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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그가 어디여?    
글쓴이 : 박병률    24-10-07 22:16    조회 : 2,683

여그가 어디여?

요양병원 505호실에는 침대가 여섯 개 있다. 침대 위에 환자복을 입은 노인들이 누워 있고 요양보호사가 환자들 시중을 들었다. 병실에서 끙끙 앓는 소리가 들리고, 어떤 할머니는 나를 바라보고 손짓을 해가며 “못된 며느리가 나를 여기에 가둬놨다”고 큰소리했다. 다른 할머니는 양손에 검은 장갑이 끼어 있고 침대에 끈이 매달려 있다. 또 다른 할머니들은 침대에 누워서 눈만 멀뚱멀뚱 뜨고 천장을 바라보고 있다.

어머니가 누워 있는 침대로 향했다.

“엄니, 큰아들 왔어. 주무시는겨, 눈 떠봐?”

“여그가 어디여?”

“00 대학병원에서 요양병원으로 옮긴겨. 엄니, 큰아들한티 할 말 없어?”

“집에 가.”

“지금 왔는디 가라고 그려.”

“아니, 나 집에 가고 싶어….”

“아, 엄니가 집에 가고 싶다고? 집에 가려면 식사 잘하시고 의사 말을 잘 들어야혀.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야 어머니가 덜 아프지, 요양보호사 말도 잘 듣고.”

어머니는 구순이 넘었는데 병원에 입원하면서부터 대소변을 못 가린다. 치매가 있어서 그런지 또 물었다.

“여그가 어디여?”

“00 병원과 같은 병원이란게. 여그 오시기 한 달 전에 00병원 응급실로 실려 갔잖여, 기억나요?”

“몰러, 내가 왜 실려 갔어?”

“갑자기 숨을 못 쉬어서.”

어머니는 평소에 감기기운 있어도 대학병원에서 치료받기를 원했다. 큰 병원에 가야 마음이 놓이는 모양이다. 의사 말에 따르면 심장에 물이 찼단다. 응급실에 도착하자마자 산소 호흡기를 꽂았다. 이후 CT와 MRI도 찍고 보름 입원한 뒤 퇴원해서 일주일 정도 딸네 집에 있었다. 식사도 거르지 않고 잘 계셨는데 갑자기 또 나빠져서 응급실에 실려 갔다. 집중치료실에서 일주일 입원하고 상태가 좋아졌다. 의사는 퇴원을 권했고 형제들과 의논 끝에 요양병원으로 모셨다.

‘밤새 안녕’이라는 말이 있듯, 연세가 많은 노인들은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른다. 어머니가 병원 응급실에 실려 가기 두 달 전쯤, 외사촌 동생 내외가 소고기를 사 들고 어머니를 뵈러 왔다. 동생이 어머니 손을 잡고 말했다.

“고모님, 오래 사시겄네요.”

“우리 친구들은 다 가고 나만 남았어, 왜 나는 안 데려가는지 몰라.”

“고모님, 건강하신데요 뭐.”

고모와 조카가 오순도순 이야기를 나눴는데….

어머니는 석 달 전에 요양병원에 입원했다.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 선 어머니는 언제부턴가 희망의 끈을 놓아버렸는지, 시간이 흐를수록 눈가장자리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 조용히 울고 있는 것일까. 어머니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데 신경림 시인의「갈대」가 떠올랐다.

언제부턴가 갈대는 속으로/조용히 울고 있었다.//그런 어느 밤이었을 것이다. 갈대는/그의 온몸이 흔들리고 있는 것을 알았다.//바람도 달빛도 아닌 것./갈대는 저를 흔드는 것이 제 조용한 울음인 것을/까맣게 몰랐다.//__ 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란 것을/그는 몰랐다.//

시詩 속에 빠져 있는데 어머니가 또 엉뚱한 말을 했다.

“배고픈 설움이 가장 커야, 배고파하는 사람 밥 사줘라. 그리고 남의 눈에 눈물 나게 하지 마라.”

어머니 말씀이 그날따라 유언처럼 들렸다. 나는, 슬픔이 목구멍까지 차올라서 말없이 고개를 두 번 끄덕였다. 어머니는 아프기 전에도 그 말을 자주 해서 우리 집 가훈처럼 내 안에 자리 잡은 지 오래됐으므로.

어머니는 ‘보릿고개’를 겪었다. 보릿고개란, 지난가을에 수확한 양식은 이듬해 음력 4~5월이면 바닥이 나고, 햇곡식인 보리는 여물지 않아서 식량 사정이 매우 어렵다. 이때를 ‘춘궁기 또는 맥령기’라고도 한다.

어머니의 지나온 삶이 떠올랐다. 먹을 것이 부족하던 시절, 어머니가 자식들 밥을 챙겨준 뒤 가끔 말했다. “나는 이따 먹을게, 어찌 오늘은 입맛이 없어야.”라고 말한 뒤 어머니는 부뚜막에 앉아서 물로 배를 채웠다.


한국산문202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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