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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빈첸시오, 그와 춤을 추다    
글쓴이 : 오길순    23-08-01 18:39    조회 : 2,542

                                   빈첸시오, 그와 춤을 추다

                                                                             오길순

코끼리는 축제를 연다고 한다. 특히 6,70년 수명이 다하면 3,40마리 가족들과 괴상한 몸동작으로 광란의 이별식을 하나보다. 몇 년 후 자손코끼리들은 홀연히 떠난 조상의 안식처를 용케도 찾아 매장까지 한다니 예언자들을 보는 듯하다. 코끼리를 신성시하는 이들의 허무한 담론이라 여기지만 코끼리 전문화가의 이야기이니 신빙성도 있어 보였다. 신경길이가 72킬로미터라는 인간과 99%유전자가 닮았다는 침팬지도 죽음을 미리 안다는 것을 듣지 못했다.

그가 난생 처음으로 우리 춤 한 번 추자며 손을 내밀었을 때,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저럽대기처럼 야윈 손목이 코끼리를 떠올렸다. 한 달 여 전, 동네의원이 내린 치명적인 진단이 얼마나 불안했을까? 성인병 하나 없던 그가 피에타 상의 그리스도처럼 쇠잔하기까지 죽음보다 깊었을 불면이 눈물겨웠다.

그의 춤동작은 어색하기 짝이 없었다. 평생 춤 한 번 춘 적 없는 그였기에 당연했다. 그래도 그의 애창곡 천년지기에 맞추니 속도가 붙었다. 쇠심줄 같은 그의 등이 대동강 봄물처럼 풀리기를 바라 미친 듯이 몸을 흔들었다. 본드처럼 들러붙은 화살을 빼내려는 늙은 코끼리 부부가 그리 광란을 할까? 며칠 후 대학병원에서도 동네의원처럼 치명적인 진단을 그에게 내린다면 나도 과호흡을 할지도 모른다.

죽음은 대 문호도 불안이었나 보다.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햄릿의 대화에서 셰익스피어의 절박함이 느껴진다. 고향인 에이 번 강가에 서서 백조야, 네 평화가 부럽구나!’ 독백이라도 했을까? 빛을 ...빛을...하며 안락의자에서 죽음을 맞았다는 괴테의 마지막은 많은 이들의 소망이기도 할 것이다.

코로나를 앓던 지난여름은 생명이 하루살이 같았다. 한 나절 피다 지는 나팔꽃처럼 허무하기도 했다. 돌아올 승차권은 없다는 단 1회 인생, 고열로 타는 목을 보리차로 적시며 처방약을 정성껏 복용했다. 암흑 같던 터널에 희망의 햇살이 비추이기 시작했다. 하늘이 무너져도 정신만 차리면 솟아날 구멍이 있다는 말, 진실이었다.

“OO암이 확실해. 하필 왜 내가 불치병에 걸린 거냐고?”

그의 날선 억양에 할 말을 잃곤 했었다.

염려마세요. 당신 사주는 97세를 충분히 산답니다.”

내 선한 거짓말에 그는 빙긋이 웃었다. 이백 살이라 한들 아쉽지 않으랴. 창세기 구백육십구세를 향유했다는 무두셀라도 가뭇없는 목숨이 아쉬웠을 일이다.

축하드립니다. OO암이 아닙니다. 아무 문제없습니다.”

얼마나 간절했던 한 마디였나. 대학병원의 복음 같은 진단에 쉰 살 가까운 딸은 엄마! 만세여요 만세!’외쳤다. 기다림에 지친 아버지를 얼싸안고는 눈물을 흘렸다. 죽은 부모가 살아오면 그리 반가울까? 담당의사가 사형수를 감형시킨 집정관인 듯 연신 머리를 조아렸다.

그는 머리카락 한 올 다치지 않고 돌아온 교통사고가 여러 번이었다. 그 때마다 빈첸시오! 당신은 신의 아들!’하며 축하를 했었다. 천길 벼랑에 떨어져도 조상이 받아주는 행운의 사나이라고만 여겼었다. OO암이라는 동네의원의 오진 한 마디에 그리 무너질 줄 몰랐다.

내 이십대, 여러 해 불면했었다. 산후 우울증이 수시로 호흡곤란을 가져왔다. 돌 지난 딸이 유치원 입학 후 쯤 세상을 떠날 수 있다면 소원이 없을 성 싶었다. 고희를 진즉 넘긴 지금, 그 때 겪은 지독한 불면증은 신이 주신 특별한 축복이었다고 여겨진다. 죽으면 죽으리라, 선언하고 나니 불면증도 사라졌다. 더 이상 죽음이 두렵지 않았다. 별스럽지 않은 종합비타민이 영약이 된 것도 축복으로 여겨졌다.

남편은 밤마다 묵주기도 중이다. 날이 갈수록 기도는 더욱 깊어지고 있다. 사도신경과 주기도문을 고장 난 레코드판처럼 밤새도록 읊어 주었더니 어느새 신의 무릎에 다가갔나 보다. 삼십여 년 냉담자인 그가 성모상 앞에 앉은 모습은 어머니 품에 안긴 갓난아기처럼 편안해 보인다. 까칠하고 퉁명스럽던 옛 모습 대신 아버지 품으로 돌아온 탕아인 양 평화로워 보이기도 한다. 신은 한 사람을 부르기 위해 여러 사람의 역할을 필요로 하신다더니 치명적인 오진을 한 의사를 천사 삼아 기어이 그를 냉담에서 구원했나보다.

가끔씩 그와 십자가 길을 걸을 때면 스스로 묻곤 한다. 전생에 나는 그의 무엇이었을까, 기도문과 흘러간 노래를 자장가 삼은 엄마였을까? 온갖 보약과 좋은 음식으로 회복을 기대한 열녀였을까? 노비라면 어떠랴! 오늘도 진시황의 늙은 애첩처럼 우주에 꼭 있을 것만 같은 용의 눈알을 찾아 인터넷 샅샅이 서핑 중이다.

그리고는 그의 애창곡 천년지기를 부르며 어느새 익숙해진 광란의 춤을 추기도 한다.

 

내가 지쳐 있을 때/ 내가 울고 있을 때/ 위로가 되어준 친구//너는 나의 힘이야/ 너는 나의 보배야/ 천년지기 나의 벗이야//... 같은 배를 함께 타고 /떠나는 인생길/ 네가 있어 외롭지 않아/넌 정말 좋은 친구야//...

                       『천년지기정동진 작사 김정호 작곡

 

 

                           『문학마당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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