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말을 빨래하는 남자
문경자
외출했던 남편이 집으로 돌아오자 안방으로 들어가 편안한 옷으로 갈아입었다. 양말을 벗는 순간 하루 종일 고생한 발이 검정색 옷을 벗었다.
남편은 벗어놓은 양말을 들고 화장실로 향해 갔다. 우리는 살짝 열린 문틈 사이로 들여다 보았다. 내가 시집을 올 때 갖고 온 세숫대야(스테인리스)에 양말을 담고 수도 꼭지를 확 틀었다. 수돗물이 쏴~~아 하고 소리를 내며 쏟아졌다. 물이 철철 넘쳐 흘렀다. 고무장갑도 끼지 않고 맨손으로 건져 타일이 깔린 바닥에 나란히 눕혀 놓고 빨래 비누로 발목 부위부터 골고루 비누칠을 한다.
발을 보호하기 위해 하루 종일 검은 구두 속에서 갑갑했을 불쌍한 양말이 축 늘어져있었다. 두툼한 손과 통통한 열 손가락을 총 동원하여 문질러 댄다. 손 힘이 세게 보였다. 오직 그 일에 정신을 쏟아 붓는다.
맑은 물이 나올 때까지 헹구다 보니 시간이 꽤 오래 걸렸다. 쪼그리고 앉아 빨래하는 일은 여자들도 힘이 든다. 하물며 배가 나온 남자가 앉아서 빨래하는 건 보기에도 힘들어 보였다.
딱하게 보여 나는 세탁기에 넣어서 돌리면 되는 것을 힘들게 하느냐고 입을 삐죽거리며 말려도 내 말은 귓전에도 들리지 않은지 계속 그 일만하고 있었다.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놔두고 언제까지 하는지 두고 보자 하며 지켜보기로 하였다. 물소리가 뚝 끊어졌다. 양손으로 그것을 길게 잡고 비틀어 짠다.
꼭 짠 양말을 거실 쪽으로 던지면 항상 똑 같은 모양으로 양말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우리는 밖에서 누워있는 그 양말을 보고는 웃는다. 반듯하게 떨어진 양말은 힘없이 나란히 누워 있다. 양말이 드러누워 피곤해, 힘들어, 나 그만 괴롭혀 하며 주름진 그 사이로 한숨 소리가 들리는 듯 하였다. 남편은 우리가 웃는다는 것을 눈치 챌 수가 없다. 안 볼 때만 웃어주니까. 아이들도 “어머니, 아버지께서 왜 양말을 직접 빠시는지 모르겠어요.” 하며 고개를 갸우뚱하였다.
화장실에서 나오는 것을 보고 못 본 척하였다. 양말을 말린다며 옷걸이에 걸어두었다. 나는 물기가 있는 양말을 만져 보고 웃음이 나왔다.
웃을 일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해가 바뀌어도 끝낼 생각을 하지 않았다. 보다 못한 나는 왜 양말을 손빨래를 하는지 물어보았다. 내일 신고가야 한다며 굳이 고집을 부리며 빨래를 한다. 참 이상한 남자도 다 있네. 사람의 마음을 양말 속 뒤집듯이 볼 수만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날 벗어 놓은 양말을 내가 얼른 집었다. 남편은 양말을 달라며 잡아 당겼다. 내가 화가 난 얼굴로 그만 하라고 하며 세탁기에 집어 넣었다.
혹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양말을 빨래 하는지 아니면 재미로 하는 건지 속내를 알 수가 없었다. 말이 없는 편이라 굳이 알려고 하지 않았다.
2012년 3월 합천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