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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명 : 봉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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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바구니 선물    
글쓴이 : 봉혜선    23-04-12 13:20    조회 : 2,099

                                  장바구니 선물

 

                                                                                           봉혜선

 

 모임에서 장바구니 선물을 두 개나 받았다. 둘 다 손에 쏙 들어갈 만한 크기로 접혀 있다. 복이든 무어든 잔뜩 담아가라는 덕담을 해주며 손 안에 쥐어 주었다. 뜻밖의 선물에 인사를 챙기지도 못했는데 등을 보이고 도망치듯 뛰어간 문우의 뒷모습이 아련하다. 다른 하나는 직접 건네기가 쑥스럽다는 본인 대신이라며 쥐어주었다. 별 것 아니라고, 장바구니라고 했다. 특별히 챙겨왔으면서도 빈약해서 부끄럽다는 걸까?

 두 가지 모두 반들거리고 매끈한데 무늬가 각각 달랐다. 전해준 이는 제가 고른 걸 보이며 같은 걸로 하자고도 했다. 납작하게 접힌 모양이 순식간에 마음을 따라 부풀었고 장을 보고 집에 들어가는 내가 보였다. 장바구니를 풀어 만든 음식을 잘 먹었을 때 짓는 식구들의 표정도 연이어 나타났다.

 집에는 장바구니가 많다. 싱크대 서랍 하나를 통째로 차지할 만큼이나 되는 것들 중에는 같은 데에서 받아 가방끼리 서로 외롭지 않을 거라 짐작한다. 나름 용도를 정해놓기도 했으니 하루를 지내고 다시 모이면 속엣 얘기도 나눌 것이다. 무거웠느니 멀리 갔었느니 처음 온 집이라 낯서니 하는 얘기들이 서랍에 갇혔다가 우르르 쏟아지기도 한다. 이야기보따리를 풀면 어느 것도 지지 않을 것이다.

 백일장 참가상으로 받은 장바구니가 내 사랑을 가장 많이 받는다. 장바구니용 주머니 특성이 그렇듯 가볍고 구김이 가지 않은 소재이다. 받기 전까지 자주 봤던 무늬가 있는 그 가방은 유행이 지나자 폐기처분하듯 남겨졌을 것이다. 이런저런 경로를 통해 주부 백일장 협찬품으로 내 손에 들어온 가방을 백일장에서 받은 상장이라도 되는 듯이 중요한 자리에 자랑스럽게 들고 다녔다. 책을 여러 권 옮겨야 하는 때면 여지없이 들고 나간다. 등단의 기쁨으로 준비한 선물용 떡을 옮길 때도 당연한 듯 담아 나갔다. 아픈 엄마에게 가져가는 반찬이 담기기도 한다. 나눔과 정과 성을 담는 가방이다. 귀하게 써도 2년이 되어가니 낡아 서랍이 열리는 한에서 보이는 제일 깊은 곳에 모셔놓았다.

 꽃꽂이용인 세로로 긴 장바구니도 있다. 꽃꽂이를 배울 때 세로 한 면, 가로 두면이 연결되어 달린 지퍼를 열고 끝에 달린 여밈 끈을 허리에 두르면 전용 앞치마가 된다. 특수 코팅 덕인지 손에서 버석거리던 것은 앞치마 용도로 변신하면 장미 가시 등을 막아준다. 긴 가지가 하나라도 끼어야 파격미와 균형을 갖춘 완성품이 되는 꽃 작품을 옮기기 좋아 가장 적절한 꽃()바구니 역할을 수행한다. 주부의 장바구니에 늘 반찬거리만 담기는 건 아니다.

 신장 이식한 친구가 속한, 장기 이식을 주고받은 가족이 모여 만든 합창단 발표회를 매년 보러 간다. 거기서 받는‘HOPE SHARE’라고 쓰인 가방은 숙연하다. 증여할 장기가 온전하길 바라며 가방에 먹거리를 채우곤 한다. 가방을 보이며 남편에게 장기 증여 서약을 하자고 할 수 있는 날을 바란다. 산림청에 다니는 남편을 둔 친구가 준 가방도 보인다. 주말 농장에서 수확한 채소 등을 담고 옮기는데 쓴다. 손안에 들어오는 연두색 동그란 케이스에 들어있는 장바구니도 선물로 받았다. 이어폰을 넣으면 딱 맞춤일까, 아님 상비약 통으로 하면 좋을까. 장바구니의 변신도 무죄다. 같이 장을 보고 난 후 잔뜩 들고 가는 내가 안쓰럽다며 두 개 들고 왔다고 선뜻 건네는 장바구니를 덜렁 받기도 했다. 들고 나가는 가방마다 접힌 장바구니를 넣어두어도 가방이 남는다.

 큰아들이 중학교 때 집에 자주 놀러오던 아들 친구가 취직한 매장에 방문했다. 아들이 항해에 나가서 없을 때였으므로 우리 부부가 매장이 있는 지방까지 걸음을 한 건 큰일에 속했다. 부쩍 성장한 아들 친구의 실적을 올리고 매상을 높여 주려고 꼭 필요하지 않은 몇 가지를 샀다. 점장이 되었다는 아들 친구는 점잖은 척을 하더니 어머니라고 불렀다. 입사한 지 얼마 안 되어 드릴 수 있는 게 없다고 장바구니를 다섯 개나 챙겨 넣어주었다. 아들 혼수 품목에 넣어놓느라 한 개도 내 차지는 되지 못할 장바구니다. 아들 둘이 가꾸는 우정의 색깔은 그 장바구니처럼 회색빛은 아닐 것이다.

 막내아들이 무턱대고 아르바이트를 구한 적이 있다. 대학 학점을 엉망으로 받아놓고 군에 간다고 휴학계를 내버린 후 우울한 상태일 때였다. 해병 신체검사에서 갑종을 받았는데도 나이에서 밀렸다. 반 년 넘게 기다려도 무소식인 국방부에 전화하기를 여러 번이었다. 어느 날은 특수부대에서 오라는 제의를 받았다고 의논해 오는 바람에 차라리 아르바이트라도 하라는 말을 곧이곧대로 듣고 아르바이트를 구했다는 것이다. 청개구리가 우물가에 어미를 묻었다는 격이다. 아이는 개업하는 치킨 가게에 취직했다.

 학기가 시작해 대학생들이 빠진 자리에 잘 버티고 있는 아이를 빼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새벽 2시에 하루 매출을 걱정하며 잠든 아이는 늦잠 자기 선수다. 오후 6시에 여는 가게 시간까지도 일어나지 않을 때가 있었다. 기다리던 점장이 깨우러 왔다. 점장이 직접 데리러 오기까지 한 건 닭 튀기기도 곧잘 하고 서빙과 마감 계산도 거침없이 해낸다는 아이의 말과 합치되는 배려였을 것이다. 군 입대를 통보받고 아르바이트를 그만둔 막내가 장바구니를 5개나 꺼내놓았다. 막내를 믿고 다른 가게를 낸 사장님이 새 가게 로고가 새겨진 장바구니를 퇴직 선물로 주었단다. 장바구니의 어떤 면이 이토록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속성인가.

  마트에서나 재래시장에서 물건을 부둥켜안고 다니는 걸 좋아한다필요한 것을 모두 들고 풍족해진 마음으로 더 필요한 게 뭐가 있을까 두리번거리면서 무게를 잊고 호기심에 나를 맡기는 것이다어슬렁거리며 손에 가득 든 상품들 사이로 내다보는 마트의 풍경도 재미있다나 자신의 품을 장바구니처럼 만드는 건 무엇이든 담아주는 넉넉함과 가려주는 덕을 배우려 함이다카트나 구멍이 더 많은 플라스틱 바구니의 적나라함은 천편일률적이고 소비 지향적이다.

 괴나리봇짐, 머리 위에 인 보따리, 도포의 넓은 소매, 품에 보따리를 품은 모습의 옛 사진들은 정겹고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복주머니, 장바구니 물가라는 단어로 사람들의 표정을 읽는다. 과대 포장이 염려되어 망설이는 인터넷 쇼핑에 으레 필요한 것 역시 장바구니다. 장바구니를 쥐고 생각이 깊어진다.

 ‘담은은 기성복 같은 고정성을 지닌다. ‘담는이라고 현재형이나 사실형, 혹은 현재형을 쓰면 달라질 수 있다. 나라는 사람 주머니에 담아야 할 것은 무엇인가. 육체는 정신을 담는 가방이 아닌가. 천 가방을 고이 쓰고 꿰매거나 다른 천을 덧대어가며 쓰듯 사람도 몸을 고쳐가며 숨을 연장한다. 선물 받은 장바구니를 넣은 내 가방은 천으로 지은 친환경 에코(eco)백이다


                                                                        <<수필문학 202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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