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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리케이드에 갇히다    
글쓴이 : 유시경    13-06-05 23:59    조회 : 7,039
바리케이드에 갇히다
 
 1988년, 청량리에서 석관동으로 이사한 그 해의 가을 녘은 내 생애 가장 희망적인 계절이었다. 우리가족은 이십여 년 간의 군산 생활을 청산하고 올라왔다. 난 여느 때처럼 갓 돌 지난 두 살배기를 업고 아빠의 한약방에 놀러갔다. 석관동에서 경동시장까지의 거리는 왔던 길을 눈감고 걸어도 좋을 만큼 가까워보였다. 지독한 안개가 도시를 휘감지만 않았더라면 말이다.
 연탄 한 장을 사들고 가다가 그만 새끼줄을 놓치고 우는 아이가 있었던가. 주워 담기 힘든 유년의 땅바닥처럼 공기의 입자는 어수선하며 질퍽거렸다. 늑대인지 개인지 분간이 안 되는 주인집의 셰퍼드는 그날따라 재갈을 문 듯 얌전했다. 바지랑대 위의 빨랫줄이 약간 출렁거렸던가. 춥지도 않으면서 오슬오슬하고 청명하지도 않은 그 날씨가 나를 자꾸만 바깥으로 끌어당기고 있었다. 아이에겐 원피스를 입히고 나는 얇은 점퍼를 걸친 채 집을 나섰다. 시내버스는 이문동을 지나서 외대 앞 휘경 역을 지나고, 청량리 맘모스 백화점을 거쳐 경동시장으로 내달렸다. 차창 밖으론 구름의 여신이 담배연기를 후욱 내뿜는 것 같은 기다란 안개가 꼬리에 꼬리를 물며 따라왔다. 네온빛깔이 진해진다고 느꼈을 때 그곳은 어김없는 청량리 미주상가 앞거리였다.
 “애 감기 들라.”
 아빤 이렇게 안 좋은 날에 왜 나왔느냐며 나무랐다. 그러더니 추석 전에 선물로 들어왔다는 사과박스를 뜯어 비닐에 죄 옮겨 담아 주시는 거였다.
 “아빠, 나 아직 무거운 거 잘 못 들어요.” 하고 아랫배를 쓰다듬는 시늉을 했지만 아빤 빨리 들어가라고 재촉하였다. 섭섭하게도 약방에 도착한 지 십여 분만에 우린 오던 길을 다시 돌아가야 했다. 또록또록 들려오는 안개의 숨소리. 한약 상가의 약재상들이 좁은 블록을 타고 층층이 쌓이는 뿌연 물질 속으로 단박에 떠내려갈 것만 같았다. 그제야 나는, 길목 어귀에 있는 한의원의 큰 간판글씨가 읽히지 않을 만큼이나 세상이 몽롱하다는 사실을 감지할 수 있었다.
 비닐을 뚫고 비어져 나올 것처럼 큼직하고 울퉁불퉁한 사과들은 아직 실밥자국이 또렷이 남아있는 내 아랫배에 묵직함을 더해주었다. 밑이 빠져버릴 것만 같은 통증을 느끼며 나는 아기를 끌어안고 겨우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에 올랐다. 몽환의 귀환길. 그것은 마치 영혼을 태운 자동차가 목적지 없는 허공을 향해 부웅 날아오르는 것처럼 느껴졌다. 버스는 경동시장을 지나고 다시 청량리 역 맘모스 백화점 광장을 거쳐 외대 앞과 휘경 역의 교차로 지점을 향해 서행하였다. 깊고 아득하다는 느낌이란 이런 것일까. 소금에 찍어 혓바닥 위에 막 올린 생고기 한 점, 한입 깨물면 입 안 가득 퍼지는 붉은 육향(肉香)처럼 안개의 속살은 치맛단을 질질 끌면서 도시의 풍경에 잠입하고 있었다. 차에 오르기만 하면 눈을 감는 내 아이는 좀처럼 잘 생각이 없나 보았다. 아기의 시선이 자꾸만 제 어미의 눈동자를 맞추려 들었고 나는 봉지에 든 사과가 쏟아질세라 비닐 끈을 움켜쥐었다.
 갑자기 차가 멈추었다. 기사가 일어서더니 외쳤다.
 “외대 앞에서 학생들이 데모하고 있다네요. 여기서 다 내리셔야겠습니다. 더는 진입을 못합니다. 알아서들 가십시오.”
 당연하다는 듯, 도로 한복판에 버스가 정차한 것이다. 한차례의 웅성거림. 파쇄기에서 찢겨나가는 종잇장 같은 소릴 내며 승객들이 우르르 내리더니 각자 제 갈 길을 찾아 흩어져갔다. 흔들리는 아기의 옷자락, 소름 돋는 살갗. 불안한 느낌을 딸애는 감지했을까. 품에 안긴 아기는 행여 떨어질세라 어미의 양팔을 더 단단히 잡아당겼다.
 사위는 해질녘처럼 혼돈스러웠다. 안개를 따라 앞으로 나아갔다. 멀리서 가까이서 간간이 함성소리와 욕설, “쨍!” 깨지는 소리. “펑!” 터지는 소리. 기다란 것은 전신주, 네모난 것은 건물일 게 분명하다. 달리는 것은 사람, 쫓는 것은 몽둥이. 나는 무의식적으로 그 자리를 맴돌았다. 얇은 점퍼와 두꺼운 전투복. 기차처럼 늘어선 전경버스. 얽힌 쇠그물 창틈으로 빠른 움직임이 보인다. 그러나 안개와 연기의 소용돌이. 직사각의 방패를 들고 나란히 앉은 경찰들의 무표정한 얼굴. 바닥엔 돌멩이와 유리조각들. 불똥들은 도로 곳곳에서 튀어 오르고 나는 한참이나 그 땅을 밟고 섰다. 눈은 따가웠고 입에선 신물이 흘러나왔다. 떨어지는 최루탄과 뒹구는 유리. 피어나는 불꽃과 퍼지는 연무(煙霧). 나는 아기와 사과봉지를 한데 끌어안은 채 갈피를 못 잡고 서서 엉엉 울어댔다.
 그래, 비록 찻길이긴 하나 버스 노선을 머릿속에 익히 주입해두었으리라. 낯가림이 심한 나는 언제나 하나의 길로만 다니질 않았던가. 그러나 불빛 없는 거리. 여긴 대체 어디이며 나는 또 어느 길로 가야 집에 당도할 수 있을 것인가. 등에 둘러업힌 아기가 몸을 배배 꼬더니 갑자기 진저리를 치기 시작한다. 누군가 뒤에서 “아줌마, 미쳤어? 여기서 뭐해! 애 잡것어! 빨리 뛰어!” 하고 고함을 친다. 흘러나오는 눈물, 콧물, 신물. 이러다 정말 죽는 건 아닌지. 뛰어야 한다. 그럼 대체 어디로 뛰어야 하는가. 윗도리를 벗어 아이의 몸에 뒤집어씌우고 전철역 쪽으로 냅다 달렸다. 더는 못 참겠다. 눈이 빠질 것만 같다. 머리가 쏟아지고 아랫배가 터질 것만 같다. 내 아기는 등짝에 잘 붙어있는가.
 무엇이 개이고 무엇이 늑대인지 한치 앞도 분간할 수 없는 저녁을 어쩔 수 없이 달려야 할 때가 있다. 언제부터인가 눈에 보이지도, 만질 수도 없는 안개의 장벽에 갇혀 살고 있는 것만 같다. 또 언제부터인가 진공 유리알 속의 물방울무늬처럼, 깨뜨리지 않고는 통과할 수 없는 이상(理想)을 넘나들며 사람들이 춤춘다는 사실을. 뒤돌아보면 모든 것은 순식간에 지나가며 때론 깡그리 잊히기까지 한다. 청량리에서 터를 옮긴지 반년이 채 되지 않은 시점, 88올림픽이 끝난 직후의 서울은 간간이 폭죽과 샴페인을 터뜨렸고 나는 그것을 이 나라의 성대한 잔치로만 생각했었다.
 정말 그랬을까. 아기를 둘러업고 미친 듯 달리던 88년의 마지막 가을날에 불안한 안개가 자욱했던가? 그것은 진짜 안개였나, 아니라면 내 두 눈꺼풀과 혓바닥을 마비시키던 최루탄 가스연기였을까. 석관동, 연탄공장으로부터 날아온 미세한 과립의 석탄재였을까. 세상의 불평등을 층층이 쌓아올린 바리케이드는 아니었을까. 아기를 업고 달린 휘경 역 철로 변엔 지금쯤 방어벽이 쳐졌을까. “댕댕댕댕!” 경보음이 울리고 비상등이 깜박이던 그 건널목을 지금도 사람들은 건너다니고 있을까. 태양은 다시 뜰까? 나는 혼돈스럽다. 이제 무엇이 나를 가로막을 것이며 또 어떤 이름의 보호막이 내 앞을 지켜줄 것인가. 우린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덧대야 하는가.
 진눈깨비가 날리거나 안개가 자욱하거나, 치어 떼 같은 함박눈이 천지를 뒤덮을 때마다 상처부위는 왜 아물지 않고 덧나는 것일까. 뿌연 하늘을 올려다보면 어두웠던 그날의 투쟁이 흉터처럼 떠오른다. 제 어미의 등허리에서 발버둥치며 몸을 꼬던 아기는 화살촉처럼 뚫고 지나가는 시간과 함께 그만한 나이를 먹어버렸다. 한파(寒波)와 함께 대선이 치러졌고 개표와 함께 그들의 잔치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혼란스럽다. 꽃은 어떻게 젖어야 피는 건지. 방패와 최루탄과 안개와 연기 속에서 투쟁하던 학생들의 몸짓, 그 시절의 청년들은 지금쯤 어디서 무얼 하고 있는지. 실패한 개혁의지, 열매를 거두지 못한 사람의 노래가 눈 먼 하늘 밑, 주워 담을 수 없는 불공정의 거리에서 유령처럼 떠돌아만 다니고.
 
- 계간 <에세이 문예> 2013년 봄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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