옹기가 놓인 풍경
부엌 뒷문을 열면 장독대가 있었다. 돌로 단을 쌓고 자갈을 곱게 깔았다. 장독대를 보고 딸을 데려간다고 해서일까. 윤기가 반지르르하면 그 집안 주부의 됨됨이나 살림 솜씨를 가늠할 수 있다고 들었다. 채송화로 촘촘히 둘러싸인 장독대는 토담과 어우러진 한편의 정물화였다. 그래서 사계가 모두 멋스러워 보였다.
대청에 누워 액자 같은 쪽문으로 보이는 장독대를 보며 ‘단란한 가족’ 같다고 하니 엄마가 빙그레 웃으셨다. 잔칫날 삼대가 모인 흑백 가족사진처럼 독, 항아리, 동이, 자배기, 시루, 소래기 등 갖가지 옹기들이 오순도순 정다운 모습이었다. 반질반질하게 잘 닦아 놓은 항아리 곁에 의붓자식 같은 항아리도 더러 있었다.
시멘트공장에서 날아온 석회가루가 굳어져 각질처럼 살이 튼 빈 장독이었다. 유황도 바르지 않은 민무늬의 독은 전쟁통에도 살아남은 독이었다. 축대에 올려 엎어두었다가 김장하는 날 배추 절임용으로 사용하곤 했다. 가끔 길고양이가 와 뜨끈하게 달구어진 빈 독에 올라앉아 있다가 부지깽이에 혼이 나기도 했었다.
덜 익은 파란 참외 속을 긁어내고 소금을 뿌려 물기를 뺀 다음 된장이나 고추장에 묻어 두면 겨우내 밥도둑 반찬으로 최고였다. 봄에는 삭히지 않은 마늘종을 묵힌 고추장에 묻어 두었다가 도시락 반찬으로 먹었다, 된장에 버무린 고추, 깻잎, 콩잎도 최고의 장아찌였다. 축대의 맨 앞줄에 앉혀 어린 나도 꺼내 먹을 수 있게 했다.
가운뎃줄은 고추장, 된장, 막장이 앉고 뒷줄은 장정 같은 간장독이 서 있었다. 언니들이 시집갈 때 딸려 보내고 오빠들이 분가할 때도 장아찌 단지들을 딸려 보냈다. 언젠가 다 떠나고 부모님만 남자 장독대는 단출해졌다. 쓸쓸한 엄마의 가슴처럼 윤기 없는 장독만 남았다.
가을이 성큼 다가오자 엄마의 장독간이 그리웠다. 알알이 붉은 대추나무가 토담을 넘보던 날이면, 윙윙거리던 벌들이 꼬여 장맛에 취하곤 했다. 유난히 벌에 많이 쏘이기도 했던 곳, 거무스레한 짠 내 나는 거죽 된장을 걷어내면 노랗게 익은 속 된장이 보였다. 크게 한 술 퍼 시래기나물을 조물조물 무치면 정말 구수했다. 풋나물과 풋고추를 무칠 때 고향의 장독간으로 간장이나 된장을 푸러 가는 상상을 했다. 입맛 없을 때 찬물에 밥을 말아 한술 뜨고는 엄마의 솜씨인 장아찌를 올리면 입맛이 살아났다.
종로 조계사 경내 갤러리에서 이수환 사진작가의 ‘한국의 미, 여인의 숨결을 느끼다’ 사진전이 있었다. 그림도 아닌 사진이 발걸음을 잡고 놓아주질 않아 얼마나 설렜는지 모른다. 가을의 정취가 그윽한 장독대 풍경이었다.
독은 만드는 사람의 성품이나 흥에 따라 모양이 조금씩 다르기도 했다. 토질에 따라 다르고 쓰임에 따라 다르고 지방에 따라 달랐다. 경상도는 입이 좁고 어깨선이 각지거나 둥글거나 둘 중 하나였다. 떡 벌어진 우람한 장독이 많았다. 전라도는 배가 볼록하고 투구 모양의 뚜껑이나 소래기라고 불리는 자배기 형태의 뚜껑이 인상적이었다. 서울 항아리는 홀쭉하고 경기도는 입과 밑지름이 거의 같았다. 충청도는 투박하면서도 소박한 멋이 있어 보였다. 엄마는 색깔이 곱고 매끄럽게 빠진 항아리는 장맛이 없다고 거칠고 투박한 독을 주로 썼다.
장독대는 돌담으로 둥글게 두른 경남지방이 정겨웠다. 마치 항아리 가족이 옹기종기 모여 사는 정다운 집 같달까. 중부는 감나무를 드리운 곳이 많았다. 특히 호남은 꽃을 많이 가꾸어 주변환경과 잘 어우러져 아기자기했다. 경기도 지방은 유난히 컸다. 큼직큼직한 항아리를 여러 개 두어 가문의 세를 과시하기도 했다. 살림이 풍족하지 않은 산간지방은 큰 독 두어 개와 작은 항아리 서너 개가 전부였다. 간소하고 소박했지만, 도란도란 이웃이 많았다.
들꽃과 작은 돌멩이와 졸졸 넘치는 우물물이 잘 어우러진 장독간을 보니 그림처럼 예뻐 보였다.대부분 장독대는 성주가 모셔져 있는 신성한 곳이라 정갈하고 아름답게 꾸몄다. 작가는 옹기가 놓인 풍경에서 한국의 미, 여인의 숨결을 담고자 했다. 그 집안에 사는 사람들의 다양한 모습이 보이고 살림의 규모가 보이는 곳, 한 가정의 가족사를 보는 듯 풍성한 이야기가 있는 사진이기도 했다.
꼭 한번 사진 속 풍경을 보러 가리라 마음먹고 ‘디카시’에 관심을 두게 되었다. 이미지를 찍어 사물이 던지는 말을 순간적으로 받아적어 기록하고 표현하는 일에 끌렸다. 우선 전국의 다양한 옹기를 휴대전화로 찍어 디카시를 만들어 보기로 했다.
여행하다 보면 옛 선조의 고택이나 유명인의 생가에 인위적으로 빈 옹기를 진열해둔 것을 볼 수 있었다. 마당 한가득 채운 옹기의 어마어마한 규모에 압도당해 입이 떡 벌어지곤 했다. 부의 상징처럼 풍요로웠던 한 일가를 과시하는 듯, 테마파크처럼 꾸민 코스가 상업적이긴 해도 나름의 감흥이 있었다. 뭐니 뭐니 해도 전국의 절집 공양간 마당에 진열된 옹기들은 볼만했다.
주변 자연환경과 잘 어우러져 고즈넉한 산사의 분위기를 한층 깊게 만들었다. 장맛을 제대로 보려면 공양간에서 사찰음식을 먹어 보면 알 수 있듯이 문경 틀모산 암자에서 맛본 산나물 비빔밥은 정말 꿀맛이었다. 예전에는 대형마트나 백화점 식품코너에 비구승이 승복을 입고 사찰음식을 판매하는 행사가 있기도 했었다.
작년 문학기행 때 경주의 최부잣집 안채에서 본 장독간은 붉은 벽돌의 현대식이었다. 고택과 어울리지 않는 일제의 잔재라는 말이 있었지만 지나치게 검소했다. 만석꾼의 재산을 지켜낸 부잣집 장독이라 믿기지 않을 만큼 아담하고 소박했다. 사진작가의 성지로 알려진 논산 명재고택의 장독대가 아름답기로 소문났다기에 단풍 물든 계절에 한 번 다녀올 생각이다. 소박한 민가의 멋스러운 장독대를 담는 것이 나의 취미였지만, 기품있는 명가의 장맛은 어떨지 안주인이 궁금하기도 했다.
일본식 양조간장이 들어오고 집집마다 장독대의 규모가 줄어들면서 장을 담그는 일도 점점 사라져간다. 옛 정취를 잊지 못하는 우리 어머니들은 아파트 베란다에 항아리 한두 개 정도 두고 살지만, 지금은 베란다마저 사라진 확장형 구조라 양념단지를 둘만 한 곳이 없다. 머지않아 사라지게 될 전통 발효식품의 보고이며 어머니의 숨결이 느껴지는 장독대는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옹기가 놓인 풍경 사진을 고집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듬해 고향집이 헐리고 현대식 가옥이 지어졌다. 한겨울에 눈 모자를 나란히 쓰고 앉아 마지막까지 자리를 지키던 장독은 엄마마저 돌아가시자 애물단지가 되었다. 삭정이뿐인 대추나무도 베어버려 장독대 자리는 그야말로 신식화단으로 변해 버렸다. 아버지의 병구완을 하던 약탕기와 깨진 물동이 그리고 한약을 달일 때 쓰던 질화로가 소품처럼 놓여 있다. 지금은 약탕기에서 이름 모를 꽃이 자라고 깨진 물동이 안에는 다육 식물이 통통하게 살이 오르고 있다.
가을볕에 달구어진 장독에 기대앉아 길고양이처럼 낮잠 한숨 잤으면 좋겠다.
-계간지 '문학사계' 2021.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