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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소와 바랑부인이 만난곳    
글쓴이 : 박옥희    23-10-11 11:28    조회 : 2,450

                루소와 바랑 부인이 만난 곳

                                                            - 프랑스 안시에 가다 -

 좁아진 티우 운하 사잇길, 장자끄 루소 거리에서 미로처럼 이어진 좁은 골목으로 접어든다. 생 삐에르 성당 옆 작은 마당에는 담장이 넝쿨로 둘러 쌓인 루소의 소박한 흉상이 놓여있고 이런 문구가 있다. “루소가 여기서 바랑 부인을 만났다. (Jean-Jaques Rousseau rencontrait Ici Madame de Warens.)”

 20195, 불문학을 전공한 엄마 책이 아까워 불문과를 선택했다는 딸아이와 그림에 소질이 있어 보이는 초등학교 6학년 외손녀와 함께 프랑스 추억여행을 다녀왔다. 1112일 일정의 자유여행이었다.

  빠리에 도착하여 오페라가 근처에 숙소를 정하고 5일은 손녀딸을 위한 박물관과 미술관 순회에 할애했고, 나머지 날들은 딸아이와 나의 추억이 깃든 곳을 찾아다니기로 했다. 빠리 일정을 마치고 처음 찾은 곳이 안시이다안시는 프랑스 동남부 지방의 오트 사부아주 현이자 가장 큰 도시이다. 스위스 제네바에서 남쪽으로 35km 떨어진 안시호 북쪽 끝에 자리잡고 있고. 알프스산맥 기슭에 자리 잡은 인구 12,57만 정도의 호반 도시이다. 제네바에 속했다가 15세기 사보아 공국의 영토가 되었다. 빙하가 녹아내린 물로 만들어진 에메랄드 빛 안시 호수를 품은 이곳은 은퇴 후 프랑스인들이 가장 살고 싶어 하는 도시이다. 빠리에서 급행열차인 떼제베(tgv)4시간 걸려 안시에 도착했다.

이곳에는 프랑스 국기와 스위스 국기가 나란히 게양되어 있다. 5월임에도 저 멀리 눈 쌓인 알프스가 보이고 그곳 설산에서 녹아 흐르는 물이 운하를 타고 호수로 흘러든다. 알프스 주변의 여느 관광지와 달리 웅장한 자연경관은 없지만 호숫가 벤치 위에 누워서 한없이 휴식을 취하고 싶은 나른한 분위기이고, 포근히 안기고 싶은 풍광이다. 에메랄드빛 투명한 물빛은 유럽에서 가장 맑은 호수로 알려져 있다. 호수 주변에는 이름 모를 꽃들이 아기자기하게 피어있고 나폴레옹 시절의 장군들의 동상이 곳곳에 서 있다. 호숫가에 걸터앉아 햄버거를 먹고 있는 관광객들에게 조금만 나누어 달라고 보채는 백조들의 눈빛이 애처로워 보인다. 동양인 관광객이 드물어서인지 아빠와 손을 잡고 아장아장 산책하던 파아란 눈동자의 프랑스 소녀가 벤치에 앉아 있는 손녀딸을 신기한 듯 한참을 유심히 들여다본다.

중세풍의 건물과 작은 운하가 어우러진 골목은 마치 그림엽서 같은 풍경이다구시가지에 세워진 안시성은 12세기에서 16세기에 건축되었고 지금은 현대미술과 종교미술의 박물관이 되었다. 

 172832116세의 장쟈끄 루소(1712-1778)는 고향 제네바를 떠나 이곳의 풍경 속으로 들어왔다. 루소의 가문은 프랑스의 신교도로서 종교개혁의 박해를 피해 1세기 전부터 주네브에 정착했다.

 루소는 스의스의 쥬네브 공화국에서 시계공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열흘 만에 어머니를 잃었고 10세 때 아버지와도 헤어져 고아가 되었다. 이후 견습 직공으로 살게 되지만 직공 생활중 잔인한 질책과 뭇매가 이어진다. 어느날 성벽을 홀로 산책하다가 산책이 길어지면서 성문이 닫혀 숙소에 돌아가기를 포기하고 자신의 길을 찾아 무장정 방랑 생활로 들어간다. 방랑 중 사보아에서 하룻밤을 재워준 신부가 그에게 안시에 살고 있는 바랑 부인을 소개한다. 그녀는 개신교 신자를 카톨릭으로 개종을 중개하는 28세의 별거녀로 루소보다 13살이 많았다. 루소는 바랑 부인과 처음 만난 장소에 대해 참회록에서 이렇게 적고 있다. “그것은 집 뒤에 나있는 오솔길이었다.(...) 그 장소는 추억에서 빼놓을 수가 없다. 그리고 이따금 그 장소를 눈물로 적시고 키스로 덮었다. 이 행복의 자리에 황금의 난간을 두를 수는 없을까!(...)” 이곳은 루소 운명의 커다란 전환점이 된 곳이다.

숙소에서 5분도 채 안걸리는 곳에 루소와 바랑 부인이 사랑을 속삭이던 유명한 다리가 있다. 안시 호수와 바스 운하가 만나는 곳이다.

 루이즈 엘레노르 드 바랑(Lousie Elenore de Warnes, 1699-1762)은 보오(스위스)의 오랜 귀족가문인 라 뚜르드 삘(la Tour de Pil)의 딸이었다. 로잔느의 뷜라르 댕씨의 장남 르와 집안의 바랑 씨와 아주 젊어서 결혼했다. 아이를 갖지 못했고 결혼생활도 원만치 않았다. 바랑부인은 사르드니아 왕이 에비앙을 방문했을 때 그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16세기 종교개혁 당시 신교도를 피해 주교가 이주해온 안시는 카톨릭의 영향력이 큰 도시였다. 왕은 상당한 연금을 그녀에게 주었고 자신의 보호 아래 두었다. 왕은 근위병 몇 명을 딸려 바랑 부인을 안시로 보냈고. 그녀는 안시에서 신교도를 카톨릭으로 개종을 중개하는 전도사가 되었다. 루소가 그곳에 갔을 때 부인은 그곳에 산지 6년이 되었고, 스물 여덟 살의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그녀 역시 루소의 경우처럼 나면서 곧 어머니를 잃었고 집과 나라를 버렸다.

 운하를 끼고 화려한 저택들이 줄지어 있는 사이에 눈에 띄는 검소한 저택이 있다. 바랑 부인의 단아함과 겸손함이 느껴지는 저택이다. 루소는 그가 엄마라고 불렀던 바랑 부인과 이 집에서 깊은 사랑에 빠졌다. 지금 본관은 경찰서로, 부속 건물은 음악학원으로 사용된다고 한다. 루소는 토리노에서 조각기술을 배웠고, 바랑 부인은 루소를 그곳의 수도원으로 보낸다. 그녀는 루소가 가톨릭 사제가 되기를 원했다. 그러나 루소는 수도원에 적응을 못하고 수도원을 나와 가정교사, 음악교사, 점원, 하인, 비서와 같은 온갖 직업을 전전하면서 다시 방랑 생활로 들어간다.

 루소의 나이 21, 어엿한 청년이 된 루소는 다시 바랑 부인을 만나게 된다. 이때부터 그는 부인의 애인이 되어 그녀를 떠날 때까지 함께 살게 된다루소가 가장 행복했다고 고백한 이 시기 동안 그는 플라톤, 데카르트, 키케로, 몽떼뉴, 빠스칼 등, 철학서와 문학, 기하학, 화학, 대수학, 천문학, 등 자연과학에 이르는 모든 학문을 섭렵했다. 정규교육을 받은 적이 없는 루소에게 바랑 부인은 독서법과 표현법. 순수한 프랑스어와 심지어 철자법까지 가르쳤다. 세련된 프랑스 상류사회에 적응할 수 있도록 예절 교육까지 철저하게 지도했다. 루소는 그의 작품 속에서 이 시기를 자주 회상한다

 1742년 루소의 나이 30세가 되던 해 루소는 바랑 부인과 이별하고 빠리로 떠난다.

 바랑 부인의 가르침과 그녀가 보여준 모범은 루소가 청춘을 보냈던 고독한 전원생활을 견고하게 해 주었고. 그녀의 곁에서 지낸 세월 동안 루소가 흠뻑 빠져 읽은 양서들은 루소의 계몽주의 사상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루소는 참회록에서 바랑 부인의 경솔함과 무분별함을 필요 이상으로 되씹는다. 심지어 부인이 먼저 자신을 유혹했다는 의미의 뉘앙스를 풍기는 말을 흘려넣기도 한다.

  바랑 부인은 1770년 샹베리에서 루소보다 16년 먼저 세상을 떠났다. 그녀의 말년을 지켜 본 주변의 여인들은 바랑 부인이 외로움과 가난의 고통 속에서 영양실조로 생을 마쳤다고 증언했다. 루소는 바랑 부인의 죽음을 6년 후에야 알게 되었다.

 루소의 미완성 회고록인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의 마지막인 열 번째 산책에서 그는 바랑부인을 이렇게 회상했다.

 

열 번째 산책 (루소의 죽음으로 미완성으로 끝남)

 바랑 부인과의 만남을 회상

부활절인 오늘은 내가 바랑 부인을 만난지 50년이 되는 날이다. 당시 그녀는 28살이었고 나는 아직 17살이 안 되었다. 나 자신도 잘 알지 못했던 내 천성이 고개를 들며 생명력 가득한 마음에 새로운 열정을 불어넣을 때였다.(...) 재기와 친절로 가득찬 한 매력적인 여인이 고맙게도 아주 다정한 감정으로 내게 영감을 불어넣어 주었다,”

 바랑 부인은 정규교육을 받지 않은 루소를 세기의 사상가로 훌륭하게 키워낸 역량 있는 여성이었다. 그녀가 없었다면 프랑스혁명도 어찌 되었을까?

 안시에 머무르는 동안 나는 바랑 부인의 서글펐던 운명을 떠올리면서 그녀를 추모했다.

바랑 부인의 영혼이 하늘나라에서는 부디 편안하기를 기원한다.

                                                                         『한국산문2022.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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