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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 년에 천 끼    
글쓴이 : 봉혜선    25-01-21 12:58    조회 : 401

일 년에 천 끼

 봉혜선

 “식사 하셨습니까?” 남편의 입은 언제나 이렇게 떨어진다. 아침과도 멀고 점심때도 저녁때도 아닌 시간에도 인사말은 한결같다. 전화 통화도 밥을 물어보는 말로 시작한다. 이 인사말은 끼니를 거르는 것이 먹는 것보다 더 흔하던 시절의 안부 인사였다고 한다. 해방 후의 혼란을 거치며 아침에 만나는 사람들에게 건네던 밤새 안녕하셨습니까?” 라는 말과 더불어 지난 시대의 증인으로써 살아남은 말이다. 누가 잘 산다는 카더라통신에 대한 반응 또한 밥이다. “밥술 꽤나 뜨고 사나 보군.” 갑자기 외제차라도 샀다는 소식에도 밥은 먹고 사나 보네혹은 밥 좀 먹고 살 만한가 보군.” 이다. 시절이 어느 때건 밥은 생명이던가.

 고등학교 1학년 때 큰아이는 6시 반이면 집을 나서야 했다. 아이는 밥 외에 별다른 간식을 즐기지 않았다. 6살 생일 때 동네 잔치한 과자가 다음 생일까지 덜어낸 봉지에 그대로 남아있기도 했으니까. 대신 밥을 무척 좋아했다. 반찬이 많아도 무엇이든 골고루 먹었다.

 어느 아침 반찬 가짓수가 많은 듯해 세어보니 열두 가지였다. 가스 렌지 7개가 다 돌아갔다. 반찬을 골고루 먹은 아이의 표정이 완전군장을 한 씩씩한 군인 모습이었다. 학교를 먼 데로 보낸 미안함이 잠시 가셨다. 밥으로도 천 일 기도 드리는 정성을 갈음할 수 있다고 스스로를 위안했다.

 일반적인 인사말인지 한때 TV 프로에서 제목으로 <밥은 먹고 다니냐?>를 내걸었다. 대세가 된 혼족들이며 집 밥 먹기 어려운 동료 연예인들이 초청되었고 지나다니는 사람들 중 몇이 식당에서 밥을 나누는 내용이었다. 집에서 밥을 먹으면서 나눌 법한 사소한 이야기가 곁들여지며 엄마의 손맛 같은 따뜻하고 심심한 맛이 초청 손님을 울렸다. 다시 먹고 싶으며 언제든 먹고 싶은 밥이라는 평을 받았다. 식당주인으로 나오는 탤런트의 입담과 격려가 밥을 더욱 밥답게 치장했다면 과장일까. 밥 하면 자연히 떠오르는 푸근한 엄마 이미지를 얹어 프로그램은 그리움으로 한동안 눈길을 잡았다.

 어쩌다 외식할 기회가 생겨도 나는 한식이나 한정식은 싫다. 늘 먹는, 이 아니라 늘 차려야 하는 반찬이 주르륵 나오는 밥보다는 차라리 라면이 낫다. 우스개로 여자는 라면이라도 밖에서 먹고 싶어 하고 남자는 라면이라도 집에서 먹고 싶어 한다고 한다. 먹는다는 것만을 따지면 무엇을 가리랴. 라면냄비를 꺼내야 하고 끓여야 하고 파나 계란(파는 송송 썰어야 하고 계란은 탁 깨야 한다.) 냉동해 둔 떡국용 떡이나 치즈를 생각해 내야하고 (남편은 해물을 좋아해서 오징어, 새우, 기타 등등을 넣어야 한단다.) 김치, 피클 등등의 어울리는 반찬을 차려야한다. 그리고 절대적이고 강력한 강자인 설거지를 간과해선 안 된다. 냄비와 수저 등속이 제자리를 잡아 들어가기까지 한 끼는 끝나도 끝난 게 아니다.

 외식비에는 이 모든 과정과 귀찮음 비용이 포함되어 있다. 간단하게 라면? 천만에. 간단하게 짜장면? 한창 먹던 시기에 아이들과 짜장면 대신 손수레 분식을 먹였을 때 순대, 어묵꼬치 등이 짜장면 비용보다 더 나왔다. 간단하게 냉면? 유명 냉면 전문점은 계절을 타지 않는다지만 그래도 냉면은 여름이다. 음식 준비하는 내 수고를 덜 생각이 아니라 입맛이 냉면에 꽂힌 온 식구가 냉면집에 갔을 때다. 주문은 냉면 4개와 사리 3순식간에 그릇을 비운 식구들이 집으로 가다가 들어간 곳은 아이스크림 전문점. 각자 한 통씩 주문하기로 했다. 한 통에는 4가지 종류의 아이스크림이 들어가니 양이 상당한데 아무래도 냉면이 양이 부족했다는 중론이었다. 혼자 있는 때면 간단하다. 이 모든 동작을 그칠 수 있다.

 남편의 밥 사랑은 유별나다. 밥 한 끼 주는데 뭐 그리 힘들이고 뜸들이냐면서 어느 땐가는 혼자 밥을 퍼다 먹어치웠는지 의자를 밀고 물러나는 소리가 들렸다. 찌개를 올려두고 반찬을 꺼내는 내 등 뒤에서 벌어진 사건이다. 하도 기가 막혀서 찔끔 눈물이 나왔다. 내가 한 끼도 저리 대접하지 않았는데, 정말 저 정도로 배가 고픈 걸까. 혹은 나를 시험에 들게 하려고 맨밥을 먹은 건가. 심경이 복잡했다.

 남편은 퇴근 후 5분 내에 밥숟가락을 들면 제일 좋다고 자신의 의견을 분명히 밝히고 들어오기 전에 전화를 한다고 했다. 궁리 끝에 아이들이 나가 휑한 식탁에 전기밥솥을 갖다 놨다. 좋아하는 유기 밥그릇도 옆에 두었다. 수저통도 식탁으로 자리를 옮겼다. 내 눈에는 차지 않았고 오랜만에 집에 온 아들 눈에도 놀라움이 가득하지만 남편의 맘에는 맞춤한 배치가 영 맘에 드는 것 같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톨스토이적인 물음 앞에서 남편은 1초도 망설이지 않는다. “밥으로 산다.” “빵만으론 살 수 없다.는 혁명 문구 앞에서도 당당하다. “밥만으로는 살 수 있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아랫목에 묻어둔 밥통의 반나마 넘은 밥을 김치 한 보시기와 순식간에 먹어 치웠다는 고등학교 때 일화를 들려주는 남편,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팠다는 남편은 아버지가 하는 공장에 야식 내가는 어머니를 도우며 야식을 해결했다는 이야기를 그리운 듯 자주 입에 올렸다.

 큰아이가 중학생인 어느 토요일 남편이 퇴근해 샤워하는 동안 아들이 친구 둘과 라면 한 박스를 끓여 순식간에 다 먹고 본인 먹을 국물 한 방울 남지 않은 상태를 20년 내내 입에 올리며 서운했던 마음을 토로하곤 한다. 아이들이 어렸을 적 과자인지 사탕을 나누라고 하니 나 하나, 큰애 하나, 나 하나, 작은애 하나, 나 하나, 아내 하나하며 배분하던 욕심, 아니 먹성이니... .

 빈곤한 중에 공자의 거처에서 오랜만에 밥을 했다. 밥 냄새에 이끌려 부엌을 들여다보니 애제자 안회가 밥을 푸다가 먼저 제 입에 가져가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얼마나 배가 고팠을까 생각하면서도 쌓은 덕이 저 정도인가 하는 의심을 했다. 밥을 푸는 일을 맡겼더니 먼저 먹었는가 싶어 나중에 물어보았다. 제사에 올릴 밥을 푸다가 흘린 밥이 아까웠다고 잘못했다고 고백하는 안회에 대해 의심을 한 자신을 반성한 공자. 밥 앞에서 초연하기는 얼마나 어려운가.

 하나의 음식은 하나의 세계다. 하나 이상의 세계를 창조하느라 매 끼마다 부산하다. 그 밥에 그 나물이라고 밥 좋아하는 남편 옆에서 세월을 쌓았다가 허물기 근 40년이다밥이 보약이라고 했다콩밥을 안 먹으면 잘 사는 것이라 했다. 하던 밥이니 하며 지내야겠다. 마실 물을 팔더니 이제 밥도 인스턴트로 잘 나오지만 이제야 밥하기가 쉽다. 반찬이 필요 없는 밥쯤이야. 흰밥, 잡곡밥, 콩밥 야채밥은 물론 찹쌀이 들어간 삼계탕이니 죽에 더해 누룽지까지 만들어 주는 전기밥솥 스위치 누르기가 어려울 수는 없다.

 ‘밥심’,  늙으면 밥심으로 산다니 살게 하려면 나는 밥을 하자. 일 년에 천 끼 넘어도 따듯한 밥 한 그릇이면 된다지 않은가. 다 된 밥에 재 뿌리지 말아야지.

<<문예바다>> 2024, 겨울, 4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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