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움직인 한마디>
작가가 되라고?
차성기
돌아오는 전철 안에서 카톡 소리가 이어 울렸다. B 교수는 신인 공모와 관련한 사진 파일까지 손수 보내주었다. 글 성향으로 보아서 <한국산문>에 지원해보라는 제언이었다. 내게서 먼저 소식이 올 줄 알았단다. 등단작가가 되라고. 책 쓰기에 전념하던 내겐 등단이 급한 사안은 아니었다. 설사 등단한다 해도 문학계에 낯선 내게 누가 관심이나 주랴 싶었다. 타이틀을 목적으로 하는 사람도 있다지만 그다지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거듭된 말씀에 동호인 모임이니 무언가 조직의 방향에는 함께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기울었다. 서둘러 합평 작품 가운데 몇 편을 정성껏 다듬어 접수처에 보냈다.
8월 더위가 한창인 오후, 동호인 예비 문인들이 모였다. 두어 시간 자작 글 발표에 예비 작가들 격려에 뒤이어 교수의 예리한 평가도 함께했다. 열띤 토론으로 비워진 마음은 이심전심 내자동 서촌 시장으로 향했다. 늦은 오후 빌딩 사이로 늙은 햇살이 얼굴에 설핏 내렸다. 오후 6시 아직 이른지 시장 입구엔 호젓한 냄새가 반긴다. 마침 한 동호인이 모 수필지에 초회 추천되는 경사가 있었다. 누구랄 것도 없이 소맥을 한 잔씩 받아들고 불콰한 얼굴로 건배를 외친다. 춘천닭갈비를 안주 삼아 들이켜니 마음에 호기가 가득하다. 한 순배 술잔이 돌고 나서였다. 교수는 넌지시 등단을 건넨다. 어느 정도 수필작법에 대한 토대를 갖추었으니 열매를 거둘 때도 되지 않았나 한다며. 초회 추천된 분도 있으니 좀 더 절차탁마한다면 다른 분도 시도해 볼 만 하다는 말씀이었다. 하지만 다들 아직은 넘사벽이라며 손을 저었다. 등단에는 한군데만 연연하지 말고 이름있는 여러 곳에 접근해보라는 권유가 뒤를 이었다. 반년간의 빈 마음을 넉넉히 채우고 나서니 이미 밖은 어둑하다. 허공을 밝히는 초롱불 아래 젊은이들 삼삼오오 모여든다. 조용하던 거리는 아연 활기를 되찾으며 떠들썩한 소리가 문틈을 비집고 나와 빈 거리를 채운다.
다시 책 쓰기에 전념하다 보니 여러 날이 흘렀다. 한동안은 원고를 보낸 사실도 까맣게 잊고 있었다. 석 달이 지날 무렵엔가 뒤늦게 낯선 이멜이 왔다. 보낸 6편 가운데 한편이 선정되었다는 소식이었다. 연락이 없어 기대하지 않은 결과에 잠시 멍한 가운데 번득 B 교수가 떠올라 전화했다. 마침 모 문단지에 초회 추천받은 분도 완료 추천될 예정이어서 겹경사가 났다고. 그러나 어찌하랴. 전대미문의 코로나19는 시샘하듯 예비 문인의 모임을 허락지 않았다. 연말에 첫 동인지를 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등단작품 선정 소식에 작가 아내가 되었다며 더 기뻐해 어리둥절했다. 아끼던 사위 소식을 장인어른이 생전에 들었다면 얼마나 좋아하셨을까 하며. 노년에 가족 중 예술가 나올 수가 보인다고 점집 예언도 있었단다. 내가 언감생심이라며 웃어넘겼다는데 정작 기억이 없다. 행복하게도 걸출한 인재가 함께하는 종로반. 글 선배들의 반짝이는 재능과 예리한 끼는 롤러코스터 타듯 합평의 고난과 즐거움을 더한다. 오늘도 치열한 합평이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