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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고향보천(세미실)    
글쓴이 : 문경자    12-06-24 19:59    조회 : 5,130
                                               내 고향 본천(세미실)
                                                            
                                                                                               문경자
  본천 부락은 합천읍 동쪽4km 지점에 위치한 농경을 위주로 하는 중산간 마을로 임진왜란
전후에는 천곡(泉谷)이라 불렀다. 대암산 밑에 자리를 잡아 집집마다 샘이 있어 본천(샘실) 또는 천곡 본천 이라 부른 데서 유래했다.
   남평 문씨, 진양 안씨, 안악 이씨의 집성 촌이다. 문씨 문중에는 공신을 다수 배출한 유서 깊은 마을로 1916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본천1구로 되었다.
1969년 새마을운동이 일어났을 때 120여 호 살았다. 결혼을 하여 집이 없는 사람들은 사랑채를 빌려 살기도 하며 주인은 집세를 받지 않고 대신 일을 도와주며 살았다. 자연 마을로 논농사와 밭농사를 지으며 서로 돕는 인정이 넘쳐나는 마을이었다.
  6.25직후에는 여우 표범도 살았다는 말이 전해지며 사방이 산으로 둘러 싸여 짐승 우는 소리가 마을까지 들려 아이들이 울면 호랑이가 문 앞에 쪼그리고 앉아 있다고 하면 울음을 뚝 그쳤다고 한다.
본천 마을에서 유일하게 접할 수 있는 산이 있다. 대암산은 지역에서 가장 높은 산이며 여러 영험이 있는 명산으로 숭배 되어왔다. 가뭄이 들 때는 대암산에 올라 기우제를 지냈다. 대암산 정상은 사적인 사용이 금지되어 있었다.
  높이 591m의 대암산은 율곡면과 초계면 대양면이 접경하는 지역으로 정상에서 보면 합천, 대양, 율곡, 초계, 적중, 청덕 등 6개 면이 훤히 내려다 보인다. 정상은 행글라이더 활 공장으로 유명하다. 황동규 산문집<<삶의 향기 몇점>>에도 대암산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만큼 유명한 산이다.
 
    마을 입구에 들어서면 큰 은행나무가 반겨준다. 이곳을 아랫동네라 불렀다. 은행나무는 조선시대 때 홍문관 대제학을 지낸 문홍도(文弘道)께서 은행 한 말을 파종하여 자랐다고 하며 문헌에 따른 기록은 분실하여 없다. 초기에는 은행이 열렸다는데 지금은 열리지 않는다.
“보호수 품격: 마을나무. 수종: 은행나무. 지정일: 1982년 11월 10일. 수령: 450년. 수고: 35m. 소재지: 율곡면 본천리 355번지. 나무둘레: 7.15m.”
  마을 사람들은 다 은행나무에 대한 기억을 갖고 있다. 여름은 그늘을 만들어 시원한 에어컨을 대신하였다. 사람들의 즐거운 쉼터였다. 가을에 은행잎이 노랗게 물들면 그 위에 누워 뒹굴며 서로에게 잎을 뿌리며 놀기도 하였다.
  이제는 아이들이 뛰어 노는 모습을 볼 수가 없다. 흙으로 되어있던 곳이 시멘트로 깨끗하게 주위를 만들고 좋은 자리도 만들어 놓아 굳이 돗자리가 없어도 되었다. 이제는 정류장 역할을 하며 은행나무가 매연에 시달려 손상이 가지 않을까 하는 염려도 되었다. 은행나무 아래 앉아보니 앞에 흐르던 개울물이 말라 있었다. 우리가 빨래를 할 때 쓰던 돌들은 희뿌옇게 변했으며 동네 아녀자들의 정다운 빨래 방망이 소리며 오순도순 이야기하며 웃음꽃이 피었던 그 시절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누군가 “깅자아이가.” 하시며 다정하게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려 보니 마을회관으로 놀러 가시는 분이었다. 나는 반가움에 어머님이 보고파 목이 마른 딸처럼 달려 갔다. “그래 우째 왔노.” 하시며 따라 들어 오너라 하셨다.
  회관에는 간단한 운동기구도 있었다. 어르신들의 건강을 배려한 것이 보였다. 대형 텔레비전도 놓여있어 세상 돌아가는 것도 알 수가 있어 사람들과 소통이 잘 된다며 좋아하셨다.
  따뜻한 방에 들어갔다. 80중반이 넘은 할머니들이 10원짜리 그림놀이를 하고 계셨다. “깅자 니가 우짠 일이고. 반갑다. 손 좀 자바보자.” 하시며 내 손을 잡은 손이 주름 사이로 파란 핏줄이 보였다. “니도 우리랑 같이 놀이 하면 안되겠나. 니 돈 안따묵는데이.”하시는 말씀에 한바탕 웃음바다가 되었다. 자식들은 출가를 하여 둥지를 떠났다. 모두 시집을 와서 수십 년을 동네서 산 분들이었다. 전부터 살아온 집에서 그냥 살아간다. 나이를 가늠 할 수 없을 정도로 정정한 할머니들이었다.
 
  내가 살던 윗마을로 가는 길에 한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었다. 느티나무 2그루가 보였다. 동네 비밀을 다 알고 있는 아주 오래된 나무는 우리가 불렀던 이름은 열녀나무라고 하였다.                   
  “수종: 느티나무. 지정일자: 1982년 11월 10일. 수령: 480년. 나무둘레: 4.6m. 합천군에서 2005년 11월 보호수로 지정이 되었다. “소재지: 율곡면 본천리 294-4.” 표지 석에 새겨져 있었다.
 가뭄이 들 때는 옆에 우물을 파고 마을 남녀노소 모두 나와 하늘을 향해 빌면 구름이 몰려와 비가 내리기도 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열녀나무 아래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추석 명절에는 그네를 뛰기도 하였다. 아가씨들의 그네 뛰는 모습은 춘향이가 그네를 뛰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어른들은 팔씨름을 하며 남자들은 힘 겨루기를 하였다. 들돌이란 이름을 가진 돌이 있었다. 무게와 크기는 재어 본적이 없다. 들돌을 들어올려 어깨위로 넘기면 천하장사 보다 인기가 많았다. 친척 할머니께서는 할아버지가 들 돌을 들어 어깨에 올려 뒤로 넘겼다며 자랑이 대단하였다. 들돌은 구르지 않게 작은 돌로 받쳐두었다. 그 때는 그냥 하찮은 돌멩이로 알았는데 모셔놓고 보니 보물처럼 보였다. 열녀목주위에는 시멘트를 발라 깨끗하게 보였다. 나무로 만든 벤치를 놓아 어르신들이 쉬시기에 안성맞춤이었다. 가을 단풍이 들면 색동옷을 입은 여인이 서있는 모습으로 보였다. 초등학교 시절에 집에서 미술 숙제를 하며 열녀목을 그려 넣었다. 돈도 받지 않고 모델이 되어주었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면 앞산에 진달래가 빨갛게 피어 온 산이 꽃으로 물들었다. 집집마다 꽃들이 시샘을 하듯이 피어났다. 내가 살던 집 마당에는 핑크 빛 벚꽃이 붕실붕실 피어나고 담 너머 외숙모님 집에는 살구꽃이 만발하였다.
  외숙모님은 살구가 노랗게 익으면 살구를 소쿠리에 담아 담 너머로 주며 “깅자야 맛있게 먹어라.” 하셨다. 외숙모님이 그립다..
  국이네 집 앞 텃밭에는 함박꽃이 피어 노랑 나비들이 분홍색 꽃 잎에 앉았다. 벌들도 윙
윙 소리를 내며 부지런히 날아 다닌다. 하얀 매화꽃이 피면 참새가 날아와 향기를 맡는지 고개를 숙였다. 내가 살던 우물가에 심어놓은 구기자 꽃이 피었다. 하얗게 피고 지면 빨간 구기자가 익었다. 그것을 많이도 따먹었다. 아직도 그 집이 그대로 있어 옛 생각에 잠기곤 하였다. 부모님과 같이 살았던 행복한 시간들이 생각나 감회가 새로웠다.  
 
명자 언니 집 우물가에는 앵두 나무가 있었다. 앵두 꽃이 필 때면 처녀 총각들이 바람이
나서 호미자루를 내 던지고 서울로 간다는 유행가 가사를 생각나게 하였다. 앵두가 익으면 물동이를 이고 언니네 우물가로 갔다. 물을 길어 온다는 생각 보다는 앵두가 먹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언니는 마루에서 내려 흰 고무신을 신고 우물가로 가서 빨간 보석을 한 주먹 따주었다. 꽃무늬 치마를 벌려 받았다. 물동이는 뒷전이고 앵두를 땅바닥으로 흘릴까 봐 치마 끝을 잡고 집으로 가곤 했다. 동네 머슴아들이 팬티가 보인다며 놀렸다.
 
  집 뒤에는 산이 있어 새들이 주주주하며 운다고 하여 주줏골이라 하였다. 골짜기에는 옹달샘이 있어 우리 어릴 때 젖줄과도 같았다. 집집마다 수도가 들어와 물을 먹는 사람이 없어졌다. 자연이 말라 버리고 그저 흔적만 남아 있었다. 속을 들여다 보니 이름 모를 풀들이 자라 좋은 물을 먹을 수 없어 안타까움만 더했다. 새들의 울음소리, 바람이 불면 나뭇잎이 흔들리는 소리, 눈이 하얗게 내려 나뭇가지들이 무게에 못 이겨 부러지는 소리, 아름다운 이곳에서 살며 웃으시던 분들은 지금도 고향에 가면 “깅자야 밥 묵고 가라.” 하시며 집으로 가자고 하셨다. 봄이오면 꽃들이 수를 놓아 산골의 아름다운 봄의 향연이 펼쳐졌다.
 
현재 가구수가 줄어들어 43세대다. 전체 인구는 60여명, 93세, 90세, 어르신들 80세 이상 할머니들이 20여 명 된다. 거의 홀로 집을 지키며 살고 있다. 집집마다 상수도가 들어와 있으며 부엌도 입식으로 되어있다. 지금도 우물이 있는 집도 있다. 자식들이 돈을 모아 사준 최신식 냉장고는 보물처럼 여겼다. 먹을 것도 가득하고 옛날에는 상상도 못한 생활을 하고 계시며 자신보다는 자식들이 그저 무탈하게 살아가는 것이 죽는 그날까지 복이라고 하였다. 기름 보일러 값이 만만치 않아 마을회관에서 시간을 보내며 잠을 잘 때만 보일러를 트는 어르신들도 있었다. 전기장판으로 바꾼 집도 있었다. 저녁을 먹고 마을 회관으로 가서 어르신들과 같이 앉아 텔레비전도 보았다.  농사에 대한 정보, 이웃동네소식, 수확이 우수한 마늘, 양파, 고추, 참깨 농사를 지으려면 일손이 모자라 큰 일이라며 걱정이 태산이었다. 농기계를 이용하여 농사를 짓지만 사람 손이 필요한 일이 더 많았다. 남의 손을 빌리면 일당을 주고 나면 남는 게 없다며 한숨을 쉬었다. 젊은 층은 60대다. 봄이면 마을기금으로 효도 관광도 시켜드리며 초상이 나면 상여꾼들이 18명으로 구성이 되어 옛날식으로 소리꾼들의 소리에 맞추어 선산으로 모신다고 하였다.
 
상여는 마을회관 창고에 보관을 했다. 사람들이 줄어 들어 걱정이 된다며 마을을 잘 지켜 나가야 될 텐데 하시며 아이들이 없어 적적하다 하셨다. 옛날 그 때가 그리워진다.
2012년 3월 29일 합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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