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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시작하는 아름다운 마무리    
글쓴이 : 장은경    12-07-04 14:47    조회 : 3,398
 
                           지금 시작하는 아름다운 마무리    

                                                               장은경

법정스님이 입적하여 길상사 극락전 앞을 지나던 마지막 모습은 커다란 충격으로 다가왔다. 나무 평상 위에 생전에 입던 가사 한 자락 덮은 채로 법구는 옮겨지고 있었다. 스님이 덮은 가사자락은 가을의 곱게 물든 낙엽을 닮아 있었다. 수분을 증발한 나뭇잎들은 제 무게를 비우고 비워내야만 가볍게 내려앉을 수 있기에 흙색 가사자락에서 죽음의 무게를 느낄 수 없었다. 살아생전 남긴 글들이 말빚이라고 말씀하실 정도로 무소유와 청빈의 삶을 몸소 실천했기에 그렇게 가시는 뒷모습도 낯설지 않았다. 그날은 스님이 지상에서 들려주는 마지막 법문에 뜰 앞 졸졸 흐르던 약수 물 소리도 숨을 죽였고, 지나던 바람도 고개를 떨구었다. 아름다운 마무리였다.
 
죽음 앞에서 의연할 수 있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떠나는 이도 보내는 이도 다 처음이자 마지막 이별이다. 살면서 가장 고통스러운 일은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는 일일 것이다. 남겨진 사람들의 깊은 슬픔은 떠나간 사람의 자취 없는 뒷모습만 바라보고 있다. 사람과 사람이 소통할 때 쓰이는 언어는 더 이상의 소통의 방법이 될 수없고, 떠난 사람은 잿빛 그리움만 허공에 뿌려두고 가는 것이다. 일방적인 이별 통보다. 상조회사에선 장례는 현실이라며 금장수의와 링컨 컨티넨탈 리무진, 왕실 궁중대렴 등 살아서 단 한번도 누려보지 못한 이름조차 낯선 의례용품들을 권한다. 그런 것들이 슬픔의 무게를 덜어 줄 수 없다는 것을 잘 알면서 그런 장례절차를 통해 눈으로 보고 만질 수 있는 이별을 마무리 한다.
죽음이란 건강한 생활 못지않게 누구도 피해가지 못할 과제이며, 누구와도 동행할 수 없는 쓸쓸한 길이다. 혼자서 제 아무리 건강한 삶을 추구하며 삶을 잘 마무리 한다 하더라도 죽음에 이르러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른다. 죽음에 직면한 사람들 곁에는 문화에 따라 여러 가지 주술적인 의식이나 종교 의식이 행해지고 있다. 떠나는 이에게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길 간절히 바라는 마음에서 그러한 의식들이 생겨난 것이란 생각을 해 본다. 다른 한편으로 슬픔의 무게를 장례의식이라는 절차를 통해서 덜어내는 부분도 있을 것이며, 떠난 사람의 무언의 가르침에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자기성찰의 시간이 될 일인지도 모를 일이다. ‘삶이 영원하지 않다’는 진리를 누군가 가고 없는 그 자리에서 가장 절실하게 깨닫게 되는 것이 아닐까. 

근래 들어 김수환 추기경님, 법정 스님, 이태석 신부님 등 한 시대에 큰 획을 긋고 가신 어른들의 마지막 모습이 많은 사람들에게 죽음 이상의 의미를 던져주고 있다. 법정스님이 살아생전 지인들에게 남긴 유언들은 스님의 뜻을 받든 사람들에 의해서 장례절차를 시작으로 하나씩 ‘맑고 향기롭게’란 사회봉사 단체를 통해 세상을 정화하는 씨앗으로 발화되고 있다. 김수환 추기경님의 각막기증은 두 사람의 눈을 뜨게 해 주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 일을 계기로 장기 기증에 동참하고 있다. 이태석 신부님이 돌보던 세 명의 학생들이 한국으로 유학을 와서 의학공부를 한다. 끝나지 않은 전쟁으로 인해 아픈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기 위해서 선택한 길이다. 살아생전 무소유와 사랑을 실천했던 큰 어른들의 마지막은 남겨진 사람들에 의해서 세상을 밝히는 정화작용으로 마무리 되고 있다. 그분들과 함께했던 시간들이 죽음이라는 사건으로 인해 단절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많은 이들과 소통하는 하나의 장(場)이 되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소통들이 하나 되어 기적을 만들었다.
서울 종로에 있는 사찰에서 법정 스님과 김수환 추기경님을 추모하는 영화 상영을 한다고 한다. 그분들의 사랑 앞에 종교의 벽이 조금은 허물어졌다. 진실하고 따듯한 사랑이 모두의 가슴을 열었다. 평소 지인들에게 말로 혹은 글로 남겨진 유언은 살아있는 언어로, 생명으로 다시 세상과 소통하게 되었다. 무소유와 사랑과 희생과 봉사란 언어들에게 생명을 부여하는 삶을 선택했던 큰 어른들에게 고개 숙이며, 나 또한 지금 살아가고 있는 이 순간이 진정한 웰다잉을 실천할 수 있는 시간임을 잊지 않고 부지런해져야겠다. 삶이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듯이 죽음 또한 혼자서는 마무리 할 수 없는 길이기에 바로 지금 여기서 가슴이 훈훈해지는 아름다운 마무리를 시작해야겠다. 

                                                                                                                      2011.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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