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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엽시계( 한국산문 2021.4월호발표)    
글쓴이 : 김주선    21-03-26 13:00    조회 : 7,356

태엽시계/김주선


   초저녁잠이 많았던 아버지는 저녁상을 물리기가 무섭게 곯아떨어지셨다. 목침을 베고 누웠음에도 어찌나 달게 주무시던지 누가 업어가도 모를 정도였다. 산사의 범종 소리만큼 깊고 우람한 괘종시계의 타종 소리가 제아무리 댕댕거려도 꿈쩍 않던 양반이셨다. 그런 부친의 잠귀가 얼마나 밝았던지 밤마실을 다녀오는 도둑고양이 같은 여식한테는 아무리 부처님 귀라도 엄하게 꾸짖었다.

언니들이 출가하거나 취업해 나 혼자 남은 집은 적막으로 채워졌다. 나이가 들면 잠귀도 어두운지 예전만큼 불호령은 없었지만, 부모님이 계신 안방은 여전히 고리타분한 기운이 감돌아 피해 다녔다. 윗목과 아랫목을 나누는 장지문이 방 사이에 있었다. 냉골의 윗목이 나만의 첫 독립공간이었으나 예민한 사춘기를 보내느라 늘 장지문을 닫아두었다.

안방 벽에 걸린 일제 세이코 괘종시계에 마음을 뺏긴 아버지는 집안의 가보로 여길 만큼 자랑스러워했다. 시계에 밥을 줄 수 있는 권한은 아버지뿐이었다. 한 달 간격으로 매월 말일이면 시계탑에서 태엽 감개를 꺼내 드르륵드르륵 태엽을 감고는 축 늘어진 시계불알을 좌우로 힘차게 반동시키고는 흡족해하셨다.

힘이 바짝 선 시계추 소리가 얼마나 맑고 경쾌한지 한번 들어보라며 두 눈을 지그시 감고는 메트로놈처럼 박자를 맞춰가며 몸을 흔들었다. 시계와 한 몸이 되는 지경이 되자 이내 <명당경> 한 소절을 흥얼거리며 마음을 정화하는 듯 보였다. 아마도 자식이 떠난 빈집에서 힘찬 동력으로 움직이는 것은 시계뿐이니 괘종소리에 마음을 기대셨던 모양이었다.

똑딱거리는 시계추 소리, 시간 수 대로 종을 치는 타종 소리는 나에게 엄청난 소음이었고 스트레스였다. 잠 귀신이 붙어 자도 자도 졸린 십 대 시절에 의자를 밟고 올라가 태엽을 거꾸로 돌려 시계를 탈진시켰다. 나는 신경질을 부리며 불면을 호소하고 아버지는 깨어있는 새벽녘의 짙은 고독을 좋아해 괘념치 않았다.

중학생이 되자 입학선물로 탁상시계와 갈색 가죽끈이 있는 손목시계를 사주셨다. 그 역시 태엽 꼭지를 당겨 시간을 맞춘 다음 꼭지를 눌러서 위쪽으로 안 감길 때까지 감아주면 작동되는 수동태엽 시계였다. 시간이 더뎌지면 다시 감아주면 되었다. 오죽하면 내 손목에서 시계를 풀어버렸을까. 자식의 끼니때보다는 시계 밥 주는 일에 목을 매는 아버지가 야속했다. 세련된 디자인의 배터리를 넣는 시계도 많은데 일흔의 노부 고집은 불통이었다. 녀지간에 말문까지 닫아버리게 된 이유는 순전히 태엽 시계 때문이었다.

원인불명의 정전으로 인해 온 마을이 칠흑 속에 묻혔던 섣달의 어느 밤이었다. 대설 주의보까지 내려진 그 밤은 등이 휘어버린 양초가 하염없이 흘러내려 밤마실도 못 가는 심심한 날이었다. 괘종이 수명이 다 되었는지 천식 환자의 가래 끓는 소리를 내자 벽에서 시계를 내려 뚜껑을 열고는 내부구조를 찬찬히 들여다보셨다. 전등도 켜지지 않는 밤에 시계 속이 보일 리 만무하지만 자잘한 골편과 맞물리는 크고 작은 톱니바퀴 사이사이로 기름을 쳤다. 다음 날 아침, 여전히 그렁그렁하며 시간의 오차가 점점 더 벌어지자 제천 읍내에 있는 덕영 아재의 시계 점포를 찾았다. 수리공이었던 아재는 못 고치는 시계가 없었지만, 태엽을 안 감아도 되는 신식벽시계를 진열대 위에 내어놓고 아버지께 선보였다. 솜을 넣어 누빈 두루마기 자락이 펄럭이도록 손사래를 치시곤 그대로 보자기에 싸 집으로 돌아왔다

그 후, 몇 년 더 골골거리며 시간이 맞는 둥, 안 맞는 둥 제 역할을 못 하더니 시계가 완전히 숨을 거두어 더는 타종 소리를 들을 수 없게 되었다.

큰오빠 내외가 크고 고급스러운 원목 괘종시계를 사 왔다. 대청 기둥에 떡 하니 자리를 차지하고는 집주인을 가소로이 내려다보았다. 시간 문양이 로마 숫자이고 경첩이며 흔들이 시계추며 아버지가 좋아하는 금색이었지만, 마뜩잖아했다.

태엽을 감는 구멍이 없어 서운한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시간과 상관없이 한 번만 타종하는 은은한 종소리가 기력 떨어진 자신을 보는 것 같다며 의기소침했다. 범종처럼 깊게 울렸던 고장 난 시계에 대한 미련을 못 버린 걸 보니 아마도 인생을 태엽 시계에 반추했던 모양이었다.

스무 살이 되자 나는 집을 떠났다. 막내딸까지 떠나자 아버지에게 아무도 대신해 주지 않는 절대고독의 시간이 왔다. 좁은 어깨에도 쓸쓸함이 내려앉아 등이 굽었다. 불을 켰을 때 드러나는 외로움 때문인지 고독에 곁을 내주고 오도카니 어둠 속에 앉아있는 아버지는 종종 궐련을 말아 피셨다.   

시간이 덧없이 흘러 임종할 때가 되자 객지로 흩어졌던 자식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친정의 낡은 기와집 곁에 새로 지은 장조카네 집 안방에 누워계셨다. 병원보다는 당신의 집터에서 숨을 거두는 게 바람이었다.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듯 탁한 숨을 몰아쉬며 밥은 먹었냐?.”안부라도 묻는 듯 두 눈을 가늘게 껌뻑이셨다.

집이 낡고 오래되어 헐고 싶은데 할아버지 돌아가시면 허물려고 한다는 장조카의 말이 내심 서운하게 들렸다. 사람도 수명이 다되면 죽는 법인데 집이라고 별수 있겠나 싶다가도 부친의 장례를 치른 다음 집마저 장례를 치르게 될 판이어서 더 서럽게 울었는지 모르겠다.

금방이라도 폭삭 주저앉을 듯 음력 오월의 푸른 바람에도 문풍지가 심하게 흔들렸다. 댓돌 위에 올라서자 대청마루 기둥에 걸려있던 괘종이 보였다. 고고함은 어디로 가고 고물상도 마다할 폐물이 되어 버렸나. 헐거워진 경첩과 뽀얗게 먼지가 묻은 누런 시계추가 오랜 시간 멈추어 있었던 듯 보였다

다락방에 올라가 보니 먼지 냄새가 많이 났다. 무슨 귀중품이라도 모아두었는지 묶인 보따리마다 잘 풀리지도 않았다. 오래된 서책과 족보, 자식들의 졸업앨범과 사진들, 각종 대회에서 받았던 자손의 상장과 메달들이 눈에 띄었다.

제일 안쪽에 보자기로 싸인 뭉툭한 것이 손에 잡히기에 무슨 귀한 유물이라도 남기셨나 싶어 끌러보았다. 그것은 두 개의 구멍이 있는 태엽 시계였다. 바닥엔 시계 밥 주는 숟가락(태엽 감개)이 꽂혀있었다. 시계는 아버지의 모습으로 누워 있었다. 한 시절 떵떵거리며 살았던 호기는 어디로 가고 태엽 끊긴 노구가 되었을까. 그토록 식구들 먹여 살리는 일에 사력을 쏟고 힘찬 자식의 동력으로 삶을 움직였던 가장의 무게를 느꼈다.

나는 아버지 심장 같은 구멍에 감개를 꽂아 태엽을 돌리고 또 돌려 보았다. 어디선가 희미하게나마 맥박 뛰는 소리가 들리는 듯 자꾸만 태엽을 감았다.

 

<한국산문 2021.4월호-신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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