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시아 꽃이 피는 5월이오면 내 젊음과 겹겹이 쌓여있던 추억이 샘물처럼 쏟아진다. 바람을 기다리며 푸른 잎과 하얀 꽃 주머니를 늘어뜨린 아카시아는 허공을 건너 날아온 바람의 몸짓에 살랑살랑 춤으로 반긴다. 하얀 치아까지 내보이며 눈도 맞추는 꽃들, 그 흔들리는 향기가 지나는 사람들의 마음을 끌어 담는다. 매년 이 계절이 기다려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초등학교 시절 우리는 책보를 허리춤에 혹은 몸 대각선으로 메고 하굣길에 아카시아와 만났다. 친구들과 잎 줄기를 뜯어 가위바위보 게임을 했다. 이길 때마다 한 잎씩 뜯어내어 먼저 없어진 사람이 승자가 된다. 같은 나무의 잎이라도 이파리 수가 달라 게임 전에 같은 숫자로 맞추곤 했다. 때로는 더 빠른 승부를 위해 군밤 주는 손가락 모양으로 한 번에 여러 잎을 떨어뜨리기도 했다. 마땅한 놀이 시설이 없던 시골 촌아이 들의 여흥이었다.
더위가 기승을 부리면 아카시아 나무의 성긴 그늘에 앉아 꽃향기와 함께 공기놀이를 즐겼다. 허기가 지면 단맛이 나는 아카시아 꽃을 따서 씹어 먹었다. 떫은 맛이 나는 꽃은 강한 입김으로 훅 불어내어 하얀 꽃 폭포수를 만들었고 친구들과 멀리 불어내기 시합도 했다. 여기저기서 동시에 품어내면 순식간에 도로 한쪽에 하얀 주단이 깔렸다.
여자아이들은 꽃으로 목걸이를 만들어 친한 남자아이에게 주었고, 그러면 어김없이 “누구는 누구를 좋아한다네~”하는 놀림이 이어졌다. 이런 연고로 아카시아 꽃말이 '사랑' 혹은 '우정'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때로는 꽃을 따다가 꿀을 따는 벌을 건드려 쏘이기도 했다. 얼굴이나 눈꺼풀에 쏘이면 균형이 일그러져 친구들의 놀림거리가 되었지만, 그렇게 떠들고 웃다 보면 어린 시간은 어른 시간처럼 도로에서 일어나는 먼지와 함께 빠르게 미끄러져 갔다.
세월이 흘러 지난 해 5월 어느 날 뒷산으로 산책을 나갔다. 상큼한 향기가 솔솔 나서 발걸음을 옮기니 밑동 직경이 2미터가 넘는 아카시아 세 그루를 비롯 거대한 군락지가 나를 맞이했다. 수많은 아카시아들이 일제히 하얀 꽃주머니를 늘어뜨리고 짧고 수줍은 평화를 누리고 있었다. 꽃 가지를 당기자 향기가 코에서 머리로, 가슴으로, 온 몸으로 고루 퍼졌다. 따스한 봄이 산을 둘러 안고 게으른 시간 놀이를 하고 있었다.
환경과 기후의 영향으로 벌이 줄어 든다는데 혹 꽃 속에 벌이 있나 눈을 돌려보았으나 보이지 않았다. 벌이 없는 꽃밭의 안타까움과 그래도 피어서 향기를 발산하는 꽃을 두고 가기가 아쉬웠다. 다시 코를 꽃에 대고 지그시 눈을 감으니 정들었던 어린 시절의 고향 풍경이 보였다.
비포장도로 옆 아카시아 나무, 자갈길을 달리며 소리 지르던 친구들, 짙은 먼지를 뿌리며 지나가는 트럭, 자전거를 타다 넘어지는 이웃 동네 아저씨, 농부가 몰고 가는 소 달구지, 논에서 우는 개구리, 예뻤던 누나의 얼굴… 모두가 칼라 종이 딱지처럼 눈앞에 펼쳐졌다. 한동안 잊고 있던 추억 창고 문이 활짝 열렸다.
아카시아 꽃 추억과 함께 누나와 자주 불렀던 ‘과수원 길’노래가 입가에 맴돈다. 누나가 급성 치매로 기억이 흐려져 갈 때도 기억의 끈을 놓지 않기를 빌며 서로 전화기를 붙들고 이 노래를 불렀다. 가사를 잊어 노래가 끊기는 누나 모르게 눈물로 불렀던 노래. 그토록 동생을 사랑하고 많은 대화를 나누던 누나는 2년 전 무심한 사람처럼 홀연히 우리 곁을 떠났다. 아카시아는 여전히 그리운 누나의 환한 모습을 비춰준다. 보고 싶을 때면 혼자 노래를 부른다. 누나의 손을 잡고 먼 옛날의 과수원 길을 걷고 싶다.
동구 밖 과수원 길 아카시아 꽃이 활짝 폈네
하얀 꽃 이파리 눈송이처럼 날리네
(...)
아카시아 꽃 하얗게 핀 먼 옛날의 과수원 길
작년 초 셋째 형님이 준 아카시아 꿀이 담긴 병에서도 하얀 꽃이 보인다. 뚜껑을 열면 꽃 향기도 묻어 나온다. 조카는 엄마의 생일이나 엄마와의 추억이 생각나는 날이면 울먹이며 "외삼촌 잘 계세요? 저 승범이예요" 하며 전화를 걸어온다.
"오, 승범아, 너 엄마 생각나서 전화했구나?”
“네, 막내 외삼촌."
엄마가 제일 좋아했던 막내 외삼촌 목소리에 자기 엄마 목소리와 비슷한 톤이 많아 내 목소리라도 들으면 엄마 목소리를 들은 듯 위로가 되고 마음에 평온이 온다고 한다. 엄마가 그리워 가끔 훌쩍이는 조카를 생각하면 뭉클함에 가슴이 먹먹해진다.
“조카야~ 나도 네 엄마가 보고 싶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