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의 오브제 (눈에 거슬리지 않는 파격)
김주선
사내(社內) 남자 화장실에 있는 소변기가 고장 나 설비기사를 불렀다. 부품을 교체하고 센서 감지기가 잘 작동하는지 확인하고 수선비를 지급했다. 주르륵 물이 흘러내리자 그동안 막혀있던 관이 뻥 뚫린 듯 시원하게 씻겨 내려갔다. 누런 때도 벗겨지고 지린내도 나지 않아 속이 다 시원했다. 성역이나 다름없는 곳을 몰래 훔쳐보는 재미랄까. 오래전에 10유로 이상 되는 입장료를 내고 본 미술관이 생각이 났다.
아마 십 오륙 년은 지난 일일 것이다. 독일에 사는 친구와 단둘이 유럽을 여행하게 되었다. 짧은 일정에 여기저기 발품을 팔아야 하는 여행인지라 기다림이 긴 미술관 관람은 건너뛰었다. 매번 매표소 앞에 길게 줄 선 사람에 치여 입장을 포기했던 이유가 컸다. 전날 암스테르담에 있는 반고흐미술관도 줄이 너무 길어 매표를 포기하고 풍차마을 잔세스칸스로 향한 기억이 났다. 어디를 가나 목소리 큰 중국인 단체관광객이 북적거려 공황장애를 겪을 정도였다. 파리로 건너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친구의 추천으로 그나마 조용한 관람을 위해 찾은 곳이 퐁피두였다. 미술관이라기보다는 무슨 복합문화센터로만 알고는 대충 훑는 정도였다.
그때는 미술에 별 감흥이 없어 몰랐지만, 내가 간 곳이 파리의 3대 미술관중 하나인 퐁피두센터라는 것을 최근에 알게 되었다. 마치 솔기가 많은 옷을 뒤집어 놓은 것 같달까. 수도관, 가스관, 전기시설 등 기본 골조가 모두 노출된 건물이었다. 호기심에 불타는 친구와 달리 공장 같은 어수선한 분위기와 철골 구조물이 드러난 현대식 외관이 내심 실망스러웠다. 위엄있는 중세건물처럼 좀 더 고전적인 풍경을 찾느라 디지털카메라의 용량을 아끼던 때여서 인증사진도 별로 남기지 못했다.
다른 작품은 별로 기억에 남지 않아 모르겠지만, 유난히 시선을 끄는 게 하나 있었다. 미술관 중심부에 떡하니 자리 잡은 남성 소변기였다. 화장실에 있어야 마땅한 물건이 고상한 회화와 어울리지 않게 전시실을 차지하다니, 그것도 물이 퐁퐁 솟는 <샘>(Fontaine)이라는 제목의 마르셀 뒤샹 작품이라는 소리를 듣고는 나는 피식 웃었다. 첫째 날 새벽에 공항으로 마중 나온 친구 부부를 따라 집에 도착했을 때 눈에 번쩍 띈 것과 별반 다를 게 없었다. 찬장에 놓여있던 반질반질한 놋 요강이었다. 친구 부부가 그 용도를 모르는 줄 알고 화장실에 두는 물건이라고 설명했던 일이 떠올라 웃었는지도 모르겠다.
친구 남편은 독일인이자 자동차 부속품 디자이너였다. 마르셀 뒤샹 못지않게 반짝반짝 아이디어가 빛나고 재치가 있는 남자였다. 그는 한국에 있는 처가를 방문한 기념으로 방짜로 된 요강단지를 인사동에서 샀다. 물론 무엇에 쓰는 물건인지는 알고 샀지만, 그의 눈에는 예사롭지 않은 유기로 보였다. 밤중에 신랑 몰래 새색시가 소변을 볼 때 소리가 나지 말라고 쌀을 담아 혼수로 가져간다는 유래를 들었다. 쌀 대신 동전을 담아두면 복이 들어온다는 말도 들었지만, 주방에 두고 말린 완두콩이나 곡물을 담는 단지로 썼다고 한다. 동양의 예쁜 그릇에 반한 동네 아줌마들이 놀러 오면 찬장에 있는 요강을 가리켜 수프 끓이는 솥이라고 말한다는 것이다. 요강이라는 일상적 제품에 솥이라고 생각하는 발상 자체가 그 남자 식(式) 오브제인 셈이다. 유머로 치부하기엔 그의 설명이 너무 진지해 방짜 요강을 다시 보았을 때 솥단지처럼 보였을 정도였다.
루브르박물관이나 오르세미술관처럼 교과서에서 봄 직한 명화였다면 모를까. 전위적이고 실험적인 작품이 나로선 난해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사실 ‘마르셀 뒤샹’이 누군지도 몰랐을뿐더러 개념미술에 문외한인 내가 관람 자체도 심드렁해 설렁설렁 다녔다. 솔직히 소변기는 공장에서 찍어내는 기성품인데 귀퉁이에 작가 서명만 하고 예술작품이라고 전시한 것이 사기(꾼) 같았다. 수공예 기술로 치면 소변기를 만든 사람이 예술가가 아닌가 해서였다.
<샘>은 ‘R, Mutt 1917’이라는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무명작가의 서명이 있는 작품이다. 1917년 당시, 미국 아모리 쇼에 출품하기 위해 가져갔다가 실험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전시를 거부당하게 되었다. 이게 미술이냐고 할 정도로 엄청나게 논란이 되었던 작품이었다. 소변기는 쓰레기로 처리되고 사진작가의 사진만이 남아있는 상태였다. 나중에 마르셀 뒤샹이 이름을 바꿔 출품한 작품이라고 알려지면서 많은 사람이 혼란을 일으켰다.
이미 만들어진 기성품을 사다가 서명한 일밖에 없는 뒤샹의 퍼포먼스가 던진 의미는 컸다. 작가의 명성을 보고 작품을 평가하는 현대미술의 관행을 꼬집고자 그가 던진 화두였다. 이 사건으로 인해 그는 레디메이드 기법의 창시자로 불리며 세계적인 작가로 재평가되었다. 그렇다고 누구나 소변기를 사다가 진열한다고 작품이라는 소리는 아니다.
평범한 물건의 특별한 가치랄까. 일상용품의 예술적 의미 부여를 통해 20세기 현대미술에서 가장 영향력을 끼친 작품으로 오브제 작품 <샘>이 선정되었다. 비록 원본은 소실되었을지라도 복제품으로 제작된 소변기가 퐁피두센터의 중심부에 당당하게 놓인 이유일지도 모른다.
내가 소변기를 처음 봤을 때 그랬던 것처럼, 선입견이라는 것이 얼마나 오만한가.
여행 마지막 날, 쾰른 옛 시가지에 있는 어느 맥줏집에서 친구가 말했다. 우리가 글로 쓰는 수많은 은유가 상상력이 빚은 오브제란 것을. 그녀 말대로 방이나 화장실에 두면 요강이지만 특정 공간을 벗어나면 그 기능도 상실되어 전혀 다른 시각으로 보이게 마련이란다. 새로운 관점과 이름을 붙여주면 본래의 사용가치는 사라지고 새로운 대상의 사고가 창조된다는 것이다. 단순한 소변기로 보지 말고 사고를 전환하라는데 내가 글을 쓰는 데 있어 여전히 어렵게 느껴지는 부분이기도 하다.
“수필은 청자연적이다” 똑같이 생긴 꽃잎 중에 옆으로 꼬부라진 한 조각의 연꽃잎을 보고 피천득의 위대한 「수필」이 탄생하였다. ‘자연과 사물은 문학을 상징하고 은유하는 오브제로써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 보조관념이다’라는 어느 수필강좌가 떠오른다. “정연한 균형 속에 눈에 거슬리지 않는 파격”(피천득 「수필」 ), 남다른 시선으로 볼 줄 아는 마음의 여유가 어쩌면 내게도 필요한지 모르겠다.
생리적 우월감의 상징이라고 폐물 취급당하는 추세라 앞으로 소변기는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는 물건일지도 모른다.
언젠가 미술관에 다시 간다면 그 남자의 오브제 앞에 다시 서 보겠다. 피카소나 미켈란젤로의 작품처럼 여전히 큰 감동은 없지만, 오줌을 누다 영감을 얻었을 <샘>을 보고 소변기라고 비웃지는 않을 것이다. 가끔 늙은 반려견이 변기에 코를 박고, 찹찹찹 맛있게 물을 먹는 모습을 보면 영락없는 샘물이긴 하다.
(격월간지 『에세이스트』2022.5-6월(103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