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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쓰기와 워드 프로세서    
글쓴이 : 이기식    22-09-21 09:57    조회 : 4,104

글쓰기와 워드 프로세서

                                                                                   이 기 식 

국산문 2022.10 vol.198 

 글씨를 나보다 더 못 쓰는 사람을 아직 보지 못한  같다 내가 써놓은 글자를 다른 사람은 물론이지만, 나 자신조차도 알아보지 못할 때가 많다. 서투른 목수가 연장 탓한다고, 글씨 잘못 쓰는 이유가 필기구 때문일 것이라는 생각을 굳혔다. 왜냐면 이름난 작가나 기자들이 멋있게 글씨 쓸 때의 사진을 보면 대개 때깔 좋은 만년필이 눈에 띈다. 뚜껑에 하얀 눈의 로고가 보이는 만년필이다 

1974, 일본에 컴퓨터과학을 공부하기 위해 유학을 갔다. 그곳에서까지  글씨  쓰는 것을 보이기 싫어 큰맘 먹고 몽블랑을 장만했다. 비싼 도구로 정성들여 쓰다 보니 나아진 것 같기도 했다. 그러나 좋은 것을 가질 운이 아니었는지, 난간에 옷을 털다가 만년필이 반 토막으로 부러졌다. 장학금의 반 달분을 주고 샀기 때문에 몇 달간 허리띠를 졸라매야만 했다. 

 지도교수와 졸업 논문에 대한 면담이 시작되었다. 마침 연구실에 들여온 워드 프로세서(Word Processor)를 사용해보지 않겠느냐는 교수의 제의를 받았다. 그 무렵은 기기 도입 초기여서 아직 누구도 사용해보지 않은 상황이었다. 더구나  글씨 솜씨를 생각하면 좋은 기회가 아닌가 

논문 길이가 약 40,000글자에 달해 능숙한 타자원에게도 그리 만만치 않은 작업이었다. 워드의 기능을 대략 들어 본 적이 있어서 사용설명서를 읽어가며 사용법을 익혔다. 단어나 문장의 수정·삽입·제거·치환 등이 자유자재로 되는 것이 신기하고 재미도 있었다. 논문 작성을 끝내고 동료들에게 사용법을 강의하면서, 나중에 꼭 한글 워드를 개발해야겠다고 속으로 다짐했다. 

귀국 후 정부로부터 연구비를 받아 1982년에 '명필'이라는 이름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워드 전용기'를 개발하였다. 최초사용자는 청와대를 비롯한 전국의 우체국, 체신부, 정부 부처였다. 처음 만든 제품이 1982~2001년 사이에 독립기념관에 전시되었다. 그 이후 새로운 기능들을 추가한 워드들이 속속 개발되어 지금에 이르렀다. 

어느 날 중국의 컴퓨터학회로부터 연락이 왔다. 내가 연구한 한자 자동변환에 대하여 발표해 줄 수 없겠느냐는 내용이었다. 우리나라와 중국과는 정상적인 국교가 맺어지지 않아 국제연합기구인 유네스코를 통해서 추천하겠다는 제의가 왔다. 어렵게 생각했던 외무부, 안기부의 허락도 받았다. 19831012일부터, 일주일간 머물렀다. 학회발표 후 북경대학, 만리장성도 방문했다. 비수교 상태에서 한국인이 입국한 것은 두 번째라고 안내인이 귀띔 해줬다. 귀국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중국과 국교 수립이 발표되었다. 잊히지 않는 경험이었다.  

언어가 다르면 워드의 개발 사상들도 다르다. 일본어는 한자 사용이 표준이라 '히라가나' ‘가타카나'를 한자로 바꿔주는 '한자 자동변환 기능'이 필수다. 중국어는 글자의 획이 복잡하여, 입력이 까다롭다. 글자를 네 구획으로 나눠서 입력한 다음에 한 개의 글자를 만드는 방법, 또는 음성으로 입력하는 등, 몇 가지 방법이 있다. 특히, 미국은 문맹자가 많아서 단어 검사기능(spell-checker)이 가장 중요하다. 이를테면 매사추세츠(massachusetts)나 필리핀(philippines) 같은 단어의 철자는 틀리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생산을 맡았던 회사와 함께 사용 후의 반응을 조사했다. 의외로 부정적인 반응은 없었다. 오히려 '글 쓰는 맛이 안 난'든지, '만년필이나 타자기같이 오래 쓰고, 손때가 묻어야 정이 붙어 글이 잘 써진다'든지, 조금 낭만적이기도 한 대답을 들었다. 나 역시 비슷하게 느꼈던 감정이었다. 

 워드를 사용하면서 느끼는 감정은 개인의 성격이나 능력에 따라서 조금씩 다를 것이다. 나의 경우는 워드 화면의 글을 읽을 때는 아직도 조금 서두른다. 인쇄된 글을 읽으면 여유가 생기고 안정감이 드나, 화면을 볼 때는, 아직도 화면이 도망가지 않을까 하는 조바심이 난다. 컴퓨터 기능이 안정되지 않았던 초창기 시절의 기억이 남아서인 것 같다. 

쉽게 익숙해지지 않는 것도 있다. 원고를 바닥에 펴놓고 일할 때는 전체를 조감할 수 있어 편집이 편하다. 하지만 워드로 작업을 하는 경우는 기본적으로 한 페이지씩 읽어야 한다. 화면을 서너 차례 불러내어 머릿속에서 기억하면서 일해야 한다. 기억력과 집중력이 좋은 사람이 유리하다. 

워드를 사용하면 아무래도 손으로 쓰는 것보다 글 쓰는 기술이 늘지 않을 것 같다는 우려도 있다. 왜냐면 필요한 부분만 고치면 되기 때문이다. 손으로 고쳐 쓰는 경우는 글쓰기에서 중요한 문장의 리듬을 익힐 기회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체로 워드를 쓰기 시작하면 점차로 글쓰기가 편해지는 것은 사실인 모양이다. 한번 길들이고 나면 만년필과 원고용지로 돌아가기는 힘들다. 예전 같으면 원고지에 한 글자, 한 글자씩 써넣든가, 또는 자르거나 붙여야 했기 때문에 글 내용을 쉽게 바꿀 엄두를 못 냈다. 원고지 3, 4매를 고쳐야만 하기 때문이다. 워드의 경우는 문장의 길이, 위치에 상관없이 삭제, 추가가 부담이 없으므로 문장의 구성에 더 많은 신경을 쓸 수 있다. 

옛날의 훌륭한 작가는 영감이 떠올라 신들린 사람처럼 글을 썼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 그러나 지금은 영감에 의존하지 않는다. 워드는 언어를 우리 머릿속에서 마음대로 조작, 편집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 주었다.  워드를 쓰면서부터 사람들의 글쓰기에 대한 태도나 감각이 달라졌다. , 도구나 기술 때문에 문자나 언어를 대하는 방법이 변한다. 문명의 이기가 글쓰기에 대한 태도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워드 사용을 계기로, 문학에도 컴퓨터 기술을 더욱 폭넓게 적용하기 시작하고 있다. 문학작품의 문장 해석, 문체 해석, 나아가서 문장의 생성까지 해보려는 것이 '문장의 과학화'. 그리고 인공지능에 '인간의 감성과 창조성'을 구현할 수 있는, '문학의 과학화'도 함께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2022-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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