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술사의 노래
오길순
물로 황금도 만들 수 있을 듯, 그들은 불가능이 없어 보였다. 바다를 소용돌이 칠 듯, 거침이 없어도 보였다. 연금술사가 그러할까? 영웅도 그러하리라. 베일에 숨겨진 유명세는 태양을 향한 이카루스처럼 신비해 보였다. 피해자의 원작으로 쏘아 올리고도 아직도 태양궤도를 돌고 있는 <<엄마를 부탁해>>이야기이다.
구약성서 <욥기>의 주인공 욥은 외쳤다. 정의가 옷이었으며 공평이 두루마기요 면류관이었다며 신에게 부르짖었다. 피해자도 부르짖고 싶었다. 가해자에게 씌운 1심 면류관이 정의였느냐고. 혹시 그들은 아벨의 가면을 쓴 카인이 아니었느냐고.
피해자는 <사모곡>을 <<엄마 부탁해>>에 앗겼을 때 어찌 할 바를 몰랐다. <<목동은 그 후 어찌 살았을까>>를 앗긴 줄 알았을 때는 하늘이 무너지는 줄 알았다. 그래도 진실이 죄가 될까봐 침묵해야 했다. 베일 속 그들의 유명세는 산맥 하나 쯤 옮길 위력을 지닌 성 싶었다. 2018년 10월25일, 표절의혹을 받고 있는 <<엄마를 부탁해>>(신경숙)에 대한 2심 첫 공판 날이었다. 원고 오길순은 벅찬 호흡을 가누며 마지막 발언을 하는 중이었다. 하필 그 순간, 판관이 비스듬히 옆으로 몸을 숙이더니 무얼 찾았다. ‘정해진 판결문에 진실 쯤 묵살하려는 것인가? 순간의 해찰로 양심을 외면하나?’
판관은 곧 2심 종결을 예고했다. 2년 이상 걸린 1심인데 한 달 여로 서둘렀다. 그리고는 아직 읽지 않았으니 한 번 읽어보겠다며 끝을 맺었다. 그 거대표절내용을 아직 읽지도 않았다고? 365일 분석으로도 다 못했는데 이제야 한 번 읽어 보겠다고? 참으로 의아했다.
2018년 12월 6일 2시 20분, 항소심인 2심도 가해자들에게 면류관을 씌웠다. 그들은 정말 연금술사였나 보았다. 불가능을 모르는 영웅이었나 보았다. 황금도 물로 만들었다는 듯,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연금술사라는 듯, ‘연금술사의 노래’를 합창하는 것 같았다.
‘아름답게 살기 위한’ 인생 이모작, 그 신성불가침 영역을 침범 당하지 않았던들 피해자의 노년도 행복했을 것이다. 연금술사 같은 카인의 덫에 걸리지 않았던들 평화로웠을 것이다. 피해자의 일생을 유린하고도 창작이라 주장하는 그들 앞에서 세상도 숨을 죽였나 보았다. 한 번 읽어 보겠다던 판관도 피고야말로 무소불위 영웅이라고 칭송하는 것만 같았다.
<<엄마를 부탁해>>는 원고 수필집<<목동은 그 후 어찌 살았을까>>를 그대로 차용했다. 주제 구성 인물 배경 등 소설의 중요 요소가 모두 수필집에서 비롯되었다. 진정 피고의 어머니였다면 가련한 여인을 그토록 사체명예훼손 했을 것인가? 소중한 어머니 영혼이 허공을 떠돌 때면, 가해자에게 찢긴 흰 치마폭이 구름 속에 나부끼는 것 같은, 그 가눌 길 없는 피해자 슬픔을 누가 알랴!
문학작품표절을 ‘문장대 문장’만으로 몰고 간 판결은 편견일 것이다. 동일스토리며, 수천구절 수천핵심 언어의 유사성 묵살은 무지였을 것이다. 쌍둥이 디엔에이며 사투리, 문체는 어찌 할 것인가? 바다도 소용돌이 칠 듯, 물로 불도 만들 수 있다는 듯, 현란한 가해자 화술에 눈 질끈 감은 판결은 아니었을까?
가해자는 차용과 표절이 다르다고 말했다. 범죄는 했으나 범죄인이 아니라는 변명은 표절을 시인한 것과 다를 바 없어보였다. 주인 모르게 가져간 재산은 장물일 것이다. 피해자 모르게 차용한 글은 표절일 것이다. 이 불멸의 법칙을 지키지 않는다면 카인이 틀림없을 것이다.
2018년 12월 6일은 거짓 연금술사들의 가면놀이를 본 것 같다. 아벨의 탈을 쓴 카인의 민낯을 본 것도 같다. 태양도 정복한 그들은 이제 스스로 새긴 주홍글씨를 날개삼아, 이카루스처럼 더 높이 날아오를 것이다.
문학 秀 2020.5/6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