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acheZone
아이디    
비밀번호 
Home >  문학회 >  회원작품 >> 
 

* 작가명 : 진연후
* 작가소개/경력


* 이메일 : namoojyh@hanmail.net
* 홈페이지 :
  구름 위에 나를 내려놓다    
글쓴이 : 진연후    12-07-05 11:59    조회 : 3,984
구름 위에 나를 내려놓다
진연후
조금만 더, 살짝 손을 들기만 하면 닿을 수 있을 것 같다. 가까워진 하늘과 그곳에 뿌려진 수많은 별이 잠시 숨을 고르게 한다. 눈앞에 펼쳐진 세계는 찰나와 영원을 함께 느끼게 하고, 인간의 것일 수 없는 아름다움을 황홀하게 보여준다. 별이 지상으로 내려오는 순간 소원을 빌어야지 했건만 막상 부드러운 별빛이 이어지는 동안 아무런 소원도 기억하지 못했다.
라반라타 산장에서 하룻밤을 자고 새벽 두시에 시작된 산행이다. 밤새 두 눈을 꼭 감고 있어도 귀는 막을 수 없었으니 잠을 잤다기보다 누워있었다고 해야겠다. 바람이 우리를 헤치진 않을거라고 믿어도 해발 3000미터가 넘는 곳에서는 바람소리만으로도 위협적이다. 이미 200여년 전 연암 박지원(1737 -1805)은 ‘일야구도하기(一夜九渡河記)’((열하일기(熱河日記)))에서 외물에 현혹되지 않고 사물의 본질을 파악할 줄 알아야 한다는 깨달음을 이야기 했건만, 여전히 두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어리석음이여.
Mt. 키나바루. 말레이시아 사바주의 주도인 코타(市) 키나바루에 있는 4095미터의 산으로 동남아시아 최고봉으로 알려져 있다. 조심스럽게 몸의 한계를 시험해 보고 싶었다. 그런데 건강관리를 제대로 안 했던 게으름에 온몸이 항의를 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걱정과 욕심. 1박 2일 진행되는 산행기간에 동행자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아야 한다는 것과 여기까지 왔으니 정상에 올라가야 한다는 욕심에 몸이 지나치게 긴장을 한다. 고산증을 잘 이겨내야 하는데 그건 내 의지와 상관없는 일이니 혹시라도 증세가 온다면 그 땐 마음을 접어야지하고 미리 마음 비우기도 계획해 보지만, 정상을 향해 오르는 동안 무엇인지 모를 힘에 이끌려가는 기분이다. 마음은 욕심으로 무겁고 몸은 지쳐서 천근만근이다. 다리가 후들거리고 스스로를 믿었던 것이 무모했다고 조금씩 불안감이 엄습해 올 때쯤, 눈앞에 펼쳐진 별천지는 그대로 꿈속의 우주 벌판으로 나를 데려간다. 인간이 만든 빛이 차단되고 자연 그대로의 어둠 속에서 우주가 만든 반짝임은 현실세계를 벗어난 듯싶다.
동이 트기 직전 별들은 사라지고 한밤보다 더 깜깜해져 앞이 보이지 않는다. 랜턴은 바로 코앞만을 비춰줄 뿐 앞사람도 멀어지고 사방이 어둠에 갇혀 있다. 어쩌다가 사람 말소리가 들리면 반갑기도 하고 낯선 언어에 두렵기도 한데 나의 낯가림은 여전히 몸을 불편하게 한다. 밧줄을 잡고 앞뒤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데 자꾸 뒷사람에게 양보하다 늦어질까 조바심을 내는 나는 여전히 관계 맺기를 어려워하는 얼뜨기이다.
정상 부근의 화강암 지대가 시작되는 곳인 사얏사얏 대피소에서 고산증세가 심한 이들이 하산을 기다린다. 여기부터는 거대한 화강암 덩어리를 연상시킨다지만 오를 때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보이는 것도 들리는 것도 없는 곳에서 풀이나 돌멩이처럼 자연의 일부가 되고 싶다는 생각도 잠시, 가장 후미가 되어선 안 된다는 조급함과 해돋이를 정상에서 보아야 한다는 강박증을 온전히 떨쳐버릴 수가 없다. 눈을 뜨고 있어도 보이지 않는 불안 속에서 몸으로 바위를 넘어야 하고 출렁이는 밧줄에 의지해야 하는데 온몸이 덜덜 떨린다. 출발하며 가이드가 했던 말이 생각난다. 오르면서 가장 힘들다고 느낄 때, 자신의 한계를 시험해보는 것 같을 때, 그 지점이 날이 밝은 후 보면 가장 아름다운 곳이었음을 느끼는 곳이란다. 그 말을 공감하게 될까.
조금씩 몸과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으로 정상에 오른다. 정상에서 호흡을 고르고 나니 해가 떠오른다. 사진을 찍는 사람들,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 수십 명의 사람들이 왁자지껄하다. 굳이 그 작은 정상의 공간에 있어야 할 필요가 없어 조금 먼저 몇 걸음 내려온다. 눈부신 하늘 아래 어둠이 밀려가면서 서서히 드러난 화강암 바위가 인간을 한없이 작아보이게 한다. 그냥 거기에 한 점이었던 듯 배낭을 맨 채 그대로 누웠다. 그리고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다. 이대로 멈추어도 좋겠다. 이 순간만큼은 그 어떤 말도 생각도 잡을 필요가 없다. 하늘과 구름 사이에서 아무것도 아닌 나를 내려놓아본다. 떠남을 생각했던 건 어떤 것도 머리로 먼저 생각하지 않고 몸과 마음과 머리가 하나 되는 순간을 느끼고자 했던 것임을 잊고 있었다.
KBS일요다큐(현재는 영상앨범으로 제목이 바뀜) ‘산’촬영 팀이 왔을 때 작가가 ‘구름위의 산책’이라는 제목을 만들어내고 쓰러졌다는 말을 떠올리며, 더 이상의 구름 잔치는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몸에서 무엇이 빠져나가는 걸까. 힘이 빠진다고 하기엔 남은 힘이 있었나싶고, 몸이 가벼워지는데 마음속에서 뭔가가 빠져나간 듯도 하고. 이름 지을 수 없지만 분명히 쓸데 있는 것은 아닌, 그 무엇이 빠져나가는 건 틀림이 없다. 그것이 꽤 무게가 나가는 것이었나 보다. 산소가 적어서인가 욕심의 무게가 줄어들어서인가. 가벼워진 마음으로는 눈앞에 펼쳐진 구름을 탈 수도 있을 것만 같다.
내 고민이 무언가를 갖기 위한 것이었는지, 버리기 위한 것이었는지, 그것조차 저 구름 아래로 던져버려야 할 것 같다. 가진 것이 많을수록 행복할 거라는 자본주의의 행복관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러나 지금 이 순간만큼은 공간과 시간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다. 급할 것도 비교할 것도 없다. 남보다 먼저, 남들보다 많이 갖지 못하는 무능력도 그리 부끄럽지 않다. 그건 저 구름 아래에서의 기준일 뿐이다. 눈에 보이는 것이든 보이지 않는 것이든 무엇을 내려놓는다는 것이 쉽지 않지만, 때론 모두를 손에서 마음에서 놓아버리고 얻는 자유로움도 누려볼 만한 일이다. 모양도 차례도 없이 흘러가는 구름 위에서 잠시 나를 놓고 바람이 되어본다. 내어놓은 마음 한자락 그곳에서 떠돌 수 있도록...... .

 
   

진연후 님의 작품목록입니다.
전체게시물 41
번호 작  품  목  록 작가명 날짜 조회
공지 ★ 글쓰기 버튼이 보이지 않을 때(회원등급 … 사이버문학부 11-26 92583
공지 ★(공지) 발표된 작품만 올리세요. 사이버문학부 08-01 94794
11 전방에서 우회전입니다 진연후 08-19 5298
10 바람이 불었다 진연후 08-19 4605
9 느림보의 고백 진연후 07-29 3879
8 그대에게 가는 길 진연후 07-29 3775
7 구둣방에서 세상 엿보기 진연후 07-29 3704
6 금요일 오후 여섯시 진연후 07-29 13084
5 우리, 그 길을 함께 걸었지 진연후 07-29 18712
4 가끔 하늘을 보는 이유 진연후 07-29 18213
3 처녀비행 진연후 07-29 3939
2 구름 위에 나를 내려놓다 진연후 07-05 3985
1 다른 길에는 다른 만남이 있다. 진연후 07-05 3966
 
 1  2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