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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대한 제국의 수도, 로마    
글쓴이 : 김데보라    12-05-30 16:40    조회 : 5,203

시스티나 성당의 천지창조와 최후의 만찬
 
천재들의 도시 피렌체에서 로마에 입성하니 서늘해진 어둠이 반긴다. 사위가 어두워 위대한 로마의 정신은 느낄 수 없다. 숙소로 정한 호텔 건너편의 한국식당에서 김치와 우거지 국이 곁들여진 저녁을 먹고 푹 자고 일어났다. 오늘은 볼 것이 많은 오래 걸어야 하니 호텔식인 커피와 베이컨을 곁들인 빵과 과일로 배를 든든하게 채우고 바티칸 박물관으로 향했다. 성벽으로 둘러진 박물관 앞에는 전 세계에서 몰려 온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어떤 포탄도 뚫기 힘들어 보이는 거대한 성벽이 둘러싼 요새 같은 박물관에 아침 9시경, 1시간정도 줄을 서기다리다가 15유로를 주고 입장했다. 세계 3대 박물관 중 하나인 이곳은 교황이 거주하는 곳이다. 20개에 달하는 박물관과 미술관, 도서관이 있어서 중요한 대표작만 보는 데도 2시간이 걸린다. 내부에서 가이드의 설명을 들을 수 없기에 피냐 정원에서 안젤로의 개관적인 설명을 들었다.
 
 
박물관을 구석구석 돌면서 안젤로가 설명해 주는 수많은 작품들을 보았지만 너무 많이 보아서 헷갈린다. 아니 기억이 나지 않는다. 볼 것이 너무 많은 것도 유익하지 않다는 걸 깨달은 날이다. 단지 하나 확실하게 기억하는 건 밀집한 사람들 속에서 목을 빼고 올려다가 본 시스티나 소 성당의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이다. 제단 뒷벽의 벽화에는 <최후의 심판>이 있다. 미켈란젤로가 61세가 된 해 시작하여 6년 만에 끝낸 작품이다.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을 그릴 나이가 가까운 나로서는 그 작품에 관심이 배가될 수밖에 없다. 최후의 심판 그 자리에 내가 부끄러움 없이 설 수 있다면 지금 죽은들 어떠랴. 행복할 뿐이다. 그것 외에도 역대 교황들이 모은 수집품들이 주를 이루고 있는 이곳에서 고대 그리스와 로마, 르네상스 시대의 유명한 대리석 조각들과 회화들과 라파엘의 방도 빼놓지 않고 보아야 한다.
 
라파엘의 방에는 <오스티아 해전의 승리>라는 그림이 있다. 레오 4세가 전투에 나가 병사들을 축복하는 장면이다. 그 전투에서 붙잡은 병사들을 데려다가 성벽을 쌓는 노예로 삼았다. 그 후 15세기 중엽에 이르러 교황 니콜라스 5세가 거대한 성벽을 증축해서 지금의 바티칸 박물관으로 남은 것이다.
 
베드로 사도의 시신이 안치된 웅장한 성당 안으로 발을 옮긴다. 기독교인으로써 다시 갖기 힘든 고귀한 순간이지만 사람들이 북적거려 도무지 베드로 사도를 향한 신심을 추스를 수가 없다. 수도사들이 그러기에 사람이 드문 곳으로 떠나는가 보다.
 
 
베드로 성당과 광장에서 30만의 환호소리를
 
 
미켈란젤로는 베드로의 영혼을 하늘로 오르게 하기 높이 136미터의 돔(Dome)을 지었다. 로마에 고층 건물이 없는 것은 그 이상의 높은 건물을 짓는 걸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 돔의 바로 아래 베드로 사도의 무덤이 있다. 1950년 성당 안 제단 아래에서 베드로의 유해가 발견되었다. 12월 교황 비오 12세는 세상에 이 사실을 공표했다.
 
 
사람들이 유난하게 많이 몰려 있는 곳이 바로 이 지점이다. 그 무덤 위로 검은 나선형의 청동 기둥 네 개가 천장을 향해 올라간다. 기둥 위의 지붕은 황금색으로 금박을 입혀 놓았다. 지붕 위 네 귀퉁이에 조각상들이 서있고 맨 꼭대기에는 황금의 십자가가 번쩍인다. 1633년 베르니니가 인간의 영혼이 천국으로 올라가는 것을 형상화한 것이다.
 
 
네 기둥을 중심으로 뻗은 홀 안에서 신도들이 미사를 드리는 구조이다. 6만 명이 들어 갈 수 있는 최대 규모의 성당이다. 이 안에는 예수가 땀을 닦은 수건이며 못 박혔다는 십자가의 나무 조각과 옆구리에 찔렸다는 창이 소장되어 있다. 그 고난 받은 예수의 성물을 가지고 있는 성당에서 거룩한 하나님을 느낄 수가 없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사람들에 휩쓸리다시피 베드로 광장으로 나왔다. 북새통을 이루는 곳에 있다가 시야가 확 트이는 광장으로 나오니 머리가 다 상쾌하고 맑아진다. 이곳에는 좌우 폭이 240미터로 30만 명의 군중을 수용할 수 있다고 한다. 정면은 베드로 성당 입구이다. 그 좌우로는 반원형으로 생긴 회랑에는 4열로 줄지어진 그리스식의 원주 284개의 건축물이 서 있다.
 
 
광장 중앙에는 서기 40년 칼리굴라 황제가 이집트에서 운반해 온 높이가 25.5미터, 무게 320톤의 오베리스크가 멋지게 세워져 있다. 매주 일요일이면 교황의 집무실 창문이 열리면서 광장에 모인 군중에게 강복을 내린다고 한다. 광장의 설계자는 잔 로렌초 베르니니이다. 그는 교회가 모든 사람을 포용하는 것을 원했다. 미켈란젤로가 설계한 성전의 돔을 머리에 두고, 반원형의 회랑 두 개를 팔로 묘사해서 성전이 두 팔을 벌려 사람들을 모아들이는 모습을 표현했다.
 
 
베도로 광장에 서보니“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이 실감난다. 위대한 로마의 30만 군중이 모여서 환호하는 모습이 환상처럼 어른거린다. 땅을 흔들듯이 환호소리가 귀를 울린다. 베드로 성당을 배경으로 한 사진을 찍고 광장을 벗어나자 정오의 햇살이 뜨겁게 돌길을 달군다. 로마인처럼 돌길을 걸어 내려와 골목에 있는 중국집에서 간단하게 점심을 먹었다.
 
 
처녀의 샘, 해신 포세이돈과 트리톤
 
 
삼거리인 트레비에 세워져 그 이름 그대로 트레비 분수가 되었다.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룬다. 비집고 들어가 사진 한 장 제대로 찍기 힘들 지경이다.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가 이름 붙여준 처녀의 샘이라는 작은 분수가 있던 이곳, 전쟁에서 돌아온 병사들에게 물을 준 한 처녀의 전설을 분수대에 형상화한 것이다. 1732년 교황 클레멘스 13세가 니콜라 살비에게 명해 화려하고 웅장한 조각상을 세우면서 유명해지기 시작했다..
 
 

로마는 서로마제국이 멸망한 뒤 상수도가 파괴되면서 급수난에 시달리다가 15세기 이후에 상수도와 분수를 만들면서 해소시켰다. 그 중에서 가장 큰 것이 트레비분수다. 분수대는 바로크양식의 최고 걸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넓적한 장방형의 벽에 교황 클레멘스13세의 이름과 그 밑에‘처녀의 샘(Aquam Virginem)’이 새겨져 있다.
 
 
트레비 분수는 바다의 신 넵튠(포세이돈), 아들 트리톤이 양쪽에서 말을 이끄는 전차 위에서 조개를 밟고 서 있는 모습을 조각한 것이다. 1954년 영화 <분수 속의 동전 세 개(Three Coins in Fountain) >가 개봉되어서 아카데미상을 받으면서 더 유명해 졌다.
 
 
영화에서 나오는 세 처녀가 분수 속에 동전을 하나씩 던진다. 분수에 동전 하나를 던진 사람은 다시 로마를 찾게 되는 행운이다. 두 개의 동전을 던지면 결혼의 행운이 따른다. 세 개의 동전을 던지면 이혼의 비운이 찾아온다고 한다.
 
 
관광객이 던지는 동전을 하루에 미화로 4천불이 넘는다고 한다. 극빈자들을 돕는데 사용한다. 분수 속에는 동전이 가득 담겼다. 주기적으로 청소를 할 때 수거해서 불쌍한 사람들에게 준다고 하니 가방 속에 있는 동전을 하나만 남기고 몽땅 던져 넣었다. 몇 개를 던졌는지 셀 수 없으니 나에게는 어떤 행운이 찾아올지?
 
 
근처에는 아이스크림이 유명하다는 상점들이 즐비하다. 한 집에 들어가 키위와 딸기로 만든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한국에서 먹던 아이스크림과 맛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
 
 
로마라는 지명은 늑대의 젖을 먹고 자란 로물루스 형제에게서 유래한다. 그 형제가 기원전 753년 5월, 티베르 강 인근의 팔라티노 언덕에 성을 쌓으면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쏟아지는 오후의 태양이 뜨겁다. 포로 로마노(Foro Romano)에서 바라보는 햇살이 무색하리만치 한 줄기의 찬바람이 캄피돌리오 언덕을 내려가고 있다.
 
 
포로 로마노 동쪽엔 콜로세움이 웅장하게 서있다. 서쪽엔 테베레강이 흐른다. 남쪽엔 팔라티노 언덕과 북쪽엔 캄피돌리오 언덕이 자리 잡고 있다. 팔라티노 언덕에는 초대 왕 로물루스가 머물렀던 왕궁의 흔적은 어디에도 없다. 단지 그로부터 700년 뒤에 세워진 도무스 아우구스투스의 형체는 남아 있다.
 
 
아우구스투스가 기원전 63년 대저택으로 지은 도무스 아우구스투스는 서로마제국이 멸망할 때까지 로마 황제들의 거주지가 되었다. 영어로 왕궁을 뜻하는‘팰리스(palace)’는 이 팔라티노에서 나왔다. 팔라티노 언덕 아래에 포로 로마노 즉, 고대 로마 광장이 길게 뻗어 있다. 유적지에 흩어진 바실리카와 시저의 신전, 새틴신전, 베스타 신전, 카스토르와 플룩스 신전 등에서 로마인의 종교상을 엿보게 된다.
 
 
또한 최고 정치기관인 원로원이 있던 곳에서 키케로와 안토니우스, 명장 카이사르가 연설을 했다. 줄리어스 시저인 그의 명언으로는“주사위는 이미 던져 졌다”,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가 있다. 그의 연설이 살아서 호흡하는 폐허가 된 포로 로마노. 최초의 스톤골룸(Stone Golem) 세워진 이곳엔 죽은 망령들이 떠돌고 있다.
 
 
스산하고 황량한 바람만 풀풀 날리는 이곳이 포럼(Forum)의 근원지이다. 포럼은 토의의 한 방식이다. 사회자의 지도 아래 한 사람 또는 여러 사람이 간략한 연설을 한 다음, 청중이 그 내용에 대하여 질문하면서 토론을 진행하는 방식이다. 로마는 도시마다 이 포룸(Forum)을 두었다. 서로마 제국이 멸망한 뒤에는 이곳이 토사에 묻혀버렸다. 그 후에는 성당과 별장, 요새 등을 세우기 위해서 이곳의 건물을 뜯어다가 건축자재로 사용했다고 한다.
 
폐허에 남겨진 나무들만이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고독하고 쓸쓸한 풍경 앞에 고개를 숙인 채 깊은 상념에 잠겨 있다. 라파엘로는 폐허가 된 이곳을 보고“1500년 동안이나 끄떡없이 굳건하던 고대 로마의 건물들이 불과 한 달 만에 이렇게 해체되어 버리다니…”라고 슬퍼했다. 나 역시 슬펐다.
 
 
옛 시대의 위용을 마음껏 구가하던 건물들이 새워졌던 이곳에서 고대 로마의 웅장함은 느낄 수가 없다. 그저 인생무상만을 느낀다. 하찮은 일에 아옹다옹하며 싸울 일이 아니다. 다 지나가면 폐허가 되어 무너진 흔적만 남길 것이기에……. 시기하고 질투하고 미워하고 경쟁하고 살기에는 인생이 너무 짧다.
 
망령들이 떠도는 포로 로마노에서 동쪽으로 내려오니 로마의 영혼들이 부르는 웅장한 콜로세움이 서있다. 원형 경기장 이곳에서 백일 동안 계속된 최초의 개막 경기에는 1천명의 검투사와 9천 마리의 맹수들이 등장해서 살해되었다고 한다. 그리스도인들이 박해 당했던 영화 <<쿠오바디스>>, <<벤허>>도 생각난다.
 
기독교를 국교로 선포한 콘스탄틴 대제가 세운 개선문도 콜로세움 옆에 얌전하게 서있다. 로마에는 눈을 돌리며 걷는 걸음마다 보물들이 지천이다. 역사의 장면을 묵언으로 고스란히 기억하고 있는 저 건물들이 그 시대를 말하고 있다.
 
 
붉은빛 노을이 하늘을 가득히 채운 거리를 걸어서 호텔로 돌아오니 하루 일정이 끝났다. 많이 걷고 보면서 위대한 로마 한 귀퉁이를 조금이나마 느껴볼 수 있었다. 그 로마를 뒤로하고 내일은 피사의 사탑이 있는 밀라노로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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