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흔향영欣欣向榮
이른 아침 고요한 시간에 한자 고사성어 펜습자를 쓴다. 만물이 초록으로 아우성치는 5월, 위대한 자연 앞에서 게으르고 미지근한 내 삶의 반성문을 쓰는 듯 펜을 든 손이 엄숙해진다. 사각사각 만년필 소리에 마음이 정화되는 기분이다. 손글씨를 쓸 일이 별로 없는 시대지만 오래전부터 고해 성사하듯, 혹은 그림 그리듯 써보고 싶었던 야심이 있었다.
펜습자를 뒤적이다 보니 ‘흔흔향영欣欣向榮’이라는 글자가 눈에 띄었다. 이 말은 초목이 무성하게 자란다는 뜻이다. 사전에서는 사업이 번창하는 의미로도 풀이하지만, 원래 도연명의 「귀거래사」에서 유래했다. 부귀와 명예를 좇는 삶과 달리, 자연 속에서 자유를 누리며 살겠다는 그의 선택이 떠오른다.
덜덜 떨면서 정성을 들여 써도 글씨는 맘에 들지 않는데, 초목이 무성한 계절에 어울리는 말이라서 그런지 흥미롭다. 자연은 스스로를 다듬으며 제때에 무성해지는데, 나는 내 걸음이 더디다고 조바심 내고 있지는 않은가? 도연명이 자연의 섭리를 따랐다면, 나는 내 글씨를 위해 부단히 연습하며 정진해야 하지 않을까?
물오른 나무들은 싱그럽게 꽃 피우려 하고/ 샘물은 졸졸 끊임없이 솟아 흐르네/ 만물이 때를 얻음을 부러워하며, 내 삶이 그쳐감을 느끼노라/ (木欣欣以向榮, 泉涓涓而始流. 羨萬物之得時, 感吾生之行休)
이 시에서 ‘흔흔향영’은 제철을 만나 무성한 초목과 중년의 나이에 접어든 도연명 자신의 삶을 대비하여 쓴 말이다. 젊은 시절에 벼슬을 했지만, 혼란한 정치에 환멸을 느껴 결국 관직을 버렸다. 그는 다섯 말의 녹봉을 위해 머리 숙이기 싫어 낙향했다. 이후 ‘오두미지절五斗米之折’이라는 표현이 생겼고, 이는 자존심을 버리고 작은 이익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쓰였다.
도연명은 전원으로 돌아가 다섯 그루의 버드나무 곁에서 책을 읽고 시를 쓰며 지냈다. 스스로를 ‘오류선생五柳先生’이라 불렀는데, 이는 그의 집 근처에 다섯 그루의 버드나무가 서 있었기 때문이다. 검소하고 한가로운 삶을 즐긴 그는 허름한 집에서도 불평하지 않고, “비가 새면 왼쪽으로 가고, 또 새면 오른쪽으로 가면 된다”며 웃어넘겼다. 비록 가난했지만, 그는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았다. 권세와 타협하기보다는 자연 속에서 자유를 누리는 길을 택한 것이다. 그는 술을 사랑했지만, 단순한 탐닉이 아니라 자연과 벗하는 방법으로 삼았다. 친구들에게 술 한 병을 부탁하며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는 일화는 그의 소박한 인간미를 보여준다. 담백한 그의 삶처럼 기교를 부리지 않은 평범한 시풍은 당대에는 인정받지 못했으나, 후대에 이르러 많은 시인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그의 옛집을 찾은 백거이(白居易, 772~846)는 다음과 같이 읊었다.
당신의 단지에 담긴 술이 그리운 것도 아니고/ 줄 떨어진 당신의 거문고가 그리운 것도 아닙니다./ 오직 명예와 이익을 버리고/ 산과 들에서 자유롭게 스쳐 간 당신이 그리울 뿐입니다.
백거이 역시 현실 정치에 대한 염증을 느끼고 벼슬을 멀리한 적이 있었다. 그는 도연명의 작품에서 묘사된 소박한 삶과 자연 속에서의 평온함을 자신의 이상과 동일하게 보았다. 그의 「도연명에게 바치는 시 寄陶潛」에서도 이러한 감정을 드러냈다. “나는 그대의 뜻을 따르고 싶다. 바람과 이슬 속에서 한가롭게 살고 싶구나.”
시대의 귀인이 초야에 묻혀 재능을 쓰지 못한 것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영혼의 자유로움을 선택한 한 인간의 정신 해방, 내면의 승리는 눈부시게 부러운 일이다. 남의 밥을 빌어먹을 정도로 가난하다면, 나는 부끄럽게 여기지 않을 자신이 있을까? 권세와 타협하지 않을 배짱이 있을까? 흔흔향영, 날로 번창한 삶을 추구하고 싶은 욕망을 쉽게 떨쳐내지 못했으리라.
62세에 세상을 떠나기 전, 도연명은 살아 있는 동안 훗날의 자신에게 바치는 자제문自際文을 썼다. 그는 이승의 삶을 ‘기우寄寓’라 하여 남의 집에 잠시 의탁하는 것이라 보았고, 죽음을 ‘역려지관逆旅之館’이라 하여 이승에 잠시 머물던 여관에 비유했다. 술과 시, 거문고를 벗 삼아 안빈낙도하며 삶의 본질을 꿰뚫고 자연에 순응하며 자유롭게 살았지만, 이승에서의 삶이 고달팠기에 그는 “사후에도 그러면 어쩌나?”라고 걱정하는 제문 마지막 문장은 유난히 가슴을 울린다.
도연명은 고향으로 돌아가며 그 소회를 「귀거래사」에 담았다. 천 년이 지난 지금도 이 글이 우리의 가슴을 울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가 선택한 자연 속 자유로운 삶은 복잡한 도시에 사는 현대인들에게 여전히 이상향으로 남아 있다.
도연명의 삶을 떠올리며, 나는 오늘 무엇을 선택하고 있는가를 생각해 본다.
그는 관직과 부귀영화를 버리고, 가난을 감수하면서도 신념을 지키는 길을 택했다. ‘무위자연(無爲自然)’, 인위적인 욕망을 버리고 자연의 이치에 따르는 태도. ‘안빈낙도(安貧樂道)’, 가난 속에서도 도를 즐기는 삶. 그가 남긴 철학은 시대를 초월해 깊은 울림을 준다.
만년필로 한 구절을 노트에 옮겨 본다.
삶의 본질은 소유가 아니라 존재에 있다는 진리, 이는 변하지 않을 것이다.
모든 것이 끝난다/ 우리 인간에게는
그렇게도 적은 시간이 허용되어 있을 뿐/
그러니 마음 내키는 대로 살자/ 애를 써서 어디로 갈 것인가?
나는 재물에 욕심이 없다/ 천국에 대한 기대도 없다
청명한 날 혼자서 산책을 하고/ 등나무로 만든 지팡이를 끌며
동산에 올라 오랫동안 휘파람을 불고/ 맑은 냇가에서 시를 짓고
이렇게 나는 마지막 귀향할 때까지
하늘의 명을 달게 받으며/ 타고난 복을 누리리라
거기에 무슨 의문이 있겠는가
-피천득 번역 「귀거래사」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