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 물고기
거슬러 가다 보면 초등학교 1학년하고도 2학기까지 흘러갈까. 자꾸만 흐려지는 기억이 걱정돼 병원에 가 볼 생각까지 하는 요즘이고 보면 그 때 일들은 어찌 그리도 선명한지 모르겠다. 방과 후 남으라는 말씀에 살짝 겁을 먹은 나는, 청소를 끝낸 친구들이 담임선생님 코앞에다 까닥까닥 인사를 놓고 달아날 때까지 교실 한 편으로 실실 비켜 다니며 괜히 책상들이나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텅 빈 교실은 금세 고요해졌다. 사방 열어놓은 문으로 홈질 하듯 바람만 들락거릴 때, 며칠 전부터 손수 만들고 꾸며놓은 ‘텅 빈 연못가'의 풍경 앞에서 선생님이 부르셨다. 그리고 정돈된 책상 몇 개를 다시 허물어 넓게 붙이더니 두툼한 자연도감을 내려놓았다. 의아해 하는 내게 선생님은 도화지 몇 장 건네며 연못가에 살게 하고 싶은 것들을 마음껏 그려보라고 하셨다. 그건 함께 교실 뒤 벽보를 꾸며보자는 말씀, 오! 갑자기 가슴이 콩콩거리기 시작했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그림들이 쏟아져 나왔다. 이름도 종류도 처음 듣고 보는 풀과 나무들, 동물과 새들, 그리고 물고기들이 펄떡거리며 튀어나왔다. 실컷 들여다보다가 맘에 드는 걸 골라 그리기 시작하는데 그날따라 손끝으로 감이 몰리는지 칠하는 것마다 살아 움직이는 것같아 어린 마음에도 신이 났다.
물고기의 비늘이나 새의 날개는 한두 가지로는 표현할 수 없는, 암만 봐도 신비하고 오묘한 빛깔이다. 여덟 살 꼬마의 고민이라지만 그래도 그 비늘과 깃털의 은은하고 화려한 느낌을 꼭 만들어내고 싶었다. 크레파스를 요것조것 덧칠해 보며 어린 화가라도 된 냥 꽤나 심각하고 또 심각했었다. 아, 이 창작의 고통이라니!
얼마나 그렸을까. 상상 속을 헤엄치는 작은 물고기들에 빠져 지루한 줄 모르게 시간이 흘렀다. 한들거리는 푸른 수초에 휘감겨 나른하다가 꽃과 나무의 향기 속으로 코를 박고 있을 때 다정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제 그만 가야지”
서둘러, 완성한 것들을 오리고 핀을 달아 연못가에 장식하면서 그때 해 준 선생님의 말씀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그것은 지금도 수시로, 사는 일에 자신 없어 주저앉을 때마다 무언가 하나쯤 꺼지지 않는 열망으로 지탱하도록 용기를 준다. 그 누구도 아닌 오직 나라는 존재의 소중함을 알고 믿도록 자신감을 심어주는 것이다.
“와, 어떻게 이렇게 그려놓을 수가 있니? 신동이야 신동. 아이고, 참!"
며칠 뒤 환경미화 심사에서 우리 반이 몇 등을 했는지는 생각나지 않는다. 다만 그 날 선생님이 해 준 칭찬이 지금껏 나를 키운다. 신동은 아무나 되는 게 아닌 줄 진즉 알아버렸지만 내게서 무지개 빛깔로 태어난 연못가의 정다운 친구들이, 이토록 오래 간질거리는 추억으로 함께 떼 지어 다니며 지금도 날 찾아오니 행복하다.
한 때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흉악한 죄수의 고백이 생각난다.
가난했던 어린 시절 수업료를 내지 못해 쩔쩔맬 때 ‘돈도 없으면서 학교는 왜 나오느냐 ’ 며 반 아이들 앞에서 머리를 쥐어박던 담임선생님의 그 한 마디가 깊은 상처가 되었고 바로 그 순간 자신 안에 악마가 생겨났다고.
마음이 아프다. 스승의 따뜻한 격려가 때로는 부모의 그것보다 더 큰 위안이고 그 힘이 먼 훗날 아이들을 아름답고 단단한 인격체로 키우는 에너지가 된다는 걸 잊다니...
새 학기가 시작되고 세상이 온통 꿈과 희망으로 벌어지는 계절이다. 무엇보다 자라나는 우리 아이들이, 청소년이, 젊은이들이 미래를 자신하도록 아낌없는 칭찬으로 쓰다듬고 이끌어 줄 스승이 새삼 간절해진다. 이제는 너무 멀리 가 버린 세월 탓에 추억 속의 은사님을 찾아뵙기가 두렵다. 다만 이렇게 여기서 늘 안녕하시길 빌며, 오래 전 당신이 들려준 아름다운 그 한 마디로 나는 오늘도 끊임없이 나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