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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명 : 진연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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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원짜리    
글쓴이 : 진연후    20-07-21 23:35    조회 : 6,232

30원짜리

진연후

“아빠랑 나는 스마트폰이 아니라서 사진을 받아도 잘 안 보여요. 다음에 올케가 오면 보여 줄 거예요.”

순간 아버지의 얼굴에 아쉬움이 가득하다. 동생이 미국으로 공부를 하겠다고 간 지 3년 만에 자격증을 땄다. 그동안 부모의 바람이 얼마나 간절했는지는 부모라면 누구나 짐작이 가능할 테고, 자식은 아마도 부모가 되어야 그 맘을 헤아리게 되지 않을까싶다.

학교 공부를 마치자마자 시험을 봤고 11월에 결과가 나왔다. 그 사이에 올케와 조카들은 한국으로 들어왔고 동생만 그곳 로펌에 취직을 해서 남아있다. 12월에 자격증을 받았다고 전화로만 들었는데 며칠 전 올케를 만났더니 자격증을 받고 찍은 사진과 한인 신문에 이름이 난 기사를 스마트폰으로 보여주었다. 말로만 들었던 것보다 실감이 나고, 순간 시골에 계신 부모님은 더 보고 싶어 하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말에 집에 가서 말씀드린 건데 아무래도 명절까지 기다리기가 긴 것도 같고 왠지 뭔가가 부족한 것 같다.

“아빠, 내가 올케에게 그거 사진으로 인화해 달라고 할까요?”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러라고, 사진으로 뺄 수 있는 거면 그렇게 해 달라고 하신다. 아마 올케는 그걸 뭐 민망하게 사진으로까지 빼느냐고 할지도 모르겠다. 시골 동네라서 동네 어른들이 합격 축하를 현수막으로 해 주겠다고 했을 때의 올케 반응을 생각하니 짐작되는 일이다.

자식 자랑이 자식 자리에서는 민망하기도 하고, 그리 자랑거리가 아닌데도 자랑스러워할 땐 부끄럽고 죄송하기도 하다. 하지만 부모처지에서는 자식이 건강하게 커 주고 나름대로 제 몫을 한다고 생각하여 뿌듯해 하시니 그걸 모른 척 외면할 수가 없다.

동생에게 전화를 했다. 내 메일로 사진 좀 보내라고. 내가 메일로 받아서 인화하는 방법이 생각났다. 그 방법을 들은 아버지는 속 시원한 표정으로 사진 크기까지 정해 주신다. 아버지의 기쁨을 함께 누리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면 나는 그렇게 할 것이다. 남들에게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니고 누군가를 속이는 것도 아니니 굳이 그것을 못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박태원의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에서 어머니는 구보씨가 몇 푼의 돈을 만들어 치마를 해주었을 때 이웃에게 묻지도 않은 자랑을 한다. 자식을 자랑할 때 어머니는 얼마든지 뻔뻔스러울 수 있다면서??? .

삼 남매를 키우면서 속 썩은 적 없다고, 잘 커 주어서 고맙다는 부모님께 나는 애물단지이다. 각자 가정을 이루고 부모님께 손주들을 보는 기쁨을 주는 동생들과 비교하여 장녀로서 여태 짝도 구하지 못하고 있는, 더구나 최근 몇 년 동안 몸이 좀 아팠던 나는 늘 걱정거리이다.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효도는 범위가 넓지 않다.

나는 하루에 한 번 이상 전화를 한다. 시외 전화 통화료는 한 통에 30원이다. 주로 아침 8시경 엄마와 짧게는 오분 길게는 삼사십 분씩 통화를 한다. 이틀에 한 번씩은 아버지와도 통화를 한다. 아버지는 엄마와 길게 통화를 하면 전화요금 많이 나온다고 빨리 끊으라고 재촉을 한다. 전화국에 시외전화 요금제를 선택한 것이 있어서 길게 해도 30원이라고 하면 그럼 또 전화국에 미안하다고 빨리 끊으란다. 암튼 매일 30원 일요일에는 90원으로 부모님의 이야기를 들어드리는 일이 내가 하는 자식노릇이다. 하루에 한 번 이상 전화 드리고 2주일에 한 번씩 집에 내려가는 것, 엄마가 해 주는 밥을 맛있게 먹고 아버지가 좋아하는 아이스크림과 단팥빵을 사다 드리는 것이 고작이다. 그리고 가끔씩 남들에게 하기 뭐한 농담 같은 계획이나 자랑 등을 들어주고 맞장구 쳐 드리는 일이 내 몫이다.

‘봄바람’의 작가 박상률은 아들 나오는 프로그램을 다 챙겨보시고 아들 글이 실린 신문을 구독하며 행복해하시는 부친 생각에 신문이나 방송에도 신경 쓰고, 효도한다는 생각으로 망설이던 대담프로에 나가는 걸 결정짓기도 했단다. 대담 사진이 신문에 실린 다음 날, “아버지가 네 사진 보고 밥 한 술 더 드셨다.”고 어머니가 전하더라는 이야기를 하는 작가의 표정에서 뿌듯함을 느낀 건 부러운 내 마음이었을까? 효도의 정석을 보여 주는 일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노인 우울증에 대한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자식들이 일주일에 전화 한 통화 드리고, 한 달에 한 번 찾아뵙는 것이 우울증을 많이 감소시킨단다. 효도라는 말은 좀 거창하고 그저 내 수준에서 할 수 있는 방식으로 부모 마음을 헤아려 볼 뿐이다.

힘든 공부를 잘 해내고 좋은 결과를 얻어 부모를 기쁘게 한 동생의 결과물에 슬쩍 묻어가며 나는 오늘도 겨우 30원짜리 전화 한 통으로 애물단지 효녀(?)가 되어 볼까 한다.


문학사계 2020 여름 7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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