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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다리방아    
글쓴이 : 문경자    12-11-13 10:40    조회 : 5,282
양다리 방아
                                        문경자   
 
 쿵더쿵 쿵더쿵 신나게 디딜방아를 찧는다. 재미 삼아 하다가는 큰 코를 다친다. 쉬운 것 같지만 엄청난 힘이 든다.
 어릴 때 어른들이 방아 찧는 것을 보며 발을 올려놓고 힘을 주지 않아도 내렸다 올렸다 하면 곧잘 한다고 칭찬을 해주었다. 어른들은 우리가 발만 올려놓고 거저 먹기로 하는 것을 알면서도 봐 주었다.
 친척집 디딜방아가 있는 곳은 아래채인데 동네 아낙들이 집안에 크고 작은 행사가 있을 때 많이 이용을 하곤 했다. 방아를 찧기 위해서는 누군가 짝이 되어야 수월하게 할 수 있었다. 같이 할 사람이 없으면 방아 주인이 애를 먹기도 하였다.
 혼자 오면 괜히 너스레를 떨며 주인에게 슬쩍 한 마디 던져본다. 아무도 도와줄 사람이 없어 혼자 와서 보니 엄두가 나지 않네, 하면 딱한 사정을 듣고 그냥 있을 수 없어 도와 주기도 하였다.
 양다리 방아는 한국 고유의 발명 품으로 세계 어느 지역에서도 볼 수 없다. 심지어 중국이나 일본에서도 외다리 방아를 나란히 설치하여 쓸지언정 한국처럼 양다리방아를 만들 생각은 하지 못하였다. 양다리방아는 둘 또는 그 이상의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거나 노래를 불러가며 찧는 까닭에 매우 능률적일 뿐만 아니라 노동의 고달픔을 덜 수 있는 장점도 지녔다.
 확으로는 작은 돌 절구를 땅에 묻으며 천장에 늘인 새끼줄을 쥐고 방아를 찧었다.
 
 어머니를 따라 떡을 하기 위해 가는 날이면 신이 난다. 쿵더쿵쿵더쿵 디딜방아를 내리 밟으며 노래를 부르기도 하였으며, 오르락내리락 하다 보면 앞 집에 사는 친구 오빠를 놀려 주는데 쩔커덕대서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하는 것을 알고서 입 모양만 만들어 보여 주기도 했다.
 음력 정월보름이면 오곡밥을 얻기 위해 복조리를 들고 집집마다 돌아 다녔다. 아낙들은 우리를 보며 반겨주었다. 찰밥, 조밥, 보리밥, 수수밥 여러 가지 종류의 밥이 금방 조리에 수북하게 담겨 있었다.
 집으로 돌아와 디딜방아 다리에 걸치고 앉아 먹으면 더위를 타지 않는다고 하여 어머니는 그곳에서 먹게 하였다. 나는 어머니께 누구네가 어떤 밥을 주었는지 이야기도하며 내가 노력해서 먹는 밥이라 눈치 볼 것 없이 배가 터지게 먹었다.
 
 디딜방아는 발로 디디며 곡식을 찧던 재래식 방아다. 쿵더쿵 하고 다리를 디뎠다 떼었다 하며 장단을 잘 맞춰야 곡식이 튀지 않고 골고루 빻아진다.
 시집을 가서 디딜방아를 찧던 일이 너무 힘이 들어 지금도 잊혀 지지 않는다. 시댁에는 꽤 오래된 디딜방아가 있었다. 새댁이 방아를 찧는 것이 보통 힘든 일이 아니었다. 제사가 있는 달은 걱정이 되어 한숨이 나오기도 하였다. 어릴 적 기억이 있기 때문이었다.
인절미를 만들기 위해 디딜방아를 찧는 일이 너무 힘이 들었다. 찰기가 있어 잘 떨어지지도 않아 방아를 찧기도 어려웠다.
 동네 사람들이 많이 이용하기도 하는데 그럴 때 마다 방아를 찧으며 온 동네 돌아가는 이야기로 꽃을 피운다. 서로 주고 받는 것이 척척 발이 맞는다. 처녀 총각들의 연애 담, 시집살이, 남편 흉보기, 미운 시누이, 동네 이장, 아이들 이야기며 끝이 없다. 영화의 시나리오 같은 구수한 이야기는 듣기만 해도 재미있었다.
 맛있는 떡이라도 만들 때는 뚝 떼어서 한 입 넣어주기도 하였다. 우리 시댁에 대한 이야기를 슬쩍 끄집어 내며 시집살이가 힘들꺼라며 내 눈치를 보고 흘깃 쳐다본다. 그렇다고 내가 맞장구를 치며 무슨 말이라도 한다면 당장 시집 식구들 귀에 들어가게 될 것이 염려스러워 그저 입만 꾹 다물고 있었다.
 지난 일이지만 시어머님은 며느리가 방아 찧는 것이 힘이 들까 봐 옛날 이야기도 해주셨다. “옛날에 어느 집 아낙이 애기를 업고 마른 보리를 가지고 와서 방아를 찧고 있는데 그녀는 보리가 튀어 나오지 않게 손으로 밀어 넣고 하다 보니 애기가 오줌을 싸버렸단다. 그런데 오줌이 보리를 찧고 있는 돌 절구통으로 들어가 오줌에 젖은 보리의 껍데기가 잘 벗겨져 그 때부터 마른 보리를 찧을 때는 물을 약간 섞어서 찧었단다.”고 하는 재미 있는 이야기도 들려 주셨다.
 내가 힘들어 보이는지 시어머니는 잠을 자고 있는 시동생을 큰 소리로 불렀건만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아가, 니가 서울 말로 깨워보거라” 하시며 웃으신다. “예. 어머니.” 하고 사랑방 문 앞에 서서 “도련님, 방아 좀 찧어 주세요.” 하니 내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일어나 쿵더쿵쿵더쿵 힘차게 디딜방아를 밟아서 빻아주니 금방 끝이 났다. “형수요, 힘들지요. 수고 많습니다.” 하며 웃는다.
 어머님은 저거 형수 말은 잘 들으며 이 애미 말은 듣지도 않네. 그래도 형수가 좋은가 보다. 야속한 아들들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하시며 나를 쳐다보셨다.
  곡식을 찧는 기본 원리는 지레의 원리를 역이용한 것으로 볼씨(받침점)와 다리(힘점)사이가 가까워 다리에 힘을 가할 때 좀더 많은 힘이 필요하지만 다리(힘점)의 운동 에너지가 방아공이(작용점)에서 극대화 되기 때문에 몇 배의 효과를 거둘 수 있는 특징이 있다.
  속담에 ‘돌 지고 방아 찧는다’ 는 말은 디딜방아를 찧을 때는 돌을 지고 하는 것이 더 쉽다는 뜻으로, 힘을 들여야 무슨 일이나 잘 될 수 있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시집에 있던 디딜방아는 주인이 없는 틈을 타서 떼어갔다.
옆 동네에서 소복을 입은 아주머니들이 밤중에 몰래 디딜방아를 메고, 자기네 동네 마을 동산에서 기우제를 지내는 풍습이 있었다. 비가 정말 내렸는지 그 후로 들어본 기억이 없었다.
이제는 방아가 놓여 있던 자리도 헐어 버려 자취도 없이 사라 지고 우리 아이들이 놀이 삼아 장난치며 여럿이 붙어서 빈 방아를 찧으며 웃던 생각이 나기도 하고 한 세대가 바뀌어 많은 세월이 흘렀다는 것을 실감하며 디딜방아를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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