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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개구리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책과 인생]    
글쓴이 : 장정옥    12-06-02 16:50    조회 : 4,267
청개구리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장 정옥
 
 
도대체 맘에 맞는 구석이 한 가지도 없다. 둘이 코를 맞대고 앉았으나 문제의 합의점을 찾기란 화성에서 생명체를 찾는 것만큼 어렵다. 장구를 쳐야 춤을 출 텐데 이건 도무지 쿵작을 맞출 수가 없으니 남들은 순조로워만 보이는 자식과의 관계가 내게는 아프고 상처투성이다. 세상의 많은 식자들이 이런 저런 연구로 훈수를 두지만 아무리 접목시켜도 변화되지는 않는 걸 보면 내가 아둔한 탓이 분명하다.
미숙한 어미의 불안한 심리상태가 벙어리 냉가슴이 되고 보니 모든 것에 자신감을 잃는다. 다정한 이웃집 그녀의 눈길이 부담스럽고 자식 자랑에 입이 마르는 모임은 나가기가 두렵다. 때로는 무엇을 간구해야 하는지 준비한 기도조차 잊어버려 십자가만 멍하니 바라보다 온 적도 있다. 벌렁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려 심호흡을 하는데 광고란에 적힌 심리학 강의 시간표가 유독 크게 보인다. 심란한 마음을 다스릴 겸해서 신청서를 냈다.
 
첫 시간은 MBTI(Myers-Briggs Type Indicator)로 각자 지닌 성격을 분류하여 먼저 자신의 성향을 아는 것이다. MBTI는 심리학자 융의 심리유형론을 바탕으로 마이어스와 브릭스가 개발한 8가지 성격유형 선호지표로 자신과 타인의 성격역동을 이해하는데 사용된다.
내 유형은 ISTJ(Introversion :내향성, Sensing :감각형, Thinking :사고형, Judging :판단형) 로 S와T도 그렇지만 특히 I와 J의 점수가 높아 지독한 내향성에 속한다. 이 성향은 신중하고 조용하며 집중력이 강하고 매사에 철저하며 사리분별력이 뛰어나단다.
이는 분명한 목적의식과 방향감각, 뚜렷한 자기기준과 의사, 통제와 조정, 정리정돈과 계획, 원리와 원칙, 정확하고 철저한 일처리, 규범과 기준 중시, 논리와 분석, 진실과 사실 등 표현대로 하자면 인간미가 좀 없어 보인다. 차갑게 느껴지는 사무적 말투와 함께 애교라는 것이 내게는 없을 수밖에 없는 이유를 확인 하는 시간이었다. 그러나 더 충격적(?)인 것은 나와는 정 반대, 그야말로 같은 점이라곤 코딱지만큼도 없는 아들의 성향이었다.
ENFP(Extraversion :외향형, iNtuition :직관형, Feeling :감정형, Perceiving :인식형) 인 그놈의 성향을 보자니 역시 지독한 외향성으로 따뜻하고 정열적이고 활기에 넘치며 재능이 많고 상상력이 풍부하단다. 사람과의 관계에 주로 관심을 갖고 상황에 맞추는 개방형, 목적과 방향은 변화무쌍, 유유자적한 과정, 융통과 적응, 가능성과 의미추구, 다양한 아이디어 등 그야말로 어디로 튈지 모르는 한 마리 개구리다. 내가 보아온 아들의 성격과 딱 들어맞는다. 조용한 강의실에서 나는 하마터면 아! 하고 탄성을 지를 뻔 하였다.
다음 시간은 타인의 성향을 이해하고 내 성향과 조화를 이루게 하는 것으로 성향이 다른 아들이 나와 같기를 바란 것이 잘못의 시초였음을 깨닫게 됐다.
 
예를 들어 사과를 보면 나는 ‘상큼하다, 먹음직스럽다, 싱싱하다’ 같은 사고형으로, 아들은 ‘젊은 심장, 건강하다, 맑은 아침, 컴퓨터회사 로고’ 같은 감정형으로 나타난다. 좀더 깊이 들어가면 나는 ‘먹을 수 있을 만큼 깨끗할까’라는 원칙론에 사로잡히지만 아들은 ‘이걸로 기름을 만들어 볼까.’라는 가능성을 추구한단다. 아마도 내 성향으로는 “엉뚱한 생각 집어치우고 먹기나 해”하고 말했음이 분명하다.
그랬다. 나는 내 성향에 맞지 않으면 이상한 성격이라며 비난하고 꾸짖었었다. 그러다보니 아들의 재주나 관심을 홀대하고 무시했다. 자발적이고 독립적인 성향의 아들을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훈련하려 했다. 상상적이고 활동적인 아들에게 실제적이고 신중하기를 교육했다. 그러니 스스로는 좋은 교육을 시켰다고 자부했지만 효과는 없었고 결국 다툼과 원망만 쌓였던 셈이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 했는데 나는 적도 모르고 자신도 몰랐으니 백전백패가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청개구리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바로 그것이었다. 그의 성향이 동쪽으로 가고자 했을 뿐 무슨 이유가 있었겠는가.
바람이 잔뜩 들어있는 풍선의 한쪽을 누르면 다른 한쪽으로 부풀어 오르게 되어있다. 에너지 불변의 법칙이다. 더 힘껏 누르면 터져버릴 것은 자명하다. 부모와 성향이 다른 자식을 둔 부모는 모두가 부풀어 오른 풍선을 하나씩 쥐고 있는 셈이다.
 
어미로서 자식이 가고 싶다는 곳으로 말없이 보내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경험해보지 않고는 모른다. 자식에 대한 믿음이 부족해서만은 아니다. 여러 정황으로 볼 때 그 길이 아님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론으로 따지자면 아들은 모험이 필요한 성향이므로 돌아서 가는 것이 좋은 길이란다. 그 모험을 아들놈은 즐기며 가는데 어미는 참고 기다리며 견뎌내야 한다는 것을 듣는 순간 머리가 더 아파온다.
매일 얼굴을 마주하며 웃고 울고 먹고 잠들기 전 소곤대며 사랑한다고 말해도 성격은 하늘과 땅 차이다. 집에서는 신발도 반듯하게 벗는 법이 없지만 오늘도 아들의 착한 품성이 행동으로 나타나 잘 키웠다는 말을 전해 듣는다. 그럼에도 내게 채워지지 않는 무엇이 가슴을 허하게 하는 것은 어느 지인의 말처럼 남에게 번듯해 보이는 직업이나 자랑삼아 말 할 수 있는 모습을 꿈꾸는 것은 아닐까. 아직도 자식에 대해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마음을 못 비워서 그런 걸까. 건강하고 튼튼하게만 자라다오 말하면서도 속셈은 다른가보다.
그러나 어미로서 자식에게 욕심을 갖는다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일 아닌가.
버나드 쇼는 인간에게 두 가지 비극이 있다고 했다. 첫째는 세상만사가 자기 소원대로 되지 않는데서 오는 비극이며, 둘째는 세상일이 자기 소원대로 되는데서 오는 것이라 했다. 이는 어떤 상황에서도 인간은 만족이 없다는 것이리라. 그렇다. 나는 지금 첫째 비극에 힘들어 하지만 둘째 비극은 또 어찌 받아들이겠는가.
 
전래동화 속 청개구리 어미가 떠오른다. 그녀는 아들에게 무엇을 바랬을까. 다른 길로 가고자하는 아들을 이해 못해 결국 불효자로 만든 것일까. 아니면 청개구리가 어미의 말을 듣지 않고 딴 길로 가버린 것일까.
누가 풍선을 힘껏 눌렀을까.
알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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