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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향아(香我)의 방    
글쓴이 : 유시경    13-07-23 02:21    조회 : 7,409
 
향아(香我)의 방
 
 “야 이년아! 죽은 거냐, 살아있는 거냐?”
 삼십 년 지기로부터 전화가 왔다. 뭐하고 사느냐고, 밥은 먹고 하늘은 보면서 사느냐고, 그새 죽진 않았느냐고, 매정하게도 어찌 전화 한 통 없느냐며 내 속을 들쑤시기 시작한다.
 “가시내야, 그러는 너는 잘 살아서 좋겠구나?”
움찔움찔, 뒤틀뒤틀, 내장이 훤히 비치는 새끼 쥐들의 몸짓처럼 우린 한 시간이 넘도록 전화통을 붙들고는 서로 비벼대기 바쁘다.
 여고시절, 나는 향아에게 퍽이나 많은 신세를 졌다. 점심시간에 도시락을 얻어먹는 건 다반사요 입동이 막 시작되려던 산산한 늦가을 몇 날을 아예 그 애 집으로 기어들어가 살다시피 하였다. 골목 끝에 놓인 친구의 집은 아늑했다. 우린 나란히 누워 네 다리를 벽에 올려붙이고는 천장 너머 지붕 위로 떠 있을 별들을 상상하며 대화를 나누었다. 풋내 나는 소녀들의 단잠은 새벽녘에 이르러서야 무르익었다. 사람들의 기척이 오가고 밥 짓는 냄새와 함께 아침햇살이 방구들로 기어들어올 때까지 둘은 깨어날 줄을 몰랐다.
 “밥들 먹어라.” 그 애 어머니의 음성에 우린 또 약속이나 한 듯이 “예에!” 하고는 벌떡 일어나 앉아서 눈을 비벼댔다. 그리고 비빈 손등을 눈에서 떼어내는 순간 그 작은 방에 우리가 아닌 다른 것도 함께 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외벽 한쪽 귀퉁이에 대롱대롱 매달린 형태 불분명의 메주덩어리들. 구수하고 진득한 콩의 냄새에 함몰된 두 소녀는 고단하게 걸린 메주를 밤새 귀신 씨나락 까먹듯 야금야금 떼어먹었던 것이다. 흉측하게 파 먹힌 메주의 몰골. 그것들이 적나라하게 제 모습을 드러내자 나는 그만 오금이 저려왔다. 큰일 났다며 팔을 걷어붙이고 메주 모양을 수습하려 하자 향아는 괜찮다고 말했다.
 “한쪽에서나 파먹을 것이지, 이게 뭐여 대체.” 여기저기 기괴한 마블링(marbling)을 새겨 넣은 우리의 야담(夜談) 탓에 그 앤 제 어머니로부터 따끔한 면박을 받아야 했다. 쉴 새 없이 속살거리며 또 쉴 새 없이 지분거리게 하던, 다름 아닌 그것은 두 소녀의 청초한 탐식(貪食)이었음은 물론이거니와, 밤새 우리의 얘기가 끝 간 데 없이 즐거울 수밖에 없는 원인이기도 하였다.
  바람의 도시, 정월(正月) 한낮의 군산은 사납고 거칠었다. 향아와 함께 아궁이 앞에 앉아 장작을 때며 서로의 앞날에 대해 아둔하고 어리기 짝이 없는 고민을 나누었다. 그러나 두 소녀가 나눈 것은 삶에 대한 실존의 문제였지 그저 막연하고 허무맹랑한 이상적 철학은 결코 아니었다. 우린 둘 다 부모 품을 벗어나 독립하고 싶어 했다.
 1984년, 겨울도 봄도 그새 다 지나고 뜨뜻미지근한 유월바람이 불 무렵 나는 식구들 몰래 향아를 따라나섰다. 향아와 미선이 그리고 나, 이렇게 셋이서 용산 행 완행열차를 타고 서울로 직행한 것이다. 가로등 불빛과 네온이 차창을 수놓는 대도시의 풍경. 용산역의 어둠은 아직 걷히지 않은 새벽하늘만큼이나 옹색하고 조금은 기운이 빠져보였다. 광장 입구, 진입금지의 바리케이드 위에 다리를 꼬고 앉아 담배를 물고 있는 중년여인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헝클어진 사자머리, 붉은 립스틱, 흘러내리는 마스카라, 마른 장작개비 같은 발등, 발등 위의 스타킹, 스타킹 위의 구두. 그것이야말로 세상에 태어나 내가 처음으로 마주한 서울의 첫인상이었다고나 할까.
 성북동 꼭대기 달동네 어디쯤엔가 향아의 외사촌언니가 자취하고 있다고 했다. 우리는 고불고불한 언덕바지를 스무고개 넘듯이 물어물어 걸어 올라갔다. 언덕 위로 한여름의 열기가 지글지글 끓고 있었던가. 향아는 그 더위를 이기지 못하고 전봇대 뒤로 가서 그만 토악질을 해댔다. 친척언니네 방에 도착하자마자 셋은 이내 곯아떨어지고 말았다. 해가 저물도록 실컷 자고 일어난 우리는 당장에라도 목에 풀칠할 만한 일들을 물색해야만 했다.
 미선이는 곧장 제 식구들 손에 붙들려 떠나고 향아는 얼마 뒤 사촌언니의 주선으로 속옷 만드는 공장에 취업을 했다. 브래지어와 란제리, 거들 같은 여성전문 속옷을 취급하는 회사였을 것이다. 만약 그때 내가 향아네 집에 들락거리지만 않았어도, 미칠 것 같다고 하소연하지만 않았어도 그 앤 꽤 괜찮은 대학에 들어가 군불 때듯 계속 제 꿈을 향해 학구열을 지폈을 지도 모른다. 여기저기 일자리를 알아봐주며 그 앤 내게 몇 군데 공장 일을 권유했지만, 나는 ‘그런 일들’에 대하여 결심을 굳히지 못한 채 그대로 집으로 내려오고 말았다. 1986년 여름, 내가 다시 서울에 올라와 한 남자의 품에 둥지를 틀었을 때 향아는 자신의 목표점을 향해 부단히 나아가고 있었다.
 이듬해 오월, 나는 향아가 만들어준 순백의 백합부케를 들고 하나뿐인 친구의 축복을 받으며 향기로운 결혼식을 올리게 되었다. 그리고 그해, 출산을 앞둔 구월의 갈바람과 함께 전철을 타고 처음으로 그 애의 자취방을 찾았다.
 대림역과 구로공단 사이. 참 고단하기도 할 텐데, 향아는 나를 위해 저녁 반찬거리를 한 아름이나 사들고 와서는 저녁을 짓는 것이었다. 나는 얇은 임부복의 치맛단을 향아의 방에 펼쳐놓고 앉았다. 깔끔하게 정돈된 방안에서 자줏빛 날개 하나가 숨을 고르고 있는 걸 보았던가. 벗이 끓여낸 된장찌개의 구수함은 그 옛날 둘이서 뜯어먹던 추억의 메주콩과는 그 냄새가 확연히 달랐다. 그때 나를 취하게 한 것은, ‘香我’라는 그 작고 당차기 그지없는 스물하나 꽃 처녀의 향기가 분명하였으리라.
 향아는 서울에 무사히 정착했다. 오남매의 맏딸답게 차분하고 진취적이며 더 단단한 발판을 내딛기 위한 젊음을 살고 있었다. 공단의 심부름 일을 밑거름 삼아 점점 나은 곳으로 자리를 옮겨나갔다. 자동차 대리점 사무, 종합정보 간행물 콜센터, 각종 보험관련업까지 사업을 확장하였다. 느지막이 연분을 만나 결혼을 하고 남매를 키워 캐나다로 유학을 보냈다는 그녀. 내 아이의 백일과 돌에도 와주었지만 나는 부케는커녕 향아의 결혼식이나 첫아이 돌잔치에도 가보지 못하였다. 스물여섯 해가 지나는 동안 난 그 애에게 단 한 번도 고맙다는 말을 한 적이 없다.
 “이년아, 넌 왜 만날 그렇게 사냐. 네가 인간이냐? 조금만 내려놓고 세상을 좀 둘러봐. 전화도 한번 못하니? 차 한 잔 할 시간이 그렇게 없어?”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그 애의 목소리가 마치 오래전에 출가한 맏딸의 잘잘못을 윽박는 친정엄마의 핀잔처럼 들리는 것이다. “그래 미안하다, 향아야. 너 잘 살고 나 행복하면 그만 아니겠니?” 염치없지만 전화 줘서 고맙다며, 언제 날 잡아 밥 한번 먹자며 어물거렸다. “이구, 썩을 년. 그 언제가 언젠데!” 그 앤 내게 그리 쏘아붙였다. 썩을 년. 그건 아마도 어렸을 때 무수히 들었던 젊은 내 생모의 18번 코드는 아니었던가.
 이런 바보 같으니라고. 왜 그렇게 목매어 사느냐고. 눈부신 오월엔 여행을 떠날 거라고. 미선이랑 지금 모사 꾸미고 있는 중이라고. “너도 갈래? 너도 같이 가자. 우리 셋이서.” 하며 연신 꼬드기는 것이다.
 “글쎄다…….”
 “이런 바보. 만신창이 돼서 돌아다니고 싶냐? 너 열심히 살았잖아. 애들도 다 키웠잖아. 그럼 됐지 않니?”
 그래, 내가 아직도 죽지 않았다면 너를 만나러 가야겠어. “죽었니, 살았니?” 라고 묻는 벗이 있으니 나는 앞으로 또 얼마나 가슴 저미는 추억으로 이 삶을 개조하고 증축할 수 있을 것인가. 지난봄에 인생이막의 외식사업을 시작했다는 향아, 이제 나는 새로이 그 애의 방문을 두드리고 싶다. 이 밤이 새고 내일 아침이 오면 무작정 그리운 옛 친구의 식탁으로 건너가리라.
 “가시내야, 나 아직 안 죽었다. 우리 함께 가자, 즐거운 여행.”
 
 - 책과 인생 2013년 8월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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