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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글쓴이 : 오길순    25-04-29 23:35    조회 : 67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오길순

 미사 시간에 눈물이 사무쳤다. 국도 8차선 사거리 중앙에서 공중제비처럼 충돌한 자동차가 가드레일에 사뿐히 머문 일이다. 40m쯤 유턴하면서도 그물에 걸리지 않은 바람처럼 정착한 것은 신의 도움이 아니었을까? 사랑의 구원자 112대원들의 손길도 잊히지 않는다. 6mm 오차로 총격을 피했다는 미국 대통령 후보처럼 1mm쯤의 오차로 살아남게 한 기적에 문득 한 구절이 떠올랐다.

천애 고도/벼랑에 매달린 찰나에도/당신의 날개는/가련한 이 몸/지상의 가장 잔잔한 자리에/

고이 안아다 뉘셨네// 당신의 날개는 얼마나 큰지/갈음이 어려워라//당신의 가슴은 얼마나 높고 너른지/알 길 없어라//당신은 나의 영원한 반석/영원무궁한 수호천사/숨결 끝까지 //

202311월 초는 가로수가 몽환적이었다. 차창까지 흩날리는 샛노란 은행잎이 마음을 흔들었다. 횡단보도 3차선에서 무심히 트럭을 따라간 게 원죄였다. 사거리 중앙에서 15도쯤 좌회전하는 순간, 왼쪽에서 직진해온 자동차를 피할 길이 없었다. V자로 구겨진 자동차 옆구리는 죽음을 불사했던 순간을 말해 주었다.

눈을 떴을 때는 엔진 소리만이 헐떡였다. 창문도 산산이 깨져 있었다. 운전석 가까이 1밀리미터만 가까웠던들 저승길이었으리라. 창세기 아담이 준 갈비뼈를 몇 개쯤 골절시키고는 차 사이로 막 간 40m쯤의 유턴은 영원한 수수께끼이다.

사반세기를 함께 한 애마였다. 타버린 고향집을 본 순간이 그러할까? 연인 대신 물에 빠진 어떤 사나이 순애보가 그러할까? 주인만 살린 채 용광로로 직행한 자동차를 생각하면 눈물만 흘렀다. 임진각에서 땅끝까지, 영종도에서 제주까지, 해수욕장 갈증도 한계령 눈보라도 겁내지 않던 15km. 주인의 숨결을 귀신처럼 알고 거침없이 날던 쇳덩이. 백두산까지라도 함께 할 줄만 알았던 애마가 렉카차에 끌려갔을 생각을 하면 날개 잃은 새처럼 슬퍼졌다. 지인들은 전생에 내가 선덕을 많이 쌓았나 보다며 차 사이로 막 간’ 75도쯤의 기적의 여백 길에 감탄하곤 했다.

그날은 친지 결혼식이었다. 한복으로 성장하랴, 남편과 병원 동행하랴! 예닐곱 장소를 왕복해야 하는 게 은근히 부담되었다. 나도 모르게 한마디가 툭! 튀어나왔다.

난 팔자가 드센가 봐. 이 나이에 왜 이렇게 바쁜 거래?”

불과 한 삼십 분 후를 예견한 걸까, 부정적인 한마디가 하루 일진을 결정했을까? 생각과 음식만으로도 생활 유전자가 바뀐다는데, 순풍을 역풍으로 만들었을까?

시할머니는 참 영리한 분이었다. 말씀도 기도처럼 정성스러우셨다. 동네 초상도 예견하시는 그분을 사람들은 초능력자라도 되는 양 숭앙했다. 특히 유언으로 하셨다는 애국가 한 소절은 반세기가 지났어도 염원처럼 남아있다.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

나라 위한 기도였을까? 훗날 종 손주며느리를 향한 당부였을까? 시가에서 잠들 때면 내 엉덩이를 토닥토닥 두드려주던 분, 첫 손주며느리였기에 살뜰히도 아끼셨을 터. 그물에 걸리지 않은 75도 여백 길은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유언하신 시할머니 덕분이 아니었을까? 사람들은 홍수 난 개울가를 구경하듯, 불난 집을 바라보듯 자동차를 에워싸고 있었다.

살았어? 죽었어?”

구겨진 쇳덩이를 보며 발을 구르는 이도 있었다. 광속으로 유턴한 자동차가 무사하리라고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화살처럼 꽂히는 그들의 눈빛들이 애틋한 기도처럼 다가왔다.

무엇보다 112구급대원들의 성심을 어이 잊으랴! 상처를 닦는 젊은 구급대원들의 손길이 갓난아기를 안은 어머니처럼 따뜻했다. 소독솜으로 유리 파편을 닦아주는 손길이 자장가처럼 편안했다. 얼마나 많은 위급환자를 살렸기에 그리도 부드럽고 민첩할까? 피 묻은 침을 연신 컵으로 바꿔주는 눈빛이 눈물겹도록 고마웠다. 신은 사람을 통해 사랑을 전한다더니 구급대원들을 통해 무한사랑을 전해 주었다.

나는 그날 숨어 있는 천사들을 보았다. 세상을 지극히 수호하는 아름다운 천사들을 구급차에서 보았다. 그들의 소중한 손과 발길이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리라. 영원히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2025.5. 월간문학67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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