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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빔밥    
글쓴이 : 문경자    12-06-24 18:41    조회 : 3,811
                                                                     비 빔 밥
 
                                                                                                                      문경자
 
    
   비빔밥은 화끈하고 눈물 나게 한다. 밥을 그릇에 담아 열무김치와 고추장을 넣고 비벼 숟갈로 떠서 먹을 때 열무 줄기가 길게 딸려 올라온다. 그것을 먹기 위해 손가락으로 잡는데 그때 남편이 쳐다보며 그렇게 맛있냐며 핀잔을 주었다. 여자가 별로 아름답지 못한 모습을 보여 주는 것 같아 부끄럽기는 하지만 그래도 맛있는 것을 어떡해 눈물이 나게 맵지만 그 속에는 불만과 미움만이 아닌 깊은 정이 있는 화끈함이 있다. 세상의 매운맛에 흘리는 눈물 같다.
  
     어릴 때 제사를 지내고 나면 밥을 비벼 먹는다. 그 맛있는 밥을 먹기 위해 늦은 밤까지 잠을 참고 기다리는 것은 무척 힘이 들었다. 딸애들은 뒤에 서서 보기만하고 절을 올릴 수도 없으니 어른들은 쓸데 없이 여자아이가 얼씬 하는 것도 좋아하지 않았다. 어른들은 손위 순서대로 서서 절을 한다. 엄마 옆에서 기다리다 지쳐 눈 꺼풀이 내려와 가물가물 하여 옆방으로 들어가 잠깐 눈을 감고 있었다.
 
 꿈 속에서 비몽사몽 하는데 내 귓전에 가늘게 들려오는 엄마 목소리 “깅자 자나.” 하며 가족들이 둘러 앉아 밥을 비벼서 먹는 소리가 들렸다. 숟가락 부딪히는 소리와 소곤소곤 하는 이야기며 “오늘 비빔밥은 더 맛있다. 나물이 아주 간도 잘 맞고 고소한 참기름 깨소금 맛이 제대로 나네.” 하며 먹는 소리가 들렸다. 밥은 먹고 싶은데 부끄럽기도 하고 그렇다고 몸을 비틀어 깨어 있다는 것을 보여 주기는 뭣하고 목젖에 소리 나지 않게 침만 삼키며 실눈을 뜬 채로 있었다.
 
  어른들은 “아까 까지만 해도 안 깅자가 안잤는데. 먹고 싶은 것이 많을 낀데 깨워 봐라.” 한다. 혹시라도 부르면 쏜살같이 달려가기 위해 다리와 팔을 길게 뻗으며 일어 날 텐데 엄마는 “내일 학교 가는데 푹 자게 놔 두이소.” 하는 말에 아무도 깨워 주지 않았다. 내가 못 먹었던 그 비빔밥이 아마 내 생애 최고의 맛이 아니었을까!   
 
  봄이 되면 콩밭에서 자란 열무를 뽑아 김치를 담글 때 말린 통고추를 호박돌(움푹 패인 돌)에다 갈아서 넣으면 맛 있는 열무김치가 된다.
시어머니는 깨끗한 박으로 만든 바가지에 밥을 담아 열무김치에다 고소한 순 참기름을 반 숟가락 넣고 직접 담은 고추장으로 비빈다. 농사일로 손등에는 핏줄이 튀어 나와 지렁이 모양 같았다. 손가락에는 풀 물이 들어 있는가 하면 손톱도 퍼렇게 변해 있다. 철부지 며느리는 고소한 냄새를 맡으며 기다렸다. 맛있게 드시며 내 얼굴을 보고 흐뭇하게 웃는다. “너도 먹어 봐라.” 고 하여 크게 한 숟갈 떠서 한입 가득 넣고 먹었다. 같이 먹다 보니 마지막 한 숟가락이 남았는데 끝까지 먹는 내 모습에 밥을 앞으로 밀어 주며 “열무가 너무 질기네.” 라며 숟가락을 놓는다. 아무 말없이 잘 드시고는 며느리가 미안해 할까 봐 부러 그러는 것이었다. 작은 것이지만 배려 하는 마음을 시어머님께 한 수 배웠다.
 
  시집간 첫 해에 농사철이 시작되니 점심을 해서 들에 가지고 가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까 고심한 끝에 비빔밥을 만들기로 했다. 텃밭에 있는 시금치며 미나리를 삶아 비빔밥을 맛있게 만들었다. 그것을 큰 소쿠리에 담아 머리에 이고 들로 나갔다. 시동생은 “형수요. 힘들지예.” 하며 이고 온 것을 받아 주었다. 덮은 보자기를 걷고는 구수한 냄새가 난다며 얼른 먹어보자 하며 동시에 숟가락을 더리 대었다. 시어른들은 맛있게 비빔밥을 잘 했네 하며 칭찬을 들은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농번기 때는 여러 번 식사를 하게 되는데 그때마다 구색을 갖춰 차리기 어려워 그릇 하나에 음식을 섞어 먹었다는 ‘농번기 음식’이 비빔밥이다.
 
  마음이 꼬일 때 밥을 팍팍 비비며 미운 정 고운 정 다든 사람들을 보듯이 휘저어 본다. 시금치는 시집 식구를, 콩나물은 키가 큰 아들녀석을, 고사리는 시커먼 마음을 갖고 있는 사람? 도라지는 하얀 얼굴을 가진 사람인데 얄미운 짓만 골라하는 사람 등 모든 얼굴이 붉게 물이 든다. 입을 크게 벌리고 한 입 먹는데 볼테기가 볼록 나온다. 터져라 하고 퍼 넣는다. 입안에서는 마음과는 달리 맛있어 뚝딱 혼자 한 그릇 먹고 나니 기분이 그만이다.
 
 서로 엉겨 붙어 있는 모습이 떨어져 살면 외롭다는 것을 알게 해 준다. 매운 맛 고소한 맛을 느끼며 사람들도 그것들이 합쳐서 맛을 내듯이 살아보면 입 안에서 단 맛을 내는 비빔밥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2010년 합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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