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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손에 칼이 있었다    
글쓴이 : 김명희 목요반    23-03-14 13:16    조회 : 2,269

내 손에 칼이 있었다

 

김 명희

 

 나는 왜 그 아이와 다투었을까? 초등학교 4학년의 그 여름날 하굣길에서 다툰 이유 같은 건 지금은 기억도 나지 않는다. 그저 다툼 후에 억울해하며 뒤돌아서던 내 머릿속에 퍼뜩 야비한 생각이 떠올랐다는 것만 머릿속에 새겨져 있었다. 나는 얼른 뒤돌아서서 그 아이를 향해 날카로운 비수를 날렸다.

 ‘너네 엄만 술도 마시잖아!’ 

 우리 집은 동네에서 가겟집을 하고 있었다. 내가 그 아이의 엄마를 본 건 한 열흘 전이었다. 자려고 누웠다 동생과 과자를 가지러 몰래 나갔다가 가게 앞마루에 걸터앉아 술을 마시는 그 아이의 엄마를 봤었다. 우리 동네 아줌마가 아닌 낯선 이라 무심히 지나칠 뻔 했으나 얼마 전 본 시험에서 딴 친구에게 일등을 뺏기고 속상해 하던 터라 아들이 시험에 일등을 했다고 자랑을 하는 그분의 말씀이 귀에 들어왔다. 그 이야기를 듣다 보니 우리 반 그 아이의 엄마인걸 알게 되었던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겨우 삼십대 후반 사십대 초반이었을 그 엄마가 나가서 힘들게 일하고 들어가던 길에 술 한 잔 한 것이었을 수도 있었을 텐데 밖에서 그렇게 술 마시는 여성들이 흔치 않을 때라 걔네 엄마는 늦게 술도 마시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 아이에게 그 말을 던질 때의 나의 마음은 오로지 밀리는 이 상황을 뒤집는 다는 것이었을까? 그때의 상황에서 내가 무슨 마음이었는지 알 수는 없다. 돌이켜 생각해본 적은 있으나 원하는 답을 얻지는 못했다.

 그러나 내가 ‘너의 엄마는 술도 마시잖아’ 라는 말을 던진 순간 그 아이가 짓던 그 표정은 지금까지도 기억이 난다. 나와의 말다툼에서 절대 밀리지 않던, 내가 뚫을 수 없을 것 같았던 그 단단해 보이던 아이가, 그 아이의 표정이, 와르르 무너지는 것이 보였다. 눈물이 맺히기 시작하던 흔들리는 그 눈빛, 그 얼굴, 그 아이는 아무 말도 없이 돌아서서 가 버렸다. 교문으로 올라가는 비탈에서 주먹으로 얼굴을 닦는 그 아이를 보면서 내 안으로 차갑게 밀려들던 그 미안함과 죄책감의 기억이 남았다.

 생각해보면 그 전에도 다른 아이들과 다툰 적이 있었고 서로를 공격했던 적도 있었다. 그러나 이전의 일들이 그 아이에게 했던 일과 달랐던 것은 서로의 행동이나 일의 진행과정, 결과에 따른 분란들이었지 자신이 어쩔 수 없는 부분에 대한 것은 아니었다. 나는 그 아이가 했던 어떤 일의 결과나 과정에 대한 것을 비난한 것이 아니었다. 나는 그저 화가 났고 무언가로 그 아이에게 내가 화난 것을 알리고 속상한 것을 만회하고 싶어서 그 아이에게 뭔가를 던지고 싶었을 뿐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오랫동안 내 마음에 걸렸던 것은 그 말이 그 아이에게는 약점이라는 것을 내가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것이었다. 머릿속을 스치는 그 아이의 엄마 이야기를 하려고 돌아설 때, 내 마음속에 눈싸움에 쓸 큰 눈덩이를 구했다는 생각만이 아니라 사실은 그 눈덩이 속에 날카로운 돌멩이가 들었다는 것을 알고서 던진 것은 아니었을까? 나이가 들어가면서 그때의 일이 더 선명해지는 것이 내가 사실은 그것이 줄 타격을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자꾸 들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살다보면 이런저런 일들이 생기고 사라지고 기억에 남기도 한다. 그러다 보면 해야 할 일 말아야 할 일들이 정해지기 마련이다. 나는 가능하면 사람들과 다툴 일을 만들지 말자하며 생활해 왔다. 몇 십 년 사는 일에 다툼이 없을 수야 없지만 서로 조금 손해보고 조금만 배려하면 큰 다툼으로 갈 일이 없기도 했다. 그래도 다투고 시시비비를 가려야 할 일이 생긴다면 그 사람, 혹은 그 일을 해결하는데 내가 쉬운 방법으로 그의 약점을 찾는 일은 하지 않도록 조심하게 된다.

 아이들과 엄마 학교 다닐 때는 식의 이야기를 나눌 때가 있다. 나의 학창시절 이야기를 하다보면 가끔 이 이야기를 할 때가 있다. 그때 그 아이의 모습을 보며 내가 얼마나 미안하고 부끄러웠는지 이야기를 꼭 한다. 그리고 그 후에 그런 행동을 하지 않도록 늘 조심해 왔다고도 말해 준다. 비판한다는 것과 비난한다는 것이 다르다는 이야기도 한다. 비판해라. 비난하지 마라. 절대로 약점을 공격하지 마라. 비판은 망치가 되고 정이 되지만 비난은 칼이 된다.

 아직도 나 자신에게는 너그러울 수밖에 없어서인지 그 때의 11살 어린 아이인 나는 그저 눈덩이를 던졌을 뿐이라고 어쩌면 작은 돌멩이쯤은 들었을 것이라 생각정도는 했을 거라고 면죄부를 주고 싶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알고 있다. 그 아이가 맞은 것은, 아니 내가 던진 것은 그저 단단한 눈덩이가 아니라 날카로운 비수였다는 것을. 그때 내 손에는 칼이 있었다.

 

 

 

 

                                                                2018.01 한국산문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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