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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명 : 노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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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올이사랑    
글쓴이 : 노재선    12-07-06 01:48    조회 : 3,293
   험한 세상 다리가 되어.hwp (16.5K) [2] DATE : 2012-07-06 01:48:31
올올이 사랑
제법 겨울다운 칼바람이 불어 가슴이 말라 갈 즈음 20년도 넘었을 노트를 문득 펴들었다. 비밀병기처럼 소장해 놓았던 그 안에는 물증으로 남겨 놓은 듯 사랑이 가득이다. 손뜨개를 했던 그 시절을 떠올린다. 어느 하나에 꽂히면 푹 파묻히는 습성 때문에 한동안 조끼 스웨터 반코트 가디건 등을 아이들에게 떠 입혀놓고 나도 해냈다는 기쁨으로 우쭐했던 기억이 있다.
뜨개질은 쉬울 듯하지만 그렇지 않다. 뜨려고 하는 대상의 신체 치수 (가슴둘레 어깨 총기장) 를 알아야하고 게이지 코 (일정한 면적 안에 들어가는 뜨개코의 평균콧수와 단수) 를 낸 다음 사이즈에 맞게 정확한 코 계산을 해야 한다. 열심히 떠 나가다가 코 하나가 틀리게 되면 미련 없이 풀어 다시 고쳐야 한다. 이 원칙을 지키지 못하고 완성한 작품은 식사 후 끼어있는 고춧가루처럼 개운치 않은 여운으로 남게 된다. 완성품의 기대가 클수록 의욕도 가속이 붙어 자신도 모르게 손은 뜨개바늘 로 가게 되고 뒷목 어깨 결림에 시력까지 나빠지기도 하지만 알 수 없는 매력 때문에 다시 반복을 하고 만다. 그렇게 한동안을 보내다 아이들이 크고 나서야 접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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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 첫쪽에 나이 7세 가슴둘레58cm 어깨 25cm 총 기장 35cm. 서른다섯 된 아들의 어릴 적 사이즈가 적혀있다. 25년 후, 나이 11개월 가슴 50cm 어깨 20cm 총 기장 22cm란 기록은 돌을 한 달 앞둔 아들놈의 자식 것이다. 진하게 풀어놓은 비누 물을 대롱에 찍어 불어본다. 방울방울 크고 작은 희망들이 돌아다닌다. 아들에게 부었던 사랑이 20년이 훌쩍 넘은 지금 그 사랑의 고리가 이어질 줄이야. 어느새 접혔던 날개가 펴지고 있었다. 나는 노랑 파랑의 털실에 더 애틋한 사랑을 부어내리고 있다.
인터넷의 발달로 재료를 구하러 시장으로 다닐 필요도 없이 다양한 털실과 부자재 등을 앉아서 받을 수 있는 세상이 놀랍기도 하지만 하나밖에 없는 내 작품을 만들어 손주에게 준다는 뿌듯함은 더 신기한 일이다.
 
행복한 고민을 시작한 끝에 모자부터 뜨기로 했다. 아기들에게 좋은 유기농 실로 한 올 한올 떠내려간다. 녀석이 제 아빠를 닮아 머리둘레가 넓다는 것에 웃음이 났다. 아들이 군모를 쓸 때 제일 큰 사이즈로도 해결이 안되더라는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닮아 나온다는것은 하늘의 섭리다.
손주의 모자에 연 노랑으로 뜨다가 하늘색으로 몇줄 무늬를 좀 넣고 노랑으로 방울을 만들어 꼭지에 달았다. 꼭 병아리 같다. 녀석에게 씌울 것을 생각하니 벅차다. 다시 조끼를 떳다 이번엔 연하늘의 V넥이다. 낮이 밤을 부르는 것도 잊은 채 다른 일은 안중에 없다. 편한 내의를 입고 사방으로 분주히 기어 다니다 가끔씩 일어나보려고 애를 쓰는, 그러다 발을 떼려는 시늉을 하는데 얼마 안가서 또박또박 걷기라도 한다면 얼마나 예쁠까. 자식 안 길러 본 사람처럼 얄굿기도 하다.
아가의 작은 손과 발. 때 묻지 않은 영혼. 천진스러운 트집. 칭얼거리는 소리까지가 모두 고운 선율로 들리는데 앞으로 이 험한 세상을 어떻게 헤쳐 나갈까 싶어 가슴이 찡해져온다.
살아보니 사랑법을 몰라 상처받고 상처를 주는 일도 허다하고 하나를 가지면 아홉을 줄줄 아는 그런 사랑법을 배워야 했기에 살아가는 일이 공허해 질 때도 있었다.
 
이제 세상을 향해 걸음마를 시작하려는 손주에게 사람의 힘으로는 얻을 수 없다는 완전한 사랑을 풀어놓는다. 정열을 상징하는 빨강. 온화한 노랑. 초록의 싱그러움 평화를 상징하는 하늘빛. 때로는 핑크빛 무드에 빠지기도 하며 세련된 초콜릿 빛의 갈색톤. 그리고 우수에 젖을법한 회색...등의 실 한 올 한 올에 내 소망을 같이 떠 넣는다.
사랑 받는 자는 용감하며 사랑을 받은 기억만으로도 용감 할 수 있다는 말처럼 더 큰 세상에서 다양한 삶을 누리며 내가 주었던 사랑을 조금 기억해 준다면 그보다 더 좋을 수는 없을 것 같다.
 
지금은 초록색 자켓을 뜨고 있다. 내가 건네준 조끼에 노란 모자를 쓰고 거실 바닥을 종횡무진 하는 손주 녀석의 모습을 본 후 다시 내 두 손은 녀석에게 입힐 자켓의 완성을 위해 바쁘다. 올봄 돌을 지난 후 나들이라도갈 때를 위해 파릇한 새싹과도 어울릴 것 같아 장만해 줄 요량이다.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할머니 작품의 진가를 알아 볼 때까지 한올 한올 사랑을 풀어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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