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acheZone
아이디    
비밀번호 
Home >  문학회 >  회원작품 >> 

* 작가명 : 유시경
* 작가소개/경력


* 이메일 : mamy386@hanmail.net
* 홈페이지 :
  아빠의 손    
글쓴이 : 유시경    12-07-08 00:32    조회 : 6,024

아빠의 손
 
 한약을 달인다. 유리 약탕기에서 몇 가지 약재들이 요동을 칠 때마다 커피 향이 나는 것 같기도 하고 비린 피 냄새가 나는 것 같기도 하다. 오랫동안 나는 참 많이도 한약을 달여왔다. 몸이 아플 때마다 아빠에게 전화를 걸어 아기처럼 투정을 부리며 약을 지어달라고 하였다. 엄마의 약, 남편의 약, 내 아이의 약. 아기를 낳을 때마다 아빠가 보내준 약 덕분에 어혈도 풀고 하혈도 쉽게 멈출 수 있었다. 아빠가 직접 지어준 한약은 내게 꽤나 의미가 깊다. 아빠의 약이 아니었다면 나는 지금쯤 걷지도 못하는 중환자가 되었을 지도 모른다.
 아빠는 외가의 한약방들을 전전하며 일을 하였다. 아빠의 손을 잡으면 내 손에도 한약내가 전이되었다. 우리집 단칸방에도, 부엌에도, 옷깃에도 한약내가 진동하였다. 열두 남매 한약방 집의 막내딸을 쫓아다니던 유복자의 꿈 덕분에 나는 ‘약방집 딸’이라는 호사를 안으며 자랐다. 아빠는 언제나 나보다도 약재의 변화에 몰두하였다. 때문에 아빠의 시선은 늘 아래쪽으로 쏠려 있었다. 정작 나는 아빠의 약이 어떤 것인지 모른다. 그것은 정말 약초 냄새였을까? 아니면 아빠의 손 냄새였나? 아빠의 약 짓는 손등을 훑어보며 손톱 밑에 달린 짙은 반달들을 닮고 싶었던 적이 있다. 아빠의 손에서 풍기는 한약내가 어쩌면 아빠의 손끝 반달에서 뿜어 나오는 것인지도 몰랐다. 또 어쩌면 아빠의 손에서 약초가 자라고 있었는지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아빠는 주로 약작두로 약재를 썰고 말리며 덖고 달이는 허드렛일을 했다. 세로로 흘려 쓴 한문처방을 읽고 약복지에 한약을 싸는 아빠의 손을 지켜보는 일은 즐거웠다. 작두 끝으로 사각사각 썰려나오는 약초들을 세며 하루를 온통 보내기도 하였다. 매운맛과 달곰함이 잘 어우러진 계피를 쪽쪽 빨아먹을 때면 아빠는 “많이 먹으면 코피난다.” 며 짧게 말을 놓았다. 아빠의 손에서 약이 담겨지고, 하얀 첩약이 휘돌아 매듭지어져 쌓일 때마다 아빠가 멋져 보였다. 묵묵히 한 가지 일만 하는 아빠의 모습 때문에 나는 아빠가 순수하며 로맨틱하다고 생각하였다.
 얇고 투명하며 네모반듯한 약복지를 만난 것은 정말 행운이었다. 외가에 가면 하얀 약복지가 약장 칸칸이 쌓여있었다. 나는 그 약복지가 너무 좋았다. 아빠 몰래 약복지를 꺼내다가 인형도 그리고 나비도 그리며 놀았다. 아빠는 귀한 약복지에 그림을 그리지 못하게 하였지만 나의 그림 낙서는 오랫동안 계속되었다. 방 귀퉁이에 투박한 벽화를 그리는 것보다 훨씬 쉬울뿐더러 연필심이 종이에 움푹 파이는 맛이 재밌기도 하였다. 나의 그림 레퍼토리는 늘 비슷했다. 머리카락이 길고 다리가 없는 인어아가씨, 날개 달린 천사아가씨, 신데렐라 같은 공주아가씨.
 나는 항상 예쁜 인형만을 그렸다. 진주목걸이와 귀걸이를 주렁주렁 매달은 공주, 물속을 헤엄칠 수 있는 공주, 꽃 사이를 날아다닐 수 있는 공주, 나비 왕자. 아빠의 손이 분주해지고 네모난 약이 한 첩 두 첩 쌓일 때마다 나는 지루함을 이기려고 그 곁에서 그림을 그렸다. 약 짓는 아빠 곁에서 그림을 그리는 것처럼 행복한 시절이 또 있었던가? 나는 또 숙지황(熟地黃)을 주무르다 용안육(龍眼肉) 몇 점을 훔쳐 먹기도 했다. 용안육은 참 달고 쫀득쫀득하였다. 마치 요즘 나오는 흔해빠진 건포도와 많이 닮았다는 느낌이다. 나는 용안육을 잘 펴고 나누어서 아빠가 한약을 잘 짓도록 도와드리곤 했다. 아빠의 손에서 태어난 약재들은 새롭게 나뉘고 섞이어 동네 아픈 사람들에게 전해졌다. 나는 아빠가 한약 외에 다른 어떤 것에도 손을 대는 것을 보지 못했다. 가끔 일이 없을 때면 아빠는 화투장을 들고 재수패를 떼거나 누룩으로 동동주를 빚기도 하였다. 한약을 짓는 아빠가 화투를 놓거나 막걸리 냄새를 풍기는 것은 괴로움이었다. 아빠의 손에 한약재가 아닌 다른 냄새가 들어온다면 필시 내 아빠가 아닐 터였다.
 아빠가 던져놓은 인삼 갑은 나의 소중한 보물 상자였다. 달팽이처럼 둥글게 말려 얌전히 누워있는 인삼들이 밖으로 나가길 바라며, 나는 인삼 상자에 눈독을 들이고 있었다. 나무처럼 단단한 인삼 상자는 ‘내가 모을 수 있는 모든 것’의 소중한 둥지가 되었다. 나는 몇 년간이나 그 상자를 버리지 않았다. 대부분 친구들과 주고받은 크리스마스카드이거나 편지쪼가리 모음집이었으며 또 당연히 종이인형의 집이기도 하였다. 수없이 많이 그려대고 오려놓은 종이인형들. 나는 행여 인형들의 손과 발이 엉키지 않을까 노심초사하였다. 옷을 하도 많이 입혀 그 얇은 목이 달랑달랑한 종이인형들을 보며 나는 무던히도 내 손으로 만든 것에 애착을 가졌다. 아빠가 교대 교수이던 의빈이네 집에 놀러갈 때 그 인삼 상자 하나면 족했다. 내가 그 애의 건강한 엄마와 이층집을 부러워했던 것처럼, 의빈이는 내가 그린 인형과 소꿉을 무척이나 좋아하고 부러워했다.
 아빠는 언젠가 부잣집 친구와 놀다가 해가 저물도록 오지 않던 나에게 호된 꾸지람을 하였다. 인삼 상자 속에 있는 종이나부랭이들을 죄 버리라고 역정을 내었다. 그림 같은 건 그림쟁이나 그리는 거라고 하였다. 나는 아빠의 말에 순종하는 척했지만 그것들을 버리지는 않았다. 아니 여전히 숨어서 인형을 그렸다.
 아빠는 가끔 나를 데리고 이모네 옥상에 올라가 흑백사진을 찍어주었다. 약방의 새끼고양이를 품에 안겨주며 포즈를 요구하던 아빠. 마지못해 고양이를 안고 인상을 찌푸린 대여섯 살의 내 표정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어린 딸에게 아빠는 또 초선이가 여포를 사로잡은 이야기며 화살을 맞은 관우가 초연하게 바둑을 둘 때 그의 어깨를 수술하는 화타 같은 중국 고전이야기를 곧잘 해주었다. 혓바늘이 섰을 때 꿀 한술이면 족하다고, “맛있는 꿀, 옛다.” 하며 순식간에 숟가락을 입속에 밀어 넣곤 시침을 떼던 아빠.
 사춘기가 될 때까지 나는 그렇게 아빠의 뒤에서 찰거머리처럼 붙어 놀았다. 그것이 내가 자라는 과정이었을까. 자전거 앞자리, 아빠의 품 안으로부터 점차 뒷좌석으로 밀려나게 되면서 아빠와 나 사이는 서먹해져 갔다. 아빠는 어느 순간 혼자 자전거를 타고 다녔으며 나는 또 어느 순간부터 외가에 발걸음을 하지 않게 되었다. 눈칫밥을 얻어먹어야 하는 아픔을 깨닫게 된 나는 요리사 남편을 만나기 전까지 아빠의 약 짓는 냄새를 맡으며 꼬박 스무 해를 자란 셈이다.
 지금은 세상이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시대라서 한약도 일일이 약탕기에 달이지 않아도 된다. 약 내리는 기계에 한꺼번에 밀어 넣고 스팀을 가하면 진한 액체가 되어 내려온다. 흐르는 한약 액은 레토르트파우치라는 일회용 밀폐봉지에 일정량씩 담겨져 포장이 된다. 엄마가 아플 때만 하더라도 아빠는 한약을 약복지에 지극정성으로 조제해서 노끈으로 날렵하게 한 바퀴 돌려 매듭을 지었었다. 지금 약복지에 한약을 짓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이 바쁜 세상에 약복지를 일일이 접고 다시 풀어 한약을 직접 달이기란 쉽지 않는 일이다. 한약은 자칫 잘못하면 타버리기 일쑤고 불과 물의 성질이 잘 조화를 이뤘을 때라야 좋은 약을 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아빠는 한약에 세 사람의 정성이 들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짓는 사람, 달이는 사람, 그리고 약을 먹는 사람이다. 셋 중에 하나라도 좋은 마음을 갖지 않으면 한약의 효험은 없어진다고 하였다. 나는 그 말을 믿는다. 아빠는 칠십 평생을 한약재와 더불어 그렇게 살아왔다.
 추운 날, 막걸리에 얼큰하게 취해 들어오며 “어허, 춥다. 추월아, 추월이 게 어디 있느냐.” 라며 썰렁한 개그를 던지던 아빠. 허름한 약방에 로봇 같은 거대한 기계를 들이고 레토르트파우치에 의지하는 아빠의 손에서 옛날 같은 냄새를 맡을 순 없을 것이다.
 나는 정말이지 젊고 조용한 아빠가 참 좋았다. 한약과 오십여 년을 함께 해온 아빠의 손은 그냥 손이 아니었다. 아빠의 손으로 어떤 이는 아들을 낳았다고 하고 어떤 이는 자궁의 물혹도 없앴다고 하였다. 아빠는 약으로 사기를 치기는 참 쉬운 거라 하였다. 그렇게 사기를 쳤다면 아마 서울에 빌딩 두어 채는 족히 가졌을 거라 하였다. 그러나 아빠는 한약으로 도움을 줬을 뿐, 그 약으로 아들을 낳았는지 자궁을 맑게 했는지 잘 모를 일이라고 하였다. 약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나는 아직 그 말의 뜻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지금 내가 달이는 것은 한약이 아니다. 피로를 회복해주거나 초기 감기증상을 완화해줄, 기껏해야 갈근(葛根)탕이나 쌍화탕 정도이다. 임시방편으로 달이는 민간요법에 불과하다. 그것을 아빠가 정성스레 지어준 첩약에 비할까. 특정한 향기가 담긴 찻잔을 바라보며 그 향기를 마시는 것은 과연 즐거운 일이런가. 나는 유달리 냄새에 집착하나 보다.
 세월은 약을 짓는 아빠의 손에도 내려앉았다. 폭설이 내리던 날, 화덕에 약재를 덖는 아빠의 손을 보고 하마터면 주저앉을 뻔했다. 아빠의 손등이 허옇게 벗어지는 것을 보며 뒤돌아서 얼룩진 안경알을 닦아야 했으니까.
 플라타너스의 벌레 먹은 나뭇잎들이 발등 아래 뒹굴 때마다 잎을 떨어뜨리고 선 그 나무를 껴안고 한없이 울고만 싶어진다. 칠 벗어진 나무의자에 앉아 검은 향기를 들이켜지만 냄새의 출처를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커피 향 같기도 하고 피 냄새 같기도 한, 그리하여 더는 아빠 생각을 하고 싶지 않을.
 
 - 계간『시에』2011년 여름호 -

 
   

유시경 님의 작품목록입니다.
전체게시물 37
번호 작  품  목  록 작가명 날짜 조회
공지 ★ 글쓰기 버튼이 보이지 않을 때(회원등급 … 사이버문학부 11-26 92582
공지 ★(공지) 발표된 작품만 올리세요. 사이버문학부 08-01 94790
7 숲길 위에서 유시경 07-10 4908
6 불안은 내 친구 유시경 07-10 5093
5 따뜻한 잠 유시경 07-08 5191
4 빗소리의 지겨움 유시경 07-08 4617
3 이카로스의 연인들 유시경 07-08 5089
2 아빠의 손 유시경 07-08 6025
1 오빠의 봄 유시경 07-08 5128
 
 1  2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