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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쑥부쟁이 노인(격월간지 '에세이스트' 2021.9-10월호)    
글쓴이 : 김주선    21-08-28 08:48    조회 : 5,923

쑥부쟁이 노인/김주선

  김 노인의 직업은 침구사였다. 신작로 곁, 미루나무 아래에 납작 엎드린 집이 그의 침방이었다. 잡초 같달까, 신작로의 흙먼지가 앉아 초라한 그 집 뒤안길에는 노인처럼 괄시받던 쑥부쟁이가 무성했다. 그이는 침술원이라는 목판 하나 내 걸지 않은 채 침 치료를 하거나 쑥을 캐러 다녔다. 남모르는 무슨 사연이 있길래 귀향했을까 궁금했던지 그의 새 아내를 보고 동네 아낙들이 수군댔다. 제법 서울 물 먹은 티가 나는 중년 여인이 홀아비인 그를 따라 산골로 내려오다니 나도 궁금하기는 했다.

누추했지만 용하다는 입소문을 탔는지 멀리서도 불치의 환자들이 가끔 찾아오곤 했다. 명성대로라면 그럴듯한 행색이거나 번듯한 가재도구라도 있어야 할 텐데 그의 집은 폭삭 주저앉기 직전이었고 행색은 초라한 촌로였다. 웬만한 병으로는 병원에 가지 않고 김 노인이 해결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그를 침쟁이 노인이라 하대하며 불렀다. 과년한 의붓딸인 복순이 언니를 부를 때도 침쟁이네 딸 아니냐며 쑥부쟁이 대하듯 했다.

소문에는 이승만 대통령 시절에 국영 침술사 양성학원에 다녔다는 말도 있었지만, 침술 면허가 있는지에 대한 자격 여부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다만 못 고치는 병이 없다고 할 만큼 용한 침술사여서 가끔 아버지는 집으로 그이를 불러 술을 대접하곤 했다. 침은 잘못 맞으면 앉은뱅이가 될 수도 있고 절명할 수도 있다 하여 술을 얻어 마신 그이가 아버지께 쑥뜸을 가르치며 답례했다.

한번은 아버지가 작은언니와 초등학생인 나를 사랑방으로 불러 노인한테 문진 받도록 했다. 언니는 어렸을 적에 홍역을 호되게 치르고 난 후 소양증이 생겼다. 온몸이 생채기 자국이었고 긁어대느라 잠을 못 잘 정도여서 성격마저 까칠해졌다. 아마도 아토피성 피부염이 아니었을까 싶다. 나는 동상이 심했다. 발가락이며 손가락이며 심지어 코에도 동상이 걸려 딸기코라고 아이들의 놀림을 받았다. 놀랍게도 침으로 다스릴 수 있는 병이니, 내일 침구를 챙겨 다시 오겠다 약속하고 그가 돌아갔다.

다음날, 중학생인 언니가 침쟁이 앞에 용감하게 먼저 누웠다. 탈모가 생길 만큼 스트레스가 심한 언니는 머릿속까지 손톱에 긁힌 자국이 심했다. 펼쳐진 침구에는 크고 작은 침들이 있었지만, 생각보다 짧고 얇은 은침을 썼다. 침쟁이의 손끝은 한 치의 흐트러짐이 없었다. 술을 좋아했던 분이라 작은 손 떨림이라도 있을까 싶어 예의주시했다. 언니는 몸만 몇 번 움찔거릴 뿐 수십 방의 침을 몸과 머리에 꽂고 잘 참고 견뎠다.

내 차례가 되자 예뻐진다는 말에 눈물을 찔끔거리며 참고 누웠더니 콧잔등에 여러 대의 침을 꽂았다. 생각만큼 아프지 않았다. 침술은 금방 끝났다. 이후에도 두어 번 더 침술을 받았다. 놀랍게도 동상은 완치가 되었고 딸기코는 정상으로 돌아왔다. 용하다더니 맞는 말인가 보다 했다. 나는 침의 효능을 믿었고 보건소 청진기보다는 침의의 손끝에 짚이는 맥을 더 신뢰했다. 언니의 피부병은 금방 효력이 나타나진 않았지만 침과 민간요법을 겸했다.

중풍으로 입이 돌아간 사람이 정상으로 돌아오고 고질적인 편두통을 앓던 사람이 말끔히 나았다는 이런저런 침쟁이 노인에 대한 미담이 들렸다. 소문은 소문을 낳아 앉은뱅이도 벌떡 일어서더라는 풍문이 돌 무렵, 홀연히 김 노인이 마을을 떠났다. 일본으로 갔다더라, 중국으로 갔다더라, 소문만 무성할 뿐 한 번도 그이를 보았다는 사람은 없었다. 가족조차 뿔뿔이 흩어지고 그의 아내마저 떠나자 삼거리 그의 침방은 허물어지고 붉은 슬레이트 지붕을 얹은 점방(店房)이 생겼다.

몇 년 후 발가락에 동상이 재발했지만, 침쟁이가 떠난 자리엔 반의사가 된 엄마가 있었다. 빨갛게 언 발가락이 퉁퉁 부어 어찌나 가렵던지 엄마의 민간요법인 담뱃잎 삶은 물에 발을 담그곤 했다. 종기가 생겼을 때는 바늘로 찔러 고름을 짜내고 고약을 붙여주었다. 아까징끼와 갑오징어 뼈 하나로 모든 상처는 아물고 딱지가 생겼다. 속이 더부룩하면 바늘로 손끝을 따 피를 냈고 생리통엔 익모초 삶은 물을 마시게 했다. 관절염이 심했던 아버지는 마른 쑥에 불을 붙여 살을 태우는 뜸을 떴고 도장 크기만 한 흉터가 무릎 여기저기에 생겼다. 무엇보다 양회공장 정문 앞에 양약방이 들어오면서 침쟁이의 부재를 크게 느끼지 못했다. 가끔 발목의 인대가 늘어나거나 손가락이 삐끗하면 침 한 방으로 해결되었던 그의 용한 침술만은 기억했다.

한의사는 아니지만 침사였던 구당(灸堂) 김남수 옹이 105세의 나이로 얼마 전에 타계했다. 일제강점기에는 침구사 자격증 제도가 있었지만 60년대 초 이 제도는 폐지되었다. 성행했던 침술원도 하나둘 문을 닫게 되자 침구사는 낙향하게 되었다. 지금은 침만 전문(침사)으로 하거나 정통 뜸을 전문(구사)으로 하는 일은 불법 의료 행위에 해당한다. 한의사면허 제도가 생기면서 침구사 배출은 맥이 끊겼고 그나마 폐지 이전에 받은 자격증도 의사면허증에 밀려 해외로 이주한 분들이 많았다. 우리나라 한의학하고 다른 개념이지만 일본이나 중국은 침구사 제도가 합법적이긴 하다.

제도의 부활을 꿈꾸며 후학양성에 평생을 보냈음에도 구당의 꿈은 실현되지 않았다. 아무리 유능한 침사, 구사라 해도 불법시술로 감옥 가기가 십상이니 한의사와의 불법 의료분쟁으로 평생을 소송의 중심에 있었던 인물이기도 했다. 구당은 비제도권의 은둔 고수라 줄을 서서 대기해야 할 정도로 평판이 자자했다. 명의인지 돌팔이인지의 기준은 제도가 만든 잣대가 아닐까.

 최근에 방바닥을 짚고 일어서다가 오른쪽 엄지손가락이 삔 것처럼 아파 정형외과에 갔다. 염좌라며 근육주사를 맞고 치료받았다. 열흘이 넘었는데도 나을 기미가 없자 한의원엘 갔더니 마찬가지였다. 갈 적마다 침을 맞고 물리치료를 받았으나 차도가 없었다. 나중에는 고가의 한약도 권했다. 결국, 큰 병원에서 방아쇠 수지 증후군이란 진단을 받고 엄지손가락 관절에 스테로이드를 주입해 통증을 진정시켰다. 물론 완치는 되지 않았다.

침쟁이 노인은 이제 저세상 사람이 되었겠지만, 한의원에 갈 적마다 시대를 잘못 타고난 기구한 운명의 침구사가 떠올랐다. 그의 손끝에서 나던 쑥 냄새는 그를 기억하는 유일한 향이었다. 의붓딸이긴 해도 복순 언니 소식은 다행히 들을 수 있었다. 그녀 역시 의붓아버지인 김 노인에 대한 기억은 별로 남아 있지 않았다. 불우한 가정사라 말을 아꼈고 시신조차 찾을 길 없는 객사가 아니었겠느냐며 말끝을 흐렸다.

이리저리 바람처럼 떠돌다가 어느 길섶에 쑥부쟁이로 피었을까. 한 번도 누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지 않았지만, 보랏빛이 살랑거리는 꽃바람에 멈추어 선 복순 언니의 어깨가 가볍게 흐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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