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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나무 그늘 카페에서    
글쓴이 : 노정애    12-05-16 18:17    조회 : 5,754
 
  등나무 그늘 카페에서

                                                                                                            노문정(본명: 노정애)

  아이들이 다니는 초등학교 건물 뒤편에는 등나무 네그루가 있다. 굵은 가지들이 사각의 기둥을 애인처럼 끌어안고, 잎들은 손가락처럼 뻗어 소슬 비는 거뜬히 피할 수 있게 초록의 지붕을 만들었다.  그곳은 인도와 낮은 담을 사이에 두고 있어서 아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웃음보를 터트리는 모습도, 손님을 기다리는 변두리의 낡은 다방처럼 쓸쓸한 풍경도 볼 수 있었다. 가끔 학부형들과 자판기 커피 한잔씩을 들고 자리를 잡으면 파리의 노천카페에 앉은 듯해 마음만은 호사스러운 사치를 누리게 해주었다.  
  한 겨울 알몸이 되어 삭풍의 바람을 견디는 등나무를 보면 난 마음 한편이 무거워져 애써 외면 할 때가 많았다.  가지를 뻗어 꼬인 듯 감겨 올라간 그 생명력들이 내 어머니의 손가락과 닮아서 그런가보다.  손끝이 닳아 뭉툭해진, 중지와 약지가 약간씩 돌아간 당신의 못난 손이 꼭 그 모습이다.
  아버지가 직장생활을 접고 블록 공장을 시작한 것은 내가 6살을 넘어 서면서다.  모래, 시멘트, 물과 노동력만 있으면 되는 단순한 작업이었다.  한두번의 삽질로 잘 섞여진 재료를 기계에 담으면 '덜커덩' 블록이 찍혀 나온다.  나무판자에 받혀진 그것을 건조가 잘되게 연병장에 사열하듯 줄맞추어 두면 된다.  인건비를 아낀다며 어머니는 새벽 4시면 일어나 삽질을 하셨다.  처음 시작했을 때는 아버지와 함께 했으나, 아버지가 교통사고 이후 힘든 일을 못하게 되면서 혼자 그 짐을 떠 안으셨다. 그러면서도 가족을 위해 따뜻한 아침상을 차리고 우리들의 준비물까지 꼼꼼히도 챙기셨다.  어느 날 저녁 밥상을 물리신 후 어머니가 기도하듯 정성스럽게 손가락을 반대 방향으로 돌리고 계셨다.  그때서야 난 당신의 손가락이 돌아간 것을 알았다.
  내 중학교 시절 갑자기 떨어진 성적 때문에 선생님 앞에 불려와 죄인처럼 머리를 조아린 어머니의 손에는 엉금엉금한 그물 장갑이 끼워져 있었다.  유난히 작은 손에 끼워진 헐렁한 그물장갑이 일할 때 끼는 커다란 면장갑 같아 ‘뭣 하러 그런 걸 끼고 학교에 오냐’는 싫은 소리를 했다. 성적이 떨어진 것에 대한 잔소리를 피할 심사로 ‘툭’ 쏘아준 그 한마디로 그 후 우리 4남매의 학부모 상담에 아버지를 가시게 했다.  입학식이나 졸업식에 꽃다발을 든 당신의 손에 끼워진 그물장갑이나 가죽장갑에는 못난 엄마를 둔 자식에 대한 배려와 염려까지 함께 끼워져 있었다. 
   볼품없어진 손과 숯처럼 검게 그을린 얼굴만이 세월의 훈장처럼 남는 동안 안방의 달력이 열 번이나 새 옷으로 갈아입었다.  공장이 활기를 찾아 일하지 않게 된 후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손가락은 제자리로 돌아오지 않았다.  지금까지 어느 곳에서도 쉽게 손을 내 놓지 못하신 체 손수건을 꼭 쥐거나, 가방끈을 꽉 붙들고 있는 모습으로 대신한다.  마치 등나무의 혹처럼 커다란 상처를 손에 남겨두셨다. 
  민간에서 암 치료의 명약으로 알려진 등나무의 혹은 독나방이 낳은 알 때문에 생긴 상처다.  알이 부화되면서 애벌레는 혹을 갉아먹고 자라는데, 혹과 그 벌레에 면역물질이 많이 들어있어서라고 한다.  속이 다 파헤쳐지는 아픔을 삼키며 험한 세상에서 자식들만은 면역물질이 넘쳐나길 바랬을 내 어머니와 등나무는 참 많이 닮아있다.
  봄날 맑은 보랏빛 등꽃이 달콤한 꿀을 품고 짙은 향기로 길가는 사람을 유혹한다.  벌과 함께 이끌려 그곳에 앉으면 덜칙한 어머니의 땀 냄새가 꽃향기보다 더 짖게 느껴져 내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  그 못난 손이 만들어낸 맛깔스러운 음식을 먹이며 자식들 마음의 상처까지 염려하셨다는 것을, 볼썽사납게 뻗은 가지들이 푸른 숲을 만들고 화려한 꽃을 피워낸다는 것을 난 어미가 되어서야 알았다.  당신의 손가락이 비틀릴수록 자식은 쓸모 있는 사람으로 반듯하게 자라길 바라셨을 것이며, 철없이 어미의 가슴에 못을 박은 모진 말을 쏟아낸 나에게 머리 한번 쓰다듬어 주시고는 가슴에는 커다란 옹이를 만드셨을 것이다. 가지런한 내 손이 더 부끄러워 감사하다는 말조차 하지 못하는 난 그때나 지금이나 구제불능인 딸이다.
  지난 겨울의 끝자락에서 학교를 지나다 무심히 본 그 등나무는 굵은 가지 몇 가닥만을 남긴 체 새로 세워진 기둥에 토라진 연인들처럼 엉성하게 등을 기대고 서 있었다.  조경공사를 한다며 벤치와 기둥을 갈고 담벼락까지 알록달록 색으로 손보더니 그 참에 함께 정리되어 초라한 몰골로 변해버렸다. 
  기둥들을 이어 널찍한 망까지 쳐 하늘을 얼키설키 가리고 있는 모습은 꼭 내 어머니 손에 끼워진 그물장갑 같았다.  상처로 남은 비틀린 손가락 같아 마음을 무겁게 하던 겨울의 앙상한 등나무는 시간이 지나야 볼 수 있게 되었다.  등나무 그늘 카페가 초록의 지붕을 만들고 꽃을 피워서 옛 명성을 찾으려면 족히 10년은 걸릴 것이다. 
  잘라낸 굵은 가지는 가구공장으로 가버렸을까?  근육통이나 관절염에 약제로 쓰인다는 뿌리까지 왕창 뽑아내지 않은 것은 그나마 다행한 일이였지만 이렇게 된 것이 꼭 내 탓만 같아 죄스러움에 그곳에 앉았다. 혹까지 싹둑 잘려나간, 텅 비어버린 등나무 아래 벤치에 앉은 내게 햇살이, 바람이 더 늦기 전에 말하라고 한다. 사랑한다고, 감사하다고, 당신의 손이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손이라고, 너무 늦게 말씀드려서 죄송하다고.     
 
                                                                                 <책과 인생>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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