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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동 회원들이 일년 삼백 육십일 내내 따분하게 닫힌 문에서 자기 와의 싸움만 하느냐고 우리도 밖으로 나가 보자는 제안을 이현숙 시인님의 의견에, 우리가 왜 진작 그런 생각을 못 하였는가, 하였다.
내 안에 가두어 둔 자기들의 생활 속에서 깨어 보자, 일치의 마음으로 능금 볼이 되어, 가벼운 운동복으로 갈아 입고 산뜻한 모습으로 소풍가는 아이들 같이 들떠서 맥도날에서 만나 커피 한잔 씩 하고서 나셨다.
나이가 가장 많은 설봉 선생님이 등산복에다 태극기와 민속기를 꼽고 울굿 불굿한 배낭을 짊어지고 나왔다 .설봉 선생님은 언제나 어디를 가나 한국 국기를 들고 다니시는 분이시다.
하여튼 우리 일행은 산밑에다 파킹을 하고 올라갔다 27년을 이곳에 살았어도 이곳에 이런 곳이 있는 줄을 몰랐다고 다들 함성을 지른다. 그만큼 이민 생활은 팍팍하였던 것이다 . 문화 생활이란 단어와는 좀 멀게 살아 온 우리이다. 지난번 매선님에게 하와이가 살기가 좋지 않느냐 는 나의 질문에 다 좋은데 문화 생활을 못해서... 말꼬리를 내리는 것을 보았다 .
연세가 제일 많은 문화재 설봉 선생님이 두루마기는 벗고 가벼운 바지에 운동화를 신고 등에 태극기와 삼각형의 민속 기를 양쪽으로 꼽고 긴 모자에 깃털까지 꼽고 나타났다 . 과연 하와이 문화재다운 모습이다.
지난 번 백주년 문화행사에는 설봉 선생님이 그린 우리 나라 민속도를 여덟 명에 들고 뒤따르게 하고 앞에서 갓쓰고 도포자락에 휘날리면서 피리를 불고 앞장을 서서 가시어 많은 외국인의 시선을 끌어내신 분이시다 . 이런 분인데 그냥 올 리 없지, 요란하게 차려 입고 호기 있게 문제없다고 한다. 우리가 가야할 거리는 약 8키로는 되고 가파른 언덕을 올라 내리막길이 있어 노인에게는 무리다 싶어 내가 물어보니 문제없다고 말하는 나를 무색하게 하신다 . 늙은이라고 무시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제 일흔 넷이라는 나이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
산악회원인 정수지가 앞장을 서고 함영숙님이 설봉선생님을 모시고 맨 나중에 오게 되었다. 한 달에 한번씩 밤에만 모임을 가져온 우리라 대낮에 이렇게 만나서 가벼운 운동복 차림으로 나선 것이 두꺼운 허물들을 다 벗고 자기의 모습대로 보여진 것같아 소풍나온 아이들처럼 마냥 즐겁기만 하고 더욱 친근하였다. 사실 이민 생활 고달프다. 시간 관념이 투철한 미국인들은 시간이 돈이다. 한시간 $10.00을 받는 사람은 한시간 $10.00이기 때문에 그 십 불에 얽매여 시간을 비워 보지 못한다. 더욱이 내가 이민 올 당시 한국은 여자들의 일이 없던 때라 이민 와서 보니 여자 남자 구별 없이 많은 일거리에 놀라고, 시간만 지나면 돈이 된다는 것에 놀라고, 빨리 돈벌어 잘살자 하고 혈안이 되어 돈을 벌게된다.
우리 일행 중에도 젊은 분들은 낮에 시간을 내기란 정말 어렵다 .그런이유로 낮에 모임을 못 가지고 밤에 모임을 가지므로 낮에 얼굴 보기란 어려운 것이다. 우리가 이런 사연이니 낮에 그것도 토요일 아침에 산에 오른 다는 것은 파격적인 사건이 아닐 수 없다. 현숙씨, 경민씨, 수지씨는 일하는 시간을 저녁으로 돌리고, 나온 것이니 , 낮시간이 얼머나 소중하여 웃고 떠들고 있다 .
호놀룰루에 등산 코스로는 이 길이 무난하여 많은 사람들이 애용한다. 정산에 오르면 호놀루루 시내를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정산에 올라보면, 저기는 대학교, 저기는 와이 끼기, 저기는 공항, 해군부대, 저기가 진주만이, 한 눈에 들어온다 . 이민을 와서 처음 한번쯤은 가보고 나서는 일하느라 바빠서 가보지 못하고 일상에 얽매여 살고 있게 된다. 사실 현지에 사는 사람들이 그 곳을 더 모른다고 하지 않는가 .
수지 씨가 산악회에서 싸워 올린 기량으로 먼저 앞장서 서 가다가 다시 내려와서 여기는 어디이고 여기는 어디라고 설명한다. 영화 속에 나오는 정글같이 나무 줄기가 축 축 늘어져 타잔이 야호 할 것 같은 곳에 수지 씨는 타잔을 흉내를 내고 즐거워하였다. 등선을 올라 갈수록 나무 뿌리가 깔려 있어 계단 같이 올라가게 되어 있고 수풀 사이로 삐죽이 나온 들풀들이 우리 일행을 반기고 있었다. 올라 갈수록 점점 가파라서 설봉선생님이 점점 힘드시나 보다 .점 점 뒤쳐져서 얼굴이 안 보인다 . 처음엔 시조창을 뽑더니, 그것도 없이 수지 씨와 현숙씨가 이야기 소리만 도란도란 산을 지키고 있다 .
하와이 산 속에는 풀벌레나 개구리나 이름 모를 벌레들이 별로 없다 . 호놀룰루 산에는 뱀이 없기로 유명하다 .도마뱀만 있는데 도마뱀이 집에 들어오면 길조라고 쫏아 내거나 죽이지 않는다. 그 도마뱀은 작은 벌레들을 잡아먹어 방안에 들어 와도 좋아하는 것이다 . 하와이 섬에는 무성하고 울창한 숲과 축축 늘어진 오래된 나무는 하늘을 덥지만 들짐승이나 벌레들은 못 본다 . 더러 망구라는 다람쥐도 아니고 쥐도 아닌 것이. 꼬리가 길고 주동이는 두더지같이 생기고 길어서나 들어서나 한적한 곳에 가면 나타 나는데 , 먼저온 사람의 말에 의하면 뱀을 잡아먹는 것이 망구라고 한다.
하와이 섬에 뱀을 소탕하기 위하여 망구를 들여와서, 풀어놓아 뱀을 소탕을 하였다고 하는데 얼마큼 신빈 성이 있는지는 나는 모른다. 사철이 질 푸른 여름이니까, 아마도 뱀이 있으면 사람을 해칠 염려는 있을 것 같다 . 질 푸름 여름이라서 풀밭이 맨발로 걸어가면 발이 가려운데 겨울이 없어 얼어죽는 일이 없어서 개미 하나라도 독이 있다고 한다. 풀도 여름 내내 데워 지고 태양아래 익어 독이 있다고, 입에 대지 말라는 풀들이 많다 .
한국의 풀들은 연하고 가냘프고 아기자기하니 오밀조밀하게 이쁜데, 이곳의 풀들은 잎이 두껍고 커다랗게 웅장하여 마치 조화 같은 생각이 든다 .그래서 만져 보면 살아 있는 생명이다 . 나는 조그맣고 오종종 하게 생기고 그 속에 조그만 씨 주머니를 가지고 있는 것이 귀엽고 정이든다 . 커다랗게 큰 잎새 웅장한 나무 기둥, 하늘을 덮는 숲, 사랑스럽지 않다 . 마치 미국사람들 같다. 미국사람들은 덩치가 커다랗고 흰 피부에 잘생기어 멋 있는데 정이 안간다.
설봉선생님이 드디어 정상에 올라 와서, 얼굴이 허옇게 되어 가지고 “나는 승리하였노라 ” 하고 희색이 만면한데 처랑 하게 보이니 생의 마지막 발악 같아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
십년 전에 이스라엘 여행 때에 우리 일행 중에 칠십 오세가 된 여자 두분이 있었는데 ,두 여자분이 일행에 뒤쳐지어 일행을 기다리게 하니, 일행이 투덜거리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
누구는 늙고 싶어 늙나, 너희도 늙어 보아라 한다지만, 남에게 피해는 주지 말자 하고 다짐을 한 적이 생각이 난다. 설봉선생님도 호기 있게 큰 소리 탕탕 치지만 어디 몸이 따라 주어야지, 설봉선생님이 앉아 쉬면서 연신 땀을 닦으며 허연 얼굴에 조금씩 희색이 돌아오는 것을 보며 안심을 하였다 . 풀밭에 앉아 가지 온 음식을 펴놓고 먹었다 . 꿀맛 같았다. “설봉선생님에게 많이 잡수세요” “그리고 기운차리세요 ” 권하니 내가 죽기는 왜죽어 하신다.
그제야 시조 한가락 뽑으며 “요새 젊은이는 낭만이 없어”
“시라고 쓰는 것이 신세타령인지, 무언지 도무지 이해를 못하는 것도 잘 썼다고 하니 원 참” 하신다 .
“동창이 밝았느냐 노고 지리 우지 진다” 창을 뽑으니 골짜기에서 대답을 하고 있다.
“동창이 밝았느냐 ”한다. 다른 일행이 우리를 힐끗 쳐다보며 지나간다.
“이제 하산을 하여야 하는데 설봉선생님 괜찮으시겠어요”
“나 아직 안 죽었어” 내리막길인데 더 쉽겠지 하신다 . 옆에 있던 구자현 교장 선생님이 거드신다 .그래도 안심이 안되어 남아서 도와야지 하고 설봉선생님의 뒤에서 따라 가니 얼마쯤 따라 가는 것 같더니 그냥 땅에 주저앉으려고 하는 것이 아닌가, 이 산중에 어떻게 하려고 겁이 더럭 난다 . 쫓아가서 겨드랑에 팔을 넣어 일으키니 간신히 일어나는데 몸은 싸늘하다 . 피가 안 통하는 것 아닌가. 이러다가 길가에 쓰러지면 어떻하나 싶어 함영숙님과 나는 설봉선생님 겨드랑에 팔을 집어넣고 발끈 들어 질질 끌고 내려 왔다 .
노인네 축 늘어진 몸을 겨드랑에 팔을 넣고 질질 끌고 오는 길이 얼마나 먼지,
“선생님 중간에서 쉬어 계시면 우리가 내려가서 같이 갈 것이라고 권하지 않았어요 ”
“ 나 안 죽어, 내가 왜 죽어” 양다리를 흔들지만 걸으려고 하지만 그의 몸은 말을 안 들었다.
그의 겨드랑을 붙들고 내려오는 길은, 지금까지 즐겁고, 아름다운 나루 잎과, 산들바람과, 망구의 눈망울까지, 다 잊게 한다 . 길가에 이름 모를 꽃들의 입김은 퍼런 물이 뚝뚝 떨어지고, 골짜기에 졸졸 내려오는 물소리도 버스럭거리는 나뭇잎의 경음악도 즐겁지 들리지 않는다. .옆으로 빠져 나온 나무가 등산객을 유혹을 하여 생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는데도 귀찮기만 하다. 내가 걸어온 삶의 무게처럼 무겁기만 하다. 팔이 저려 온다 .
설봉 선생님은 숨을 턱에 닿도록 쉬면서
“나 안 죽어 ” 하시지만
“하나님 살려 주세요” 하는 것 같다 .우리 일행은 벌서 자취도 안보이고 우리의 숨소리만 산을 힘들게 하고 있었다 . 우리는 설봉선생님의 육중한 몸의 무게에 힘들고. 설봉 선생님은 살아온 생의 무게에 힘들고. 산은 우리가 내쉬는 숨소리에 가빠지고 있다.
걸어가면 나뭇잎이 머리 위로 떨어지면
“시몬 너는 듣느냐 낙엽 밟는 소리를” 모윤숙의 시몬의 노래라도 생각할 여유도 없다 .
사느냐 죽느냐 갈림길에 한사람의 생을 질질 끌고 가고 있었다. 우리는 사투를 다하여 하산을 하고 있었다 . 우리도 늙어 이렇게 누군가에 끌려서 생을 마감한다면 생각하니 슬픈 것이 인생이구나 싶어진다 .
길이 좁아 셋이서 걸어가기에는 좁아서 미끄러지고, 낭떠러지에 걸리기도 하고, 넘어지면서, 삶은 그의 영원 속에서 산소처럼 살아서 허연 눈을 뜨고 질질 끌러 오는 선생님의 사정을 누가 알 것인가. 앞에 간 일행들도 늙으면 그런 운명이 안 되라고 누가 장담을 할 수있나, 그들은 이런 우리를 보지 못했다 . 다만 우리 셋이서 생사를 같이 할 운명으로 처한 상황에 열심히 최선을 다하면서 끌고 갔다.
“조금 더 가면 되요” 나를 위로하는 것인지. 설봉 선생님을 위로하는 갓인지,
“저 고개만 넘으면 되요”
“다 왔습니다 ” 하지만 한 고개 넘으면, 또 나오고, 넘으면 또 나오고, 어지간히 멀기도 하다 .두 시간이면 올라가서 내려오는 시간인데 , 그것도 보통 걸음으로 ... 그런데 우리가 차를 세워 놓은 파킹 장까지 오는데, 네시간 반이 걸리어 질질 끌고 가니 그들이 거기서 기다리고 있었다 . 일행은 우리를 보더니
“그렇게 하고 내려 왔어요”
“우리가 교대 할 것을” 한다 .그러나 정작 우리의 힘든 아픔을 알 것인가, 설봉 선생님을 내려와서 의자에 앉히니
“죽기는 내가 왜 죽어” 설봉선생님은 말을 토하더니
“ 고마웠어 ” 하시며
“다음에 절반만 올라 갈게” 하신다. 안 간다는 소리는 안하고 간다고 하시며 희색이 만면하다 그래도 동시, 동감, 동보 한 것이 추억에 많이 남을 것 같다 좋은 추억 하나 만들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