케도 한다. 승리보다 더 많은 인원이 참가하는데 의의를 둔 전통놀이이다. 생각보다 행동을 먼저 해야 하는 마스크는 생각은 방역 당국이 했고 행동은 국민이 해냈다. 손에 손잡고 둥그레지는 강강술래 놀이 전통이 있는 우리 국민이 승리를 거두고 있다.

   ‘살구꽃이 처음 피면 한 번 모이고, 복숭아꽃이 처음 피면 한번 모이고, 한여름에 외가 익으면 한번 모이고, 서늘할 때 서지(西池)에서 연꽃 구경을 위해 한번 모이고, 국화가 피면 한번 모이고, 겨울철 큰 눈이 내리면 한번 모이고, 세모에 분매(盆梅)가 피면 한번 모인다.’-정약용 <竹欄詩社>

   하기 싫고 보기 싫고 듣기 싫고 먹기 싫고 가기 싫지만 해야 하는 일상을 멈추고 집안에 들어앉아 내 안의 부름에 집중하며 들여다보는 나는 그간의 나와 확연히 다르다. 매일의 바쁘던 24시간도 다르게 흘러간다. 좀 더 찬찬히 자세히. 가까운 것들을 들여다 볼 기회를 얻었다. 바깥에 나가는 생활만큼 집안에서 하는 생활이 중요하다. 마스크가 가린 각진 턱 덕에 부드러워진 얼굴에 카메라를 돌려 대고 미소지어 본다. 일상의 회복을, 전혀 다르게 다가올 새로운 일상을 기대하며.

  

봉혜선

서울 출생

<<한국산문>> 등단

한국산문작가협회 회원

ajbongs60318@hanmail.net

 

전혀 다른 생활도 가능하다, 가능하다,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너에게 가고 있다

                                                                              (한국산문 2020. 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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