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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리 없는 언어    
글쓴이 : 김부조    13-04-06 11:45    조회 : 5,210
 
 소리 없는 언어
  
 2011년 1월 미국 애리조나 주에서 끔찍한 총기난사 사건이 일어났다. 그 희생자 추모식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연설 도중 총탄에 숨진 아홉 살 소녀 얘기를 꺼내며 51초 동안 말을 잃었다. 그는 왼쪽, 오른쪽을 번갈아 올려보며 깊은 숨을 내쉬다 감정을 겨우 추스른 다음 이를 깨물고 연설을 다시 이어갔다. 그 침묵의 51초가 흐르는 사이 미국민은 딸을 잃은 부모의 심정으로 하나가 되었던 것이다.
 
 오바마를 앞장서 비판해 온 폭스뉴스 진행자 글렌 벡은 ‘오바마 연설 중 최고’라고 극찬했다. 뉴욕타임스는 ‘그의 재임 2년 중 가장 극적인 순간이었다’고 썼다. 백 마디 교언(巧言)이 금은이라면 오바마 대통령의 그 침묵은 다이아몬드였던 것이다.
 
 1974년 8월 15일 박정희 대통령은 조총련계 재일동포 문세광이 쏜 흉탄에 부인을 잃었다. 나흘 뒤, 영구차는 하얀 국화로 덮였다. 박 대통령은 청와대 정문에서 영구차와 이별하며 눈물을 보였다. 국민들도 TV를 통해 이 광경을 지켜보며 슬픔을 함께 했다.
 
 미국 뉴욕 세계무역센터(WTC) 쌍둥이 빌딩이 2001년 9월 11일, 이슬람 테러조직의 항공기 자살 테러로 무참히 무너져 내렸다. 며칠 지난 뒤 부시 대통령이 현장을 찾았다. 항상 웃음 띤 얼굴이 그의 트레이드 마크였지만 엄청난 희생 앞에서는 그 역시 울고 말았다. 눈물은 감정이 북받쳐 오를 때 흐르는 생리적인 액체라고 하지만 ‘침묵의 언어’로도 곧잘 비유된다.
 
 ‘침묵을 배경으로 하지 않은 언어는 공허하다’며 침묵의 중요성을 강조했던 법정 스님은 법문의 말미에 ‘내 이야기는 이쯤에서 끝내니 나머지는 저 찬란한 꽃들에게 들으라’고 맺곤 했다. 중국 명나라 때 문인 진계유(陳繼儒)는 ‘고요히 앉아 본 뒤에야 보통 때의 기운이 경박했음을 알았다. 침묵을 지킨 뒤에야 지난날의 언어가 조급했음을 알았다. 일을 되돌아 본 뒤에야 전날에 시간을 허비했음을 알았다. 욕심을 줄인 뒤에야 예전에 잘못이 많았음을 알았다.’고 했다.
 
 어느 묵언(默言) 수행자는 ‘사람이 하루에 얼마나 쓸데없는 말을 많이 하고 있는 지를 침묵해 보면 안다’고 했다. 또한 셰익스피어는 ‘순수하고 진지한 침묵이 사람을 설득시킨다’는 명언을 남기기도 했다.
 
 프레젠테이션의 귀재로 불렸던 스티브 잡스는 신제품 설명 도중, 가끔 슬라이드 화면을 텅 비워 버린 채 말을 잠시 끊었다. 그 순간 청중은 다음에 무엇이 나올지 신경을 바짝 곤두세운다. 연설 전문가들은 청중을 긴장시키는 네 가지로 눈맞춤, 질문, 다가서기와 함께 침묵을 꼽는다.
 
 나폴레옹과 히틀러도 청중 앞에서 한동안 침묵하다 연설을 시작하는 방법을 애용했다. 나폴레옹은 키가 작았고 고향 코르시카 섬의 이탈리아 사투리가 뒤섞인 프랑스어를 썼다. 연설가로서의 조건이 보잘것없었다. 대신 그는 침묵으로 카리스마를 이끌어냈다. 출정에 앞서 병사들을 몇 십 초 동안 말없이 둘러보곤 했다. 그 사이 병사들은 단신의 나폴레옹이 서서히 거인처럼 커지는 느낌을 받았다. 히틀러도 전략적 침묵의 대가였다. 군중 앞에서 5분씩 가만히 있다 군중이 잔뜩 신경을 집중하면 그제야 말을 꺼내곤 했던 것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말을 주고받는다. 따라서 가끔 말실수도 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순간의 감정에 치우쳐서 혹은 술에 취해서 하는 말실수는 한 사람 한 사람 거쳐 가면서 와전되므로 나중에 그것을 수습하려면 큰 어려움이 따른다. 그리고 그 결과는 인간관계 훼손이라는 큰 인생의 오점으로 남을 수도 있다.
 
 나도 지난 세월을 돌이켜 보니 신중하지 못한 말로 인해 상대방의 마음을 상하게 하고 이로 인해 서로 간의 관계가 편치 못했던 경우가 더러 있었다. 무심코 내 뱉은 말이 와전되어 오해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구설수에 휘말린 사람을 화젯거리 삼아 눈덩이처럼 커진 구설수에 덩달아 말을 더 섞었던 적도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정말 부끄럽고 낯 뜨거운 일이다.
 
 위대한 작곡가가 쉼표의 힘을 알 듯 위대한 연설가는 침묵의 힘을 안다. 때로 사람들은 말보다 침묵을 더 신뢰하고 침묵에 더 공감한다. '논어'에 '사불급설(駟不及舌)'이라는 말이 있다. 네 마리 말이 끄는 빠른 마차라도 혀의 빠름에 미치지 못한다는 뜻이다. 말은 한 번 하면 거둬들일 수 없는 것이니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할 일이다. 우리 모두 마땅히 침묵해야 할 때 침묵하며 소리 없는 언어의 매력에 짙게 물들어 봄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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