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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떠돌이 이방인    
글쓴이 : 유시경    14-02-20 03:11    조회 : 6,520
 떠돌이 이방인
 
 무지의 소치이긴 하지만 나는 종교의 미학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인간이 절망에 빠졌을 때, 다만 실오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절대자에 기대고 싶어 한다는 정도밖에는 아는 바가 없다.
 죽음의 입김이 오래된 방문턱과 혈관을 수시로 넘나들 때서야 엄마는 비로소 신(神)을 찾았다. 철저하게 유교집안의 독자에게 시집온 엄마는 아마 네댓 평도 안 되는 단칸방의 어둠이 아픔보다 더 싫었을지도 모른다.
 절망보다 느리고 죽음보다 빠르게, 엄마의 신앙생활은 그렇게 눈부시게 찾아왔다. 고통 없는 내세의 행복을 부르짖으며 전도하고 다니던 어느 젊은 남자가 우리 집 앞을 지나다가 부엌문을 두드리게 된 거였다. 그의 손에는 사람들과 짐승들이 서로 어우러져 행복해하는, 매우 정교하게 그려진 얇은 책자가 성경책과 함께 들려있었다. 지금은 어떠한지 잘 모르겠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일부에서 사이비 종교라 지탄을 받는 단체였던 걸로 기억한다. 나는 여기서 일개 종교집단에 앞서 단 한 사람의 떠돌이 순례자, 즉 병들고 가난한 여인에게 실낱같은 용기와 희망을 불어넣어 주던 그 이방인에 대해 이야기하려 한다. 자그만 체구를 가진 그 남자의 온화한 표정을 나는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사내는 단 하루도 빠짐없이 엄마를 찾아왔다. 두 사람은 햇볕 한 점 들지 않는 어둔 쪽방에 마주앉아 기도하고 노래를 불렀다. 그는 항시 일정한 시간에 ‘엄마의 병실’에 들렀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엄마를 위해 기도를 해 주었다. 어떠한 금전적 요구도 하지 않고 한 끼의 밥도 바라지 않았다.
 그처럼 생기 있고 환희에 넘치는 병든 여인의 표정이라니! 나는 방 한 귀퉁이에 앉아 우습지도 않은 그 광경을 지켜보곤 하였다. 나무토막처럼 뻣뻣하고 비쩍 마른 엄마가 곧게 일어나 무릎을 꿇고는 그의 운율에 맞춰 찬송가를 따라 부르고 있었다. 그리고 통성기도를 하는 것이다.
 “하늘에 계시는….”
 “아버지이….”
 엄마는 무슨 뜻인지 알아듣지 못할 소리로 웅얼웅얼하며 아버지를 불렀다. 나는 왜 엄마가 아버지를 그토록 애타게 부르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몸이 아프니 돌아가신 부모님을 찾는 것이라 생각하였다. 엄마는 숨이 찰 때마다 “아이고 아버지이, 아이고 아버지이.” 하며 습관처럼 아버지를 찾았다. 남자와 엄마가 찬송가를 부르는 동안 어린 내 가슴 속엔 “며칠 후우- 며칠 후, 요단강 건너가 만나리이-” 라는 후렴구가 각인되어 주책없이 흘러나오는 것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 일이 터지고야 말았다. 담요 밑에 숨겨놨던 엄마의 성경책을 아빠가 발견한 것이다. 두툼한 책의 낱장들이 공중으로 치솟았다가 부엌 바닥으로 곤두박질칠 때 겁에 질린 나는 누구의 편도 돼주지 못했다.
 아빠의 무서운 언질에도 그 청년은 또다시 찾아와 기도를 해주었다. 정말 미안하다고, 아무 것도 드릴 게 없어서 어떻게 하느냐고 엄마는 남자에게 용서를 구했다. 그는 그런 말씀 하지 말라며 편안하게 마음을 가지라고 매번 위로를 해주었다.
 엄마와 사별한 뒤에도 우리 식구는 해마다 셋방을 옮겨갔지만, 그는 끈질기게 우리 남매를 찾아와 전도를 하였다. 지난날의 엄마를 생각해서 믿음을 가지라고 설득을 하였다. 신앙을 가지면 하늘이 우릴 도우실 거라 말해 주었다. 남자의 미소는 정말 다사로웠다.
 이젠 엄마도 없고 아빠도 싫어하시니, 다시는 찾아오지 않는 게 좋겠다며 오빠가 단호하게 쏘아붙였다. 그는 씁쓸한 표정으로 뒤돌아서 나갔고 이후로 얼굴을 대할 수 없었다. 간혹 길을 가다 다른 집 대문을 두드리는 그 남자의 뒷모습을 두어 차례 보았을 뿐이다.
 지금껏 나는 아무런 종교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렇다고 종교에 대해 무관심한 것도 아니다. 학창시절, 친구들 따라 교회에 가서 달걀도 얻어먹고 절에 가서 절밥도 얻어먹으며 때로 점집에 찾아가 운세를 보기도 하였지만, 어떤 뚜렷한 감흥도 얻질 못한 채 발걸음을 돌리고 말았다. 불행하게도 나는, 아직은 어떠한 종교관에도 치우치고 싶은 생각이 없다.
 
 -나는 고뇌에 찬 이 세상을 여행하는 초라한 방랑자라네. 하지만 내가 가는 저 환한 세상에는 질병도 고생도 위험도 없다네. 나는 어머니를 만나러 그 곳으로 가려네. 더 이상 방랑하지 않는 그 곳으로. -
 
 1870년대 뉴잉글랜드로 건너온 영국 개척민들의 영가 ‘Wayfaring Stranger’를 듣는다. 죽음을 눈앞에 둔 엄마가 부르던 찬송가 구절처럼, 요르단 강을 건너 언젠간 엄마를 만나러 그곳에 가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종교에 심취하기에 앞서 사람을 먼저 믿고 싶다. 그가 사이비든 떠돌이든. 나는 또 나를 믿고 싶다. 우리가 절대자로부터 구원을 얻고자 하기 전에 사람의 따스함을 먼저 믿고 사는 세상이었으면 좋겠다. 6년여 세월 병마와 싸우다 눈감은 엄마를 아무런 대가 없이 영원의 세상으로 인도했다면, 그 나그네야말로 엄마의 진정한 구원자는 아니었을까.
 
 - 군포시민문학 2013년 겨울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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