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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명 : 봉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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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경린의    
글쓴이 : 봉혜선    23-04-05 16:45    조회 : 3,033

전경린의

 

봉혜선

 

 전경린의 작품을 읽어가며 따라 아프고 따라 슬펐어, 따라 좌절하고 같이 화가 나 화를 냈고 함께 기뻐한다고 생각했어. 내 세상에 없던, 그녀가 지어낸 세상에서 나도 환상에 섞이기도 했어. 그러면서 지금 처한 상황에서 잠시 벗어나 현실을 잊을 수도 있었지.

 단어마다 문장마다 나를 건드려대니 자꾸 눈물이 나 참을 수가 없더라. 이건 말할 수 있어. 그녀를 만나고 난 후 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되었다는 것 말이야. 온 생애를 통째로 부정당하는 낭패감? 나보다 서너 살 위인 나이로 살고 있으니 같은 시대를 살고 있는데도 확연하게 나는 차이를 느껴야 하는 격렬하고 서늘한 통증을 경험하고 어떻게 예전의 나를 원래의 나라고 내놓을 수 있겠어. 무감각하게 세월을 허비한 죄를 받는다는 자각은 너무 아프더라고. 둔탁하고 둔중한 나여, 깨어날 수 없으리라.

 전지적 시점으로 써가는 소설 속에서 전경린은 때로 일기를 써. 소설을 상상이나 허구라기보다는 일상의 재연이라고 해석하잖아. 그럼에도 구태여 도입한 고백체의 일기였어. “놀랍게도 그에겐 자기가 없다. 그는 자신의 길을 가면서, 현실의 강요에 부응하고 의무를 다할 뿐이다. 그러고도 안 되는 일은 견딘다. 그것이 운명인 것처럼.” 이라고 쓴 글을 접했을 때 맞닥뜨린 당혹스러움을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 매일 일기를 쓰면서도 나는 남편과 아이들 이야기, 주변 이야기 뿐 나를 등장시키지 않았어.

 전경린은 50년간 운명인 듯 써오던 내 일기장을 다시 펼치게 했어. 그녀는 그에겐 자기가 없다는 걸 놀랍게도라고 했지. 나는 가족에 대한 인내와 희생으로 이루는 일상을 운명이라고 받아들이고 지내며 아무도 들어주지 않은 마음을 일기장에 새기고 있었거든. 속삭임이 글이 되고 소설이 될 수 있는 걸까. 세상에 나를 내놓을 수 있는 용기는 어떻게 해야 생기는 걸까. 나를 나타내거나 드러내거나 혹은 나를 주장해도 된다는 걸까.

 그녀가 쓴 어긋난 사랑에 대한 소설을 아이들 독후감처럼 요약하거나 언급할 필요는 없겠지. 사랑을 주도적으로 하는 건 정말 짜릿해. 한 사람이 하나의 사랑만을 겪거나 간직하고 있지 않은 경우가 많은 것 같아. 사랑을 쓴 작가의 수보다 소설마다 다루고 있는 사랑이 많아. 사랑은 매번 첫사랑이라느니 하는 말이 진심인 것 같고 말이지. 사랑이 하나 뿐인 내가 짓밟히는 느낌이었어. 나름 사랑을 치열하게 했고 예상과는 전혀 다른 생활의 모습이지만 여전히 사랑 때문에 현재를 견디고 있다고 여기고 있었거든. 사랑을 세상으로 확대해 봐도 좌절은 여전해. TV 앞에서 거는 사랑의 전화 같은 것 말고 소시민이 할 수 있는 사랑이 뭐가 있지?

 사랑이라는 미명 하에 감당 불가한 생활의 틈바구니에서 신음하며 피할 데라고는 책뿐이었어. 닥치는 대로 보는데 소위 베스트셀러라는 책들을 읽지 않았더라고. 현실에서 받아들여지고 있는 작가는 나에게 어울리지 않다고 여겨 피했었나봐. 베스트셀러 글이 궁금해졌어. 내게도 좋다면 세상을 들여다 볼 수 있거나 나도 그르지 않다는 걸 증명해 줄 수 있다고 생각했어. 나름 하나의 체계를 세웠으니 정신이 나더라. 그 중에서 박범신, 김훈, 이문열 들에 매혹되었어. 한 작품이 같은 작가의 다른 작품을 찾게 하는 자연스런 수순을 겪고 있었고. 그러다 소설가나 시인이 만든 글이 아니라 작가 자신이 궁금해졌어.

 특정 작가의 모든 작품을 읽는 건 읽는 이상의 효과가 있더라고. 소설이나 시도 끝은, 아니 시작도 자기 고백이더라고. 왜 글이 나오게 됐는지 같은 설명 유()의 글은 참으로 친절하게 느껴지더라. 남편의 막무가내인 강압이나 고집이 이끌고 가는 현실이 나를 영영 작가가 되게 할 수 없을 것 같기도 했던 시기였어. ‘나는 도저히 닿을 수 없는 영역이야라며 작가를 지망하던 펜을 꺾은 손에 더 힘을 쥔 체 독서 중이었는데, 그녀가 느껴졌어.

 그녀의 글을 집약할 수 있는 한 단어나 한 문장을 생각해 낼 수 있다면 좋겠어. 염소를 모는 여자』 『내 생애 꼭 하루뿐인 특별한 날 』 『열정의 습관』 『검은 설탕이 녹는 동안』 『언젠가 내가 돌아오면』 『물의 정거장』 『이마를 비추는, 발목을 물들이는... 안 되겠네. 글이 이렇게 많고 왕성하게 작가 생활을 하고 있고 자신이 작가인 것을 한 순간도 잊지 않은 사람의 글을 감히 어떻게!

 나를 벼려야 했지. 어느 순간 한숨 소리를 들었다고 생각했거든. 생활은 여전히 나를 옥죄었지만 책 밖의 세상이나 생활을 자주 잊었어. 어쩌면 나처럼 개신개신 살고 있는데도 자기 숨을 쉬려고 애쓰는 가운데 터져 나오는 한숨이랄까, 동병상련의 밀착감이라고 해야 하나? 글을 씀으로써 비로소 살고 있다는. 예를 들어 풀밭 위의 식사에서 낮에서 밤으로 넘어가는 사이 금지된 국경이라도 넘어가는 듯 아뜩했다는 표현 말이야. 책을 보다가도 화들짝 놀라 저녁 식사를 준비하러 일어나는 시각에 대한 감각의 차이를 내가 어떻게 가까이하거나 경험하거나 느낄 수 있겠어. 당장 살림을 놓고 시간을 들여다볼 수 있다면 가능해질까? “내 눈동자가 풀려 심장으로 흘러 내려가는 듯 했다” “나는 공원의 유령처럼 발밑이 푹 꺼지던 순간에 사로잡힌다.” “수레바퀴의 중심을 가늠하듯, 내 눈을 응시했다.” 나도, 나도. 그녀를 읽어나가는 동안 내 심장에도 눈동자가 풀려 흘러가 있어. 내 발밑도 꺼지지. 내 눈을 응시해줘...

 그녀에게 매달려 애면글면하다가 다른 여류 작가의 책도 찾아서 읽기로 했어. 구태여 여류작가의 작품을 고르게 된 건 전경린의 떨면서도 자기 목소리를 내는 작가적 정신을 엿본 덕인데, 다른 베스트셀러 글과는 또 다르게 나를 자극해 왔기 때문이야. 다른 여류작가들이 쓰는 글도 그런지 새삼 궁금해졌단 말이지. 글이 다른 종류의 고백이라고 볼 때 남편에게 한 마디도 대꾸하지 못했던 내 속엣 말이 사진으로 남아진 듯 숱한 글들이 여기저기 쏟아져 나와 있더라. 여성 독립 만세!

 자신을 토해내듯 하는 글들을 찾아가며 읽는다 여겨지더군. 자신을 갉아내어 문장을 만들고 문단을 지어놓고 어떤 식으로든 맺어 하나의 마침표를 찍고 나아가며 하나의 한숨으로 맺은 것이라는 걸 알게 됐어. 매일 한 권씩 펼치고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아흔아홉 개의 조각보를 기워 만든 퀼트 이불이 생각났어. 갇힌 듯 지내는 동안 퀼트로 이불을 세 개나 만들었어. 천 조각들을 이런저런 보기 좋은 모양으로 조합해 기우면 작은 천들이 소품이나 이불 등 쓸모 있는 것들이 되어가듯 이런 시간이나 독서가 무엇이 되어주진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를 품게도 했어. 혹시 나도 희망해 온 작가가 될 수 있지 않으려나 하는. 집에서 나가지 않는 채였으니 남편에게 책잡힐 일도 줄었고 말이야.

 전경린 글이 퀼트 조각 맞추듯 하다는 평론을 대했을 때의 기쁨을 짐작할 수 있겠니? “신에 의해 봉인된 시간”, “세상 뒤에 시간이 있는 것을 모르는 것처럼”, “누구에게나 거울 없는 시간이 있었다.” 나의 흐트러지고 무질서한 시간 속에 갇혀 있던 상념의 조각들도 제자리를 찾을 수 있다면...

 그녀를 만날 수 있게 될까. “너 없이 어떻게 세상을 견뎠는지 모르겠다.” “나는 쓴다. 쓰지 않는 것이 더 안전할 것이다. 그러나 흩어질까 봐, 사라지는 것이 아까워 쓴다. 이 소중한 것을, 이 찬란한 것을이라고 말하는 작가를그럴 수 있다면 좋겠어. 풀밭 위에서 보고 싶어. 그 글과 생에 대한 치열함과 처연함과 부딪혀보고 싶어. 무엇보다도 작가 전경린을. 나의 이마를 비추는 발목을 물들이는그녀가 아는 척 해 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고 기다려 볼게. 오늘 일기는 여기까지야. 그럼 안녕.

『수필과 비평』 2023, 4.

『수필과 비평』작가회 카페에 등재. 2024,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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