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주를 기다리며 /김주선
은행거래만 터도 달력을 주던 때와 달리 작년 연말은 달력 구하기가 정말 어려웠다. 종잇값과 제작비가 올라 발행 부수를 대폭 줄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나의 푸념을 들었던지 어느 미술협회에 후원금을 지원하는 여고 후배가 탁상용 달력을 우편으로 보내왔다. 달(月)에 어울리는 꽃과 풍경을 그린 달력이었다. ‘구족회화(Mouth and Foot Painting Artists)’라는 작품설명을 보고 나니 잊고 있었던 기억 하나가 머릿속 주머니에서 뾰족하게 뚫고 나왔다. 십여 년도 넘은 일이지만, 언젠가 내 고향 신문 문화면에 실린 기사 한 토막이었다.
탁자 위에 달력을 세워놓고 나는 곧바로 『영월신문』 정애정 기자에게 메일 한 통을 보냈다. 언젠가 당신이 인터뷰 기사에 쓴 작가 이현주를 찾고 싶노라고. 향우이자 수필가인 그녀를 꼭 만나보고 싶다고.
지난 몇 달간 절필을 선언하고 읽기와 쓰기를 중단한 채 빈둥빈둥 티브이 리모컨을 쥐고 살았다. 아무리 머리를 쥐어뜯어도 내 글은 신선하지 않고 기대에도 못 미쳐 스스로 만족하지 못했다. 뜯지 않은 월간문예지가 아무렇게나 쌓이자 문우보다 더 걱정하는 이는 남편이었다. 그랬던 내가 갑자기 책상 앞에 앉아 노트북을 열자 그는 말없이 자리를 비켜주었다. 알만한 사람을 통하거나 SNS로 잊고지냈던 그녀의 근황을 뒤졌다. 2012년 이후의 소식은 그 어디에고 없었다. 다음 날 정 기자에게 답장은 왔지만, 마을 사람조차 그녀의 소식을 아는 이가 없다고 했다. 몇 년 전에 가족 모두 마을을 떠나 제천으로 이사 갔다는 소식만 마을 이장에게 들었다며 연락이 오면 다시 알려주겠노라 했다. 기자 신분에 아직 고향 지킴이로 살고 있으니 나보다 소식통일 것 같아 부탁한 일이 생각지도 않게 꼬였다.
구필口筆작가 이현주는 1977년생으로 뇌 병변 1급 중증장애였다. 누구의 도움 없이 혼자 밥을 먹거나 움직일 수 없을 만치 수족을 쓸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혀로 책장을 넘기며 밤낮을 가리지 않고 책을 읽었다. 책 읽기를 게을리하지 않았음일까. 닥치는 대로 읽기 시작한 책이 1,000여 권이 훌쩍 넘자 본격적으로 글쓰기에 뛰어들었다. 힘없는 새끼손가락 하나로 타자기 앞에 앉아있는 것만으로도 그녀는 세상을 다 가진 듯 행복하고 즐거웠다. 처음 글을 쓰게 된 것은 교도소 수감자들에게 희망의 편지를 보내는 일로 시작했다. 7명의 죄수와 사랑과 희망의 편지를 주고받으며 글쓰기의 기초를 다졌다.
32세 되던 해 『창조문학』을 통해 등단의 기회를 얻고 무수한 문학대회와 공모전을 휩쓸었다. 그 누구도 그녀가 장애인이라는 걸 모를 정도로 재능을 인정받은, 실력 있는 작가였다. 나 또한 지역신문에 난 후배의 소식을 보고 작가를 꿈꾸었으니 어쩌면 그녀는 나에게 동기부여를 준 셈이었다.
이 작가는 보통 수필 한 편을 쓰는데 2주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일주일은 무엇을 쓸 것인가 사색하고 일주일은 컴퓨터로 원고 작업을 한단다. 자판을 누를 수 있는 건 펜을 문 입술과 혀, 보조키를 누를 수 있는 새끼손가락 하나만이 겨우 움직였다. 발가락마저 연필을 끼울 수 없었다. 구필화가의 그림은 많이 보았어도 입으로 펜을 물고 글을 쓰는 수필가는 본 적이 없었기에 더욱 놀라웠는지도 모른다. ‘달팽이 걸음보다 더 느린 움직임으로 한 자 한 자 꾹꾹 눌러서 쓴 그녀의 작품이 그래서 더 진지하고 철학적이기까지 하다’고 정 기자도 신문에 밝혔다.
솔직히 나는 죽고 싶어도 마음대로 죽음을 선택할 수 없는 처지다. 생각해 보라. 혼자 힘으론 아무것도 할 수 없는데 죽고 싶다고 해서 감히 어떻게 죽을 수 있겠는가. 설령 내가 죽음을 선택했다 할지라도. 스스로 목을 매거나 약을 먹거나 옥상에 올라가 떨어질 수도 없는 노릇이다. 나에겐 죽음도 누군가의 도움 없인 불가능한 일이며, 양보해야 할 사치스러움이다. 그래서 나는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는 끔찍스러운 현실을 축복이라 여기며, 내게 주어진 죽음보다 더 깊은 절망과 외로움, 슬픔을 그냥 그대로 받아들인다. (이현주 수필, 「당신의 삶을 사랑하라」 중에서)
내가 한창 수필의 매력에 빠져 글을 쓸 때는 한 달에 몇 편씩 쓰곤 했다. 단숨에 쓰는 글도 있었고 몇 주 걸리는 글도 있었다. 그러나 요즘은 글 한 줄 쓰기도 힘들어 멀쩡한 내 두 손이 부끄러울 정도다. 숟가락도 들지 못하는 손가락 하나로 역기力器 같은 절망을 번쩍 들어 올린 것은 문학이었다고 말하는 이 작가의 인터뷰는 나를 한없이 쪼그라들게 만들었다.
입으로 붓을 물거나 발가락에 끼운 채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쓴다는 게 보통의 일인가. 그동안 살아오면서 내가 쉽게 포기하고 꺾었던 희망을 그들은 턱이 빠질 것 같은 고통을 견뎌 이뤄냈다. 재능이 입증된 화가임에도 불구하고 장애인이 그린 미술이라고 하면 그림을 팔 판로가 어려워 생계가 어렵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알다시피 구족口足작가들이 쓰는 글이나 그림에는 장애가 없다. 그냥 예술작품일 뿐, 영적 불구자들의 시선이 문제이다. 이 작가 역시 자신의 수필이 장애인이라서 주목받는 것보다 작품성 하나만으로 인정받기를 바란다고 했다.
저마다의 삶에는 이유와 존재의 가치가 있을 것이다. 이현주의 인생은 아름답다고 말해 주고 싶은데 여전히 그녀의 소식은 감감하다. 전해주고 싶은 책과 선물을 예쁘게 포장해 놓은 지도 여러 날이 지났다.
내 고향 소혹성에는 간신히 움직이는 손가락 하나와 입술과 혀로 글 농사를 짓는 농사꾼, 현주 씨가 살았다. 사과 과수원집 막내딸로 태어난 그녀에게는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발소리, 새들의 지저귐, 사과꽃 향기, 그리고 봄비. 과수원집 창 너머로 바라보는 세상이 전부였다. 현주 씨의 밭에서 자란 수필이 제일 수확이 좋았던 이유는 창문에 낀 먹구름을 불평하지 않았음이다. 달팽이처럼 느린 걸음으로 김을 매고 행간에 밑줄을 긋지 않아도 글 씨앗을 바르게 심을 줄 아는 진짜 농부였다.
이제 그녀의 산문散文 밭에서 얻은 씨앗 한 줌을 나의 원고지 칸 칸마다 심어보려 한다. 바람직한 문학적 갱생을 꿈꾸며 나는 게으름이 덕지덕지 묻은 손을 씻었다. 당신 앞에서 절필이라니, 배부른 소리를 한 나의 교만을 용서하시구려. 꽃 한 자루 입에 물고 아름답게 써 내려갈 수필을 기다리듯 당신이 탄 수레바퀴를 밀고 오는 봄의 전령사를 기다린다. 어느새 손가락 힘줄 사이로 파랗게 정맥이 돋는다.
(계간 현대수필 2023 여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