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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똥개라도 괜찮아    
글쓴이 : 노정애    12-05-16 19:43    조회 : 6,569
 
똥개라도 괜찮아


                                                              노 문 정 (본명:노정애)
 
  서울에서 두 시간 거리에 있는 시댁에 남편과 함께 갔다. 대문을 들어서니 현관 입구에 눈도 안 뜬 강아지들이 콘크리트 바닥을 핥고 있었다. 어미개가 안 보인지 사흘째라고 했다. 어미는 스피츠의 피가 섞인 털이 긴 흰색 이었는데 동네 개와 눈이 맞았는지 새끼 세 마리는 누렁이, 점박이, 흰둥이였다. 삼복을 앞두고 있던 때라 시골에서는 개 도둑이 극성이었다. 젖이 불은 어미 개를 잡아간 그 도둑은 개보다 못한 인간임이 분명했다. 
  10여 년 전 시어른들은 전원생활을 시작했다. 애주가였던 아버님은 술을 지나치게 많이 드셨으며 어머님도 시골 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잦은 병치레와 치매증세가 있으셨다. 어른들은 강아지에게 신경 쓸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우리 부부는 개를 좋아하지 않았다. 공공장소에 개를 데려와서 타인에게까지 불쾌감을 주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어린생명들을 죽게 버려두고 올 수는 없었다. 사료를 먹게 되면 다시 돌려보낼 생각이었다. 하지만 강아지들은 고향으로 가지 못했다. 그즈음 시어른들을 병원으로 모셔야했다. 대수술로 오랜 병원생활과 잠깐의 요양원 생활, 우리 집에 지내시면서 두 분 모두 임종을 맞았다. 평생의 꿈이었지만 시골에서의 전원생활은 6년을 넘기지 못했다.
  강아지들을 데리고 동물병원부터 찾았다. 2주가 안되어서 귀도 열리지 않았다고 했다. 간단한 검사 끝에 비교적 건강하다며 세 마리 모두 암놈이라고 했다. 남편이 돌아서면서 일갈했다.  “여복이 터졌네.” 마누라에 딸 둘, 강아지들 까지 모두 여자라며 사주에 여복이 넘치는 게 분명하다고 팔자타령을 했다. 그날로 4시간 마다 우유를 먹이는 개 어미 생활을 했다. 제일 신난 것은 딸들과 친구들이었다. 아이들은 틈만 나면 집에 놀러왔다. 어떤 종류인가를 떠나서 어린 강아지는 귀엽고 사랑스럽다.
  한 달 후 사료를 먹이면서부터 분양에 대한 고민에 빠졌다.  똥개라는 이유로 돌봐줄 곳을 찾지 못했다. 세 마리를 데리고 모란시장에 가서 앉아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누렁이를 귀여워하던 작은 딸아이 친구가 개를 데려갔지만 반나절 만에 돌아왔다. 미리 허락을 구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이 엄마는 도저히 키울 환경이 안 된다며 펑펑 우는 아이를 끌다시피 하고 함께 왔었다.  아마도 명품견이었으면 키우지 않았을까. 
  그 뒤 누렁이는 주인에게 버림받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무척이나 소심해졌다. 낮선 사람에 대한 경계가 심해 늘 도망 다니기 일쑤다. 유기 견은 주인에게 버림받았다는 상처로 수명이 3년 줄어든다고 한다. 사람이든 짐승이든 버림받았다는 것은 큰 상처가 되리라. 어느 정도 크기로 자랄지 알 수 없기에 작은 아파트에서 다 키울 자신이 없었다. 
  압구정동에 사는 여동생 식구들을 자주 초대했다. 동생은 나보다 개를 더 싫어해 근처에 오지도 못하게 하지만 외아들인 조카는 개를 아주 귀여워했다. 저녁을 먹고 집을 나설 때면 한 마리 가져가자고 고집을 부려 동생을 곤란하게 했다. 몇 번의 초대 후 작전은 성공했다.  덩치가 제일 작은 흰둥이를 분양했다. 언니가 고생하는 것이 안타까워서 도와주려한 동생의 배려였으리라.
  분양된 흰둥이는 포니라는 이름으로 ‘압구정 럭셔리 똥개’로 이름을 날리고 있다. 새끼 때는 말티즈 종류인가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귀는 사막여우마냥 커지고 허리와 다리는 길어져서 소속 없는 개가 되었다. 3kg을 넘기는 작은 체구로 더 이상 크지 않아 다행이었다.  개를 싫어했던 동생은 포니를 키우면서 다른 개들도 귀여워하게 됐다. 제부가 못생긴 포니는 농장에 보내고 예쁘게 생긴 명품견으로 바꾸자는 농담을 했었다. 
  “당신은 옆집 자식이 마음에 든다고 내 자식 버리고 데려올 수 있어요?”
  동생의 대답에 한참을 웃었다. 포니를 데리고 나가면 이웃 친구들이 “제발 똥개 좀 데리고 나오지 말라”고 웃으면서 말 한다.  애완동물을 키우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른 애완동물들도 예뻐한다.  애정을 가진 농담에 마음 상할 필요는 없다.  족보 있는 개라면 몇 살인지부터 묻지만 포니를 처음 보는 사람들은 늘 종류를 물어본다. 명품동네를 휘젓고 다니니 혹 새로운 종류인가 해서 이다. 믹스견이라는 대답을 하면 무슨 슬픈 사연이라도 있는 것처럼 측은한 눈길을 보낸다. 시장성이 없어 버려지는 믹스견들이 많기 때문이다.  
  누렁이는 ‘밤이’, 점박이는 ‘박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가끔 동물병원에서 전화가 오면 밤, 박이네 집이냐고 묻는다. 순식간에 집주인이 개가 되는 상황이다. 다행히 밤, 박이는 4kg 전후로 자라서 더 이상 크지 않았다. 귀가 쫑긋하며 허리와 다리는 길어 날씬한 몸매는 그레이하운드를 능가한다. 배변 습관이 좋아 아무 곳에서나 실례하지 않는다. 사료를 가득 담아주어도 적당히 조절해 먹는다.  덕분에 하루 이틀 식구들이 여행을 가도 별 문제는 없다.  던져주는 간식을 몸을 날려 받아먹을 줄도 안다. 간식 앞에서 앉아서 기다리라고 명령하면 허락이 떨어질 때까지 기다리는 참을성도 가졌다. 어떤 상황에서도 사람을 물지 않는다.  문 밖을 나서면 예쁘고 귀엽게 생긴 족보 있는 개들이 넘쳐나지만 우리에게는 어린왕자의 장미처럼 명품견 부럽지 않다. 하지만 남들에게 밤, 박이는 그냥 좀 작은 똥개일 뿐이다. 
   유난히 사람을 좋아해 아무에게나 배부터 보여주는 박이가 가까이 가면 피하기 일쑤다. 아마도 개를 싫어하거나 무서워하는 사람이리라.  밤이를 안고 다니는 나를 보면 이해하지 못하는 표정을 짓거나 어떤 종류냐고 족보부터 묻는다.  가끔은 개들끼리 친하게 지내려고 하며 주인은 뭐라도 묻을 것처럼 “이리와”하며 자신의 개 목줄을 힘껏 당겨 떼어 놓으려 한다. 나쁜 친구들과 어울릴까 걱정하는 부모들 모습이다.  어쩌면 바람기 많은 자신의 개가 나쁜 짓이라도 할까하여하는 염려일 수도 있으리라.  복날이 다가오면 산책을 하지 않는다.  행여 잃어버리기라도 하면 두 그릇은 나오겠다며 잡혀가서 어미의 전철을 밟을까하는 염려에서이다. 
  털이 유난히 많이 빠져서 2,3개월에 한 번씩 동물병원에 가서 전체 미용을 한다. 무게에 따라 미용비를 계산하는데 털이 뻣뻣해 밀기가 힘들다며 5천원을 추가로 받는다. 내게는 실크보다 부드러운데 견종 차별이라고 억울해 하지만 애견 미용사들은 또 다른 고충이 있나보다. 가격표에 ‘믹스견은 미용비 5,000원 추가’라고 형광펜으로 크게 써 둔 것을 보면 우리 같은 가정이 많기 때문이리라 추측해보지만 내 주위에서 본적은 없다.  
 역학공부를 오래 한 지인은 개들도 사주가 있단다.  우리 집 개들은 좋은 사주를 타고나서 주인 잘 만나 사랑받으며 편히 산다고 했다. 함께 살기 위해 밤, 박이에게 강요되는 일들은 많다. 철저하게 예방접종도 하고 날짜에 맞춰 약도 잘 먹어야한다. 목욕과 양치질도 자주하고 아무거나 먹지도 못한다. 마음껏 소리 내어 짖지도 못하고 동네를 돌아다니며 마음에 드는 짝을 구하지도 못한다. 흙이 있는 땅은 밟아보지도 못하고 털이 많이 빠진다며 2, 3개월에 한번 씩 알몸 드러내듯 미용도 해야 한다.  과연 개들도 이 생활을 만족할까. 그냥 자고 싶은데서 자고, 가리는 것 없이 아무거나 먹고, 산으로 들로 돌아다니면서 동내 개들과 연애도 하고, 새끼도 낳으면서 자유롭게 사는 것을 더 좋아하지 않을까?  그러나 어쩌겠는가. <<어린 왕자>>의 “네가 길들인 것에 대해서는 언제나 책임을 져야 해.”라는 글처럼 벌써 길들여져서 식구라는 연을 맺어버렸는 걸. 생명을 거두는 것은 책임을 수반한다. 똥개인 것도 서러워 온갖 눈총과 불이익을 받는데 주인에게 버림받게 할 수는 없다. 그저 건강하게 오래 식구로 함께 하길 바랄뿐이다.
 
                                                                                <책과 인생>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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