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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때 해변에서 얽힌 사연    
글쓴이 : 문영휘    13-09-06 11:46    조회 : 5,801
       그때 해변에서 얽힌 사연  
                              
                                                                                                                문   영  휘
  언제나  해변에 가면 몸이 날것 같이 시원한 바람이 나의 가슴 속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준다.
  열린 마음 안쪽에 끼였던 찌꺼기를 남김없이 쓸어가고 새로운 희망을 안겨주던 곳, 그곳은 바로 동해
해안지역이다. 돌이켜 보면 가난했던 한국의 지역개발을 위해 미국의 지원을 받아 해변에서 처음 시작
된 나의 일자리 울산 대현지구는 그러치 못했다.
   농촌에서 향긋한 풀 냄새에다 콩밭 보리밭 냄새에 솔잎 냄새까지 곁들인 내 코에는 첫 임지 이곳
해변에 들어서자 썩어 가는 해초(海草)에서 비린내까지 범벅이 되어 내뿜는 이상한 바다 냄새에 아찔했
다. 어떻게 이곳에서 일을 해야하나 하고 걱정이 앞을 가렸다. 그러나 머뭇거릴 겨를도 없이 밀어 닥쳐
 서둘러야했던 사업은 굴, 해태 양식과 이를 위한 투석(投石)과 소형조선사업 등이었기에 우선 수산업협
동조합과 관련 업체를 방문하고 인사를 하며 기술협조를 구하였다.
 
   그러던 중 하루는 여름철 오후 늦은 시간에 개발계(契) 몇 분의 임원과 더불어 마을 앞 매점에 앉아
소금 안주에 바라소주를 마시다 취기가 일자 나는 먼저 결례를 하고 귀가하여 잠자리에 누웠다.
걱정이었다. ‘어떻게 하면 맡은 일을 잘 할 수 있을까.’ 궁리를 하다가 간신히 잠이 들었다. 아니 잠결
에 새찬 바람소리에 소낙비까지 오지 않은가. 잠이 깨었다. 태풍이었다. 해변의 돌담과 초가지붕은 다
무너지고 멀리 고기잡이 간 배는 풍랑에 어떻게 되었나, 걱정이 태산이었으나 비 내리는 캄캄한 밤중
이라 문밖을 나설 수조차 없었다. 새벽녁에 먼동이 트고 바람이 잠잠해지고서야 옷을 챙겨 입고 해변
으로 뛰쳐나갔다. 골목골목 뛰어다니며 살폈지만 다행히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지나친 기우(杞憂)였다.
안도의 한숨을 쉬고 바다 멀리 바라보았다.
 
  통통배 한 척이 돛을 달고 불을 밝혀 부락을 향해 오고 있지 않은가! 배 위에서 손을 흔들며 귀항하고
있는 사람은 부락의 평의원이었다. 밤새도록 겁 없이 바다와 싸우며 억척같이 일하여 고기잡이를 한 그
들은 승리의 기(旗)를 들고 다가왔다. 다행이었다. 정박을 하고는 나에게 웃으며“고기 한 마리 드릴까요”
하면서 갈치 한 마리를 손에 둘둘 말아서 나를 향하여 훌쩍 던져 주면서 하숙집에 가져가세요, 라고 했다.
가까이 다가가서 갈치를 잡아 쥐고는“감사합니다”라고 고마운 인사를 하였지만 마음속으로는 원망스러
웠다. 왜 던져주느냐, 하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말하지 못한채 하숙집 아주머니에게 드렸더니 그토록
반가워 할 수가 없었다. 해변에 살면서도 이렇게 큰놈은 보지 못했다고 했다. 그러나 섭섭한 마음은 풀리
지 않았다.‘생활양식의 차이다.’ 그래도 생각을 접고 우선 나 지도원이 해야 할 일을 생각했다.
 
   첫째가‘지역민 모두의 의식을 하나로 묶기 위한 친목 단합이었다.’그래서 먼저 그 지방 풍습에 밝은 개발
계장 이봉우씨의 주선에 따라 어둠 속 바다 횃불놀이 고기잡이를 하게되었다. 남녀 노소 함께 어울린 15명
의 부락민은 4인이 1조가 되어 바닷물에 첫 발을 내디뎠다. 그때 부녀회장의 소개로 지도기관의 임길자 선
생까지 초대되어 우리와 같은 조가 되어 각기 횃불과 창을 들고 바다 속을 살피며 고기잡이에 나섰다.
다행이‘고기도 눈이 있어 밝은 횃불이 있는 곳을 찾아오는 놈’을 한두 마리씩 창으로 잡기 시작했다. 문어,
오징어, 잡어들이 한 두 마리 잡히자 와아! 하는 환호성에 물길 깊은 줄 모르고  바다 속을 파고들자 끝내
 출렁이는 물결에 취해서 나도 넘어질 판에 나와 한 조가 되어 옆에 있던 처녀 임선생은“어지러워요” 하고
는 헤어나지 못하고 그만 그 자리에서 쓰러지고 말았다. 온 몸이 물 속에 잠겼다. 투명한 흰색 엷은 겉옷까
지 밀착된 알몸이 되었다.
  ‘바다 귀신은 그녀를 아름다운 인어공주로 알고 멀리 깊은 수궁으로 데려 가려고 했을까?’어서 구해야만
했다. 주위를 살폈지만 옆에서 구해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다급한 마음에 나는 얼른 부둥켜 안고 몸을
일으켜 힘겹게 바닷가 조용한 곳에 내려놓았지만 오들오들 떠는 모습은 보기마저 민망했다. 나의 능력으로
는 감당이 되지 않아 마침 나의 요청을 받고 급히 달려온 부녀회장에 아뢰자 바로 감싸고 자기 집으로 데려
가서 안정을 시켰다. 다음날 부녀회장은 나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주시기에 나는 더욱 고마워했다. 그리고
항상 밝은 표정의 그분은 내 편이 되어 주었다.  
   그러나 “바다는 품안에 놀던 고기를 빼앗기고 많은 사람이 흙탕물을 일구어 휘젓고 법석을 떨었지만
원망도 하소연도 하지 않았다. 그저 물결이 출렁일 뿐이었다.” 저 건너편 지평선에서 “바다는 또한 하늘과
손을 맞잡고, 깊은 산 계곡에서 갈래갈래 내려오는 맑은 물, 흙탕물을 좋다 싫다 가리지 않고 모두 받아 수
용하며 맑게 정화시켜 큰고기 작은 고기 청정 해초에다 배를 탄 사람들의 놀음까지 평화롭게 다스리는
모습은 자연 그대로였다.” 바다의 역할은 육지와는 또 다른 세계였다. 
 
   돼지를 기르던 한 노인은 8마리의 귀여운 새끼돼지가 제대로 자라지 못하고 4마리가 스러지고 나머지도
시름시름 했다. 안타까운 마음에 나를 보자마자 첫 인사도 없이 하는 소리가 ‘돼지새끼 한 마리 구하지 못
하는 놈이 무슨 지도자냐,’하며 야단을 치며 원망하지 않은가! 돈코레라 병이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마을마다 많은 사건 사고들이 걷잡을 수없이 일어났다. 그때마다 임선생은 나를 도우며 각종 많은 사업과
행사에 빠짐없이 참여하였다. 언제나 지혜를 모아 집집마다 거치른 남성들의 불협화음을 부녀회원을 통하
여 조화시켜 항상 나의 사업수행에 큰 도움을 주었다. 그래도 임선생은 자기 일이라고 하며 자신의 지도
실적에도 큰 보탬이 된다고 했다.
  이것이 “서로 돕고 살아가는 공동체생활의 상부 상조”라고나 할까? 그 외에도 단체 제주해녀 맞이, 후배
들 견습생까지 응접하며 바쁘게 움직일 때 나는 고향도(道)로 발령을 받았다. 그곳을 같이 가고 오게된
언양 지구를 맡은 손병환 동료(대구 카도릭대 독문과 교수로 옮김)를 통해서 우리의 전근 소식을 알게된
후에 임선생이 몸이 불편하다며 결근을 했다고 한다. 손형은 문병을 가자고 했다. 같이 갔었다. 임선생은
간신히 몸을 일으키며 몸살이라고 했다. 다행으로 생각하였어나 나보다는 외소하고 다정한 손선생이 그
여선생을 더 좋아하는 눈치다. 그러나 임선생은 눈길 한번 제대로 주지 않았다. 그래도 좋아하며 따랐다.
하지만 우리의 우정은 떨어 질 수없이 한 덩어리가 되었다.
 
  그 뒤 가꾸던 해변의 부락별 양식사업은 의외로 잘 되어 중심 소득원(源)이 되었으며, 생활환경은 몰라
보게 바뀌어서 해변의 추한 냄새는 간 곳 없이 흔적을 감추었고, 발전하는 도시화의 물결에 새로운 면모
를 찾게되어 지금은 그곳에 별장이라도 지어 살고싶은 곳으로 변했다. 게다가 전과는 달리 해운대 누리마
루(APEC 정상회의장) 해변에서 보는 남쪽 바다보다도 이스탄불 보스포루스 해협에서 일행과 양주를 들이
키며 지중해를 향해 흘러오는 흑해의 바닷물을 보는 광경 못지 않은 경관이 되었다.
  나는 이후 이곳 저곳으로 옮겨 다니며 수십 년이 지나고 이젠 머릿결이 반백이 되었으나 지금도 초임지
울산 해변에 얽힌 그날들의 사연이 마냥 그리워 진다
                                                                                                                                2014. 8.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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