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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날개 <향기로운 항해> 동서문학상 수상자 히스토리, 2022년    
글쓴이 : 최선자    22-10-22 11:46    조회 : 4,418


날개

               최선자


  동서문학상을 처음 알게 된 날을 잊지 못한다.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지만, 날개가 돋아나려고 겨드랑이 밑이 스멀스멀했으리라. 방송통신대학교 국어국문학과 학생들인 우린 문학동아리 모임이 끝난 뒤 저녁을 먹으려고 음식점으로 몰려갔다. 밥보다 먼저 나온 막걸리가 한 순배 돌고 나자 앞에 앉은 선배가 말했다.

  —어제 문학상에 응모했어요.

  —무슨 문학상인데요?

  —동서문학상이요. 동서식품에서 후원하는 상이에요.

  옆자리 선배가 내게도 응모하라고 부추겼다.

  —선배님, 저는 이제 습작 다섯 편입니다.

  —편수가 문제야? 후배 글 잘 써.

  —응모해 봐라.

  동갑내기 동기까지 부추겼다.

  그날 밤, 잠이 오지 않았다. 이듬해 어버이날 주제 원고로 학보사에 보내려던 몽당연필이라는 제목의 작품이 있었다. ‘학보에 발표하면 방송대 학생들만 보겠지. 하지만 동서문학상을 받고 수상 작품집에 수록되면 전국의 독자들이 볼 게다. 돌아가신 친정엄마에게 용서를 구하자.’ 새벽 두 시가 넘도록 고민하다가 동서문학상 응모를 결심했다.

  나는 만학도였다. 2학년 1학기 기말시험이 끝나자 자식들이 고생했다며 여행을 보내줬다. 혼자서 떠난 강릉 여행, 버스 정류장에서 있었던 일이다. 지문이 남았을까 싶은 거친 손을 본 순간 덥석 잡았다. 손 임자인 할머니는 내 얼굴을 쳐다보며 빙그레 웃기만 했다. 옆에 있던 아주머니가 할머니는 청각장애인이라고 말해줬다.

  친정엄마도 평생 허공에 언어를 썼다. 몽당연필이 되어버린 손을 가슴에 얹고 떠났다. 집에 돌아와서도 며칠 동안 가슴이 먹먹했다. 글로라도 풀지 않으면 병이 날 듯해서 써놓은 글이다. 철없던 시절에는 말을 못 하는 엄마가 창피했다. 학교 친구들한테도 엄마의 장애를 숨겼다. 학보사에 원고를 보내려고 했던 이유다. 이제 학우들 앞에 떳떳하게 엄마의 장애를 말하고 싶었다.

  난생처음 문학상에 응모하고 당선되기만 빌었다. 맥심상 작품도 수상 작품집에 수록하는 줄 알았으니 맥심상이 목표였다. 일주일쯤 지나자 그것도 욕심 같아서 포기했다.

  마음을 비우고 잊어갈 즈음 면담을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실감이 나지 않아서 네, 네 대답만 하자 의외였던 듯하다. 전화하신 분이 면담은 본상만 한다고 말했다. 그래도 대답만 하다가 전화를 끊었다. 당선의 기쁨과 친정엄마 생각에 눈물이 봇물 터지듯 쏟아졌다.

  자식들에게 전화 내용을 말하자 깜짝 놀랐다. 엄마가 수필을 쓰는 것도 문학상에 응모한 줄도 몰랐으니 당연했다. 큰딸이 말했다.

  —엄마, 본상 이상이면 동상부터인데 무슨 상일까요?

  —동상이겠지.

  —은상일지도 몰라요.

  —설마.

  당선자 발표 날, 우리 모녀의 예상은 빗나갔다. 금상 수상자에 올라 있는 내 이름을 보면서도 믿기지 않았다. 축하 전화에 손전화기가 뜨거웠다. 날이 가고 전화와 문자가 뜸해지자 문득문득 정말 당선되었을까? 시상식장에서 상장을 받아야 안심하겠다는 엉뚱한 걱정마저 들었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시상식장은 나를 주눅 들게 하기에 충분했다. 장소는 시청 앞 프라자호텔이었다. 넓은 행사장을 가득 채운 사람들과 사진을 찍던 기자들. 나는 얼마나 긴장했는지 몸이 굳은 채 찬물만 홀짝거렸다.

  동서문학상 수상은 내게 꿈의 날개를 달아줬다. 쉰여섯 살에 중학교 검정고시 학원 야간반에 등록했다. 학원 공부 반년 만에 중, 고등학교 졸업 자격을 다 취득하고 방송통신대학교에 입학했다. 주춧돌 없이 집을 짓는 꼴이어서 공부가 무척 힘들었다. 아마 동서문학상을 수상하지 않았다면 포기했을 게다.

  나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날았다. 대학을 졸업하고 중앙대 예술대학원 문예창작 전문가과정에서 시와 소설을 공부했다. 재작년 가을 파일 속에서 잠만 자고 있던 원고에 대학원 교수님들이 용기를 주고 서둘러 주셔서 수필집도 발간했다. 다른 사람들은 넋두리로 보일지 모르지만, 행간마다 내 눈물이 흥건히 고인 작품들이다.

  너무 멀리 날았을까. 이제 날개가 부러지려고 한다. 뒤늦은 공부와 글쓰기로 몸을 무리한 탓인지 허리 디스크 수술을 받았다. 오래 앉아 있으면 안 된다는 의사의 말에 소설 창작은 포기해야 한다.

  이제 날개를 접는다고 해도 두렵지 않다. 늘 읽고 싶은 책이 있고, 가끔 배낭 메고 홀로 여행을 떠날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있다. 특히 작가의 길을 열어준 동서문학상은 외롭고 쓸쓸한 내 노년의 강을 건너 줄 나룻배이다.

 

 <향기로운 항해> 동서문학상 수상자 히스토리, 202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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