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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명 : 김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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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 이즈 웰    
글쓴이 : 김영도    24-04-16 20:02    조회 : 1,923
   알 이즈 웰-한산2022 6월.hwp (84.0K) [0] DATE : 2024-04-16 20:02:05

알 이즈 웰(Aal izz well)

 

김영도

 

카톡방이 바쁘다. 새해 덕담을 나누는데 여념이 없다남편과 해맞이를 다녀온 지 사흘째 되는 날이다. 십여 년 동안 나의 발이 되어준 빨간색 토깽이를 구석구석 털고 닦으며 설치레로 분주하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핸들을 잡고 내친김에 경산 시내 나들이에 나선다.

-, 파바박

순간 모든 것이 멈췄다. 맞은 편에서 우회전하는 차가 돌진해 일 차선까지 들어와 좌회전하는 내 차를 들이받았다. 정신을 차리고 앞을 보니 회색 BMW가 비스듬히 중앙분리대에 머리를 박고 서 있었다. 벌렁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차에서 내렸다. 곱게 단장을 한 토깽이의 몸체가 사정없이 우그러졌다. 온몸으로 부딪친 회색 차는 오른쪽 앞 범퍼부터 뒤 범퍼까지 빨간 토깽이의 흔적을 안고 찌그러졌다.

앳된 청년이 운전석에서 내렸다. 면허증은 있는지 의구심이 들었다. 화가 나서 도대체 운전을 어떻게 하느냐, 신호도 안 보느냐며 호통을 쳤다. 현장 사진을 찍고 보험사에 사고 접수를 했다. 우왕좌왕하는 어린 운전자에게도 우선 보험사에 연락하라고 했다. 사고 접수 문자를 받은 남편에게서 전화가 왔다. 난데없이 당한 사고에 흥분된 목소리로 상황을 설명했다. 남편은 목소리 짱짱한 거 보니 다치지는 않았나 보네. 새해 액땜한 셈 치고 좋게 처리해줘.”라며 전화를 끊었다. 그제야 목을 돌려보고 어깨를 들썩이며 전신을 살폈다. 전화기를 들고 허둥거리는 청년도 다친 곳은 없는지 걱정됐다. 다행히 둘 다 겉으로는 이상이 없었다. 나머지 절차는 보험사에 일임하고 헤어졌다.

따뜻한 국화차를 들고 침대에 걸터앉았다. 차의 향기가 코끝에 머물고 머릿속에서는 새해 액땜한 셈 치라는 남편의 말이 맴돌았다.

어릴 적에 엄마는 입버릇처럼 액땜했다는 말을 자주 했다. 서툰 솜씨로 연필을 깎다가 손을 벤 적이 있었다. 흐르는 피를 보며 조심하지 않았다고 혼날까 두려웠다. 걱정과는 달리 엄마는 손가락을 동여매 주며 앞으로 공부 잘할 거라고 다독였다. 늦잠을 자서 허둥대다 방문에 무릎을 찧었을 때도 학교에서 선생님께 칭찬 들을 일이 있을 거라며 머리를 쓰다듬었다. 명절날 설거지를 돕다가 접시를 깨고 울먹일 때도 괜찮다고 시집가서 잘 살 거라며 달랬다. 작은 일이든 큰일이든, 안 좋은 일은 무엇이든 나중을 위한 액땜이었다. 덕분에 나는 특별히 기억에 남는 나쁜 일이 별로 없다. 대부분의 불운은 액땜이라는 이름을 남기고 사라지면서 행운을 가져오는 씨앗이 되었다.

몇 해 전 딸과 함께 본 영화가 떠올랐다. 각기 다른 사연을 가진 명문대생 세 명이 자신의 꿈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 세 얼간이라는 인도 영화다. 주인공은 두려움에 처했을 때, 무언가를 포기하고 싶어질 때면 늘 왼쪽 가슴을 두드리며 ‘Aal izz well’(다 잘 될 거야)을 외쳤다. 알지 못하는 미래에 미리 겁을 먹고 포기하지 않기 위해서 마음을 속이는 일종의 주문이었다. 답이 보이지 않는 어려움 속에서도 용기를 잃지 않는 주인공의 태도가 인상 깊었다. 딸과 나는 종종 영화 속 장면처럼 알 이즈 웰을 외며 왼 가슴을 두드렸다. 엄마의 단골 멘트였던 액땜이 딸에게는 알 이즈 웰로 바뀌었다. 어차피 나는 잘 될 거라는 자기 확신은 힘든 시기의 버팀목이 되었다.

지난 연말에 셀프 텔러(Self teller)’에 대한 강의를 들었다. 마침 예로 든 내용이 교통사고가 났을 때의 반응이었다. 같은 일을 당해도 받아들이는 태도가 사뭇 달랐다. 아침부터 재수가 없더니, 내가 하는 일이 다 그렇지라고 부정적인 말을 하는 사람도 있지만 차는 망가졌지만, 사람이 멀쩡하니 난 정말 운이 좋아라고 긍정적인 말을 하는 사람이 있다. 이렇게 자신에게 말을 하는 또 다른 내가 셀프 텔러다. 평소에는 나타나지 않다가 살다가 힘들어진 날, 내 뜻대로 안 되는 날, 예상치 못한 스트레스가 찾아온 날 나에게 말을 걸어온다. 숨어 있는 또 하나의 나는 어릴 때부터 보고 듣고 경험한 것으로 길러진다.

액땜 타령은 긍정적인 셀프 텔러의 자양분이 되었다. 내가 저지른 실수마다 나무라고, 칠칠치 못하다고 꾸지람을 들었더라면 스스로 조심성 없는 아이라고 자책했을 터이다. 온종일 찡그린 얼굴로 투덜거리는 하루하루가 쌓였을 것이다. 먹구름 속에서 잔뜩 움츠러든 부정적인 내가 자랐을지도 모른다. 이미 일어난 일에 엎어져 허우적대지 말고 벌떡 일어나라는 엄마의 다독거림은 내 안에 긍정의 씨앗을 심고 키웠다. 예상치 못하고 맞닥뜨린 사고에서 액땜한 셈 치라는 남편의 말 또한 긍정의 에너지를 더해주었다.

엄마의 처방대로 액땜 뒤에 언제나 좋은 일만 뒤따르지는 않았다. 팍팍한 삶의 길목에서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기 일쑤였다. 알 수 없는 미래에 겁이 나기도 했다. 먹구름이 몰려와 궂은 비가 발목을 적실 때마다 내 안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귀 기울여 본다. 엄마의 액땜으로 자라나고, 알 이즈 웰로 다져진 나의 셀프 텔러는 늘 괜찮아, 다 잘 될 거야.”라고 속삭인다.

<한국산문>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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