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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덕 위의 집_동인지<폴라리스를 찾아서>수록    
글쓴이 : 김주선    21-07-01 16:58    조회 : 6,040

언덕 위의 집/ 김주선

 

  청량산에서 뻗어 내린 줄기와 이어진 나지막한 구릉성 산지가 영장산이다. 언덕에 올라가면 성남 구시가지가 한눈에 보인다. 분수 광장을 지나 넓은 골 능선으로 접어들면 망경암이 있고, 봉국사가 있으며, 고갯길 바로 아래 태평동 시댁이 있다.

영장산 봉국사의 저녁 공양이 끝나는 시간이면 인근 주택가까지 염불 소리가 들렸다. 시어머니는 저녁 산책을 하다 노스님의 천수경 소리에 마음을 빼앗겨 종종 사찰 안까지 발걸음을 들여놓곤 하였다. 무늬만 불자였던 시어머니는 사월 초파일에 가끔 절밥을 드시러 갔지만, 시주하거나 연등을 달지는 않았다.

작년에 셋째 시숙이 췌장암으로 죽자 시어머니는 부쩍 쇠약해졌다. 시댁 옥상 방수 공사 하는 날에 가보니 아래층 천장에 곰팡이가 피고 개미 떼가 드는 등 집에 손댈 곳이 많았다. 공사장에서 쓰다 남은 수성페인트로 담벼락의 낙서를 지우고 시어머니가 좋아하는 해바라기를 그려 넣었다. 어머님의 집에는 조금의 변화가 왔지만, 어머님이 여전히 시숙이 그리워 밥술을 놓는 바람에 자식들이 번갈아 죽을 끓여대는 게 일상이 되었다.   

건너편 금강 지구는 벌써 재개발이 진행되었다. 붉은 글씨로 담벼락에 철거라고 쓰인 빈집은 다음 날 포클레인이 털털거리고 와 사정없이 뭉갰다. 더러 빈집은 동네 불량배들이 진을 친 우범지대가 되었기에 당직 순경이 야간 순찰을 돌았다. 지금 성남은 단계별로 재개발 및 도시 정비 사업이 한창이다. 기반이 약해진 부실한 건물이 많아 도시를 갈아엎어야 할 처지에 놓여 있다.

70년대 초창기에는 대표적 빈민 주거지역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날 수 없었지만, 지금은 재개발 프리미엄까지 붙어 투기 지역이 되었다. 최근에 영장산 아파트 건립 반대발족식이 옛 시청사 앞에서 열렸다. 무분별한 재개발로 허물어지는 영장산의 숲을 보호하자는 취지였다.

봉국사 옆, 그 높은 언덕에 언제 완공되었는지 아파트가 우뚝 서 있다. 언제부턴가 언덕 아래 뒷골목에는 차이나타운이 형성되었다. 화려한 밤의 홍등이 낯설기만 하다. 절규하던 노동자는 다 어디로 가고 다양한 인종이 다문화를 이루는 공단이 들어섰다

시댁은 서울 관악구 신림동에서 이주한 이주민이다. 이주민의 대부분은 농촌에서 상경한 단순 노무자나 공장 직공들이라고 한다. 오십 년 전, 도심에 있는 무허가 판자촌을 철거하는 도시 정비 사업이 진행되었다. 주민을 이주시킬 필요성을 느꼈던 서울시는 택지를 물색한 끝에 지금의 성남(구 경기도 광주)에 주택단지를 조성하게 되었다. 처음엔 생활 기반 시설 하나 없는 단지에 짐짝처럼 던져놓아 살길이 막막했다고 한다.

시부모님은 슬하에 세 살 터울로 42녀를 두었다. 서울 판자촌에서 쫓겨나 드림랜드 입성을 꿈꾸었지만, 경제 기반이 전혀 없는 허허벌판에 또다시 천막이 생기고 판자촌이 생기자 이주민들이 봉기했다. 이주 상인회 회장이셨던 시아버지는 완장을 차고 빈민 운동의 시발점이 된 광주 대단지 사건현장에 나섰다.

1971년 공권력을 장악한 폭동이 일어나고 민심이 사나워지자 정부는 주민들이 먹고살 공단 지역을 상대원에 조성해 주었다. 시아버지는 불법 전매와 땅 투기가 성행한 한국 최초의 위성도시에서 화병에 시달리다 처자식과 빚만 남겨놓은 채 19769월에 세상을 떠나셨다. 새로이 집안의 가장이 된 첫째 시숙은 고3이었다. 대학을 포기하고 공장에 취업을 했다.

정부는 당시 야산과 가파른 언덕을 깎고 밀어서 한 가구당 20여 평의 대지를 분양해 붉은 벽돌로 된 이층집을 짓게 했다. 의도하지는 않았겠지만 마치 이주민의 상징처럼 획일화된 주택이었다. 양쪽으로 열을 맞춘 대여섯 가구가 한 블록이 되어 다닥다닥 붙어있게 되었다. 정면에서 보면 1층 같고 뒷면에서 보면 지하 1층에 속하는 반지하와 지상 2층이 결합된 구조였다. 각 층에 방 두 개와 주방과 화장실이 있었지만 대부분 사글세를 놓고 1층에 모여 살았다. 블록과 블록 사이엔 2~3m 내외의 골목을 조성하였는데 차가 다니기도 비좁았다.   

처음 시댁에 인사를 갔던 날이었다. 옥탑에 숯불을 놓고 온 가족이 모여 삼겹살을 구워 먹는데 시어머니께서 당신 며느리가 되겠다고 자청한 나를 관찰하느라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다. 자랑도 부족할 판에 당신의 형편을 깎아내리려 애썼다. 아마도 당신 아들보다 네 살이나 연상인 며느릿감이 탐탁잖은 눈치였다.

텃밭처럼 가꾼 옥상에는 상추가 실하게 돋아 파릇파릇 예뻤고, 조그만 닭장 안에서는 씨암탉이 병아리를 품은 채로 졸고 있었다. 소박한 장독대는 어머니를 닮은 듯했다. 밤이 되니 언덕 아래로 펼쳐진 야경이 얼마나 아름답던지 온통 별밭이었다. 내가 꿈꾸던 바로 그 집이었다. 결혼할 결심이 서자 모든 게 순조로웠다. 분당 집을 정리하고 시댁 근처로 이사를 했다.

시댁은 마을버스에서 내려 가파른 골목길을 한참 더 올라가야 하는 산동네였다. 어느 애향민은 성남을 한국의 캘리포니아라고 불렀다. 언덕이 많은 특색 있는 지형 탓이었을 것이다. 내가 다니던 분당의 한 대형교회 목사는 천당 아랫동네 분당이라는 곳에 대해 주일마다 찬양 일색이었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구시가지 성남을 성벽 밖에 있는 골고다의 언덕쯤으로 상상했었다.  

옆집 아이 야단맞는 소리, 부부싸움 하는 소리, 혹은 취객을 나무라듯 컹컹거리던 개 짖는 소리까지 정겹게 들렸다. 특히, 달걀 한 알도 꿔주고 빌리는 동네에서 솔솔 풍기는 밥 짓는 냄새가 좋았다. 좁은 골목 사이사이로 어둠이 흘러내려오는 시간, 고단했던 나의 하루를 위로하는 밥 냄새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시댁의 대문 앞에 닿아 있었다. 파란 철 대문이었다. 그 너머에서는 축 처진 나의 어깨를 감싸 안는 맛있는 밥상과 사랑하는 가족이 언제나 기다리고 있었다. 저녁상을 치우고 설거지를 끝낸 다음 아이들 손을 잡고 언덕을 내려왔던 그 1년여의 세월은 신도시에 아파트 분양을 받으면서 아쉽게도 끝이 났다.

이제 홀로 살림을 꾸려가기엔 어머님은 연로하시다. 시아버지가 돌아가시던 해 겨우 초등학교 6학년이었던 셋째 시숙은 중학교 교복도 입어보지 못한 채 공단에서 잔심부름하며 생활비를 벌었다. 조개를 으깨어 자개장롱을 만드는 공방 일이 얼마나 고된지 야반도주를 할 정도였다니, 어머니는 두고두고 자식을 죽인 죄인인 양 괴로워했다.

분양받은 땅에 터를 잡고, 일찍 떠난 시아버지의 빈자리를 채우느라 고생한 어머니의 세월 앞에 카네이션 꽃다발이 족하기나 할까. 햇살 부서지는 화창한 봄날에 흰 싸리꽃이 흐드러진 망경암을 지나, 봉국사 연등을 지나, 밥 짓는 냄새가 나는 언덕 위 그 집 앞에 섰다. 지루한 하루를 견디느라 부쩍 늙으신 어머님이 짓무른 눈가를 닦고 있었다.

   



동인지<폴라리스를 찾아서>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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