떫은 맛을 빼는 비법은 오직 '인내'였다. 햇볕이 많이 드는 옹기 물에 담가두는 것이 예사였다. 소금을 조금 넣으면 더 효과적이었다. 내가 썼던 다른 방법은 물이 찬 논의 찰진 흙 겉 표면 부분에 감을 묻어 우려내는 방식이었다. 보물을 숨기듯 감을 넣어두고는 그 위에 작은 나무 막대 두 개를 보물 위치의 'X'자처럼 꽂아 표식을 해두었다. 등하굣길마다 막대가 무사한지 살피는 마음은 늘 조마조마했다. 며칠 뒤, 흙냄새 사이로 단내가 배어 나올 즈음 감을 꺼내 도랑물에 씻어 한 입 베어 물면 기다림이 빚어낸 결실이 온종일 마음을 채웠다. 동네 친구들이 몰래 가로채 가지 않았을까 했던 걱정까지 달콤하게 삼키는 순간이었다.
여름이 가고 가을바람이 감나무 잎을 흔들 때면, 우리의 시간과 추억도 함께 너울거렸다. 끝을 쪼갠 대나무 장대를 하늘 높이 올려 가지를 비틀어 감을 땄다. 상처 입는 감과 꺾여나가는 가지가 안쓰러워 나무에 올랐다가 낙상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감나무는 겉보기보다 속이 물러 쉬이 부러지기 때문이다. 망태기도 없이 욕심껏 딴 감들을 바지 주머니며 상의 자락에 가득 담아오면 옷에는 지워지지 않는 짙은 감물이 들었다. 어머니의 꾸지람은 늘 따라왔지만 그 물든 옷만큼이나 우리들의 가을은 붉게 익어갔다.
늦가을 서리가 내릴 때면 어머니는 식구들을 불러 모아 감을 깎으셨다. 처마 밑에 매달린 곶감들이 하얀 분칠을 하고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은 겨울을 마중하는 가을의 고운 춤사위 같았다. 어머니는 창고 천장에 곶감을 걸어두고 오가는 이웃들과 정을 나누셨다. 몰래 창고 문을 빼꼼히 열고 들어가 하나 씩 빼먹던 그 맛은 세상 어떤 사탕보다 달았다. 오죽하면 호랑이보다 곶감이 더 무섭다 했을까. 아이의 울음을 뚝 그치게 했다는 그 마법 같은 맛이 내 추억 한 켠에 여태 머물러 있다.
세월이 흘러 현대인의 빠른 발걸음은 더 이상 고향의 감나무 앞에서 멈추지 않는다.감을 애정의 눈으로 바라보는 사람도, 따는 사람도 잘 보이지 않는다. 감 밭을 지날 때면 차가운 이슬을 맞으며 감을 줍던 어린 날의 내가 보인다. 물끄러미 감나무에 열린 감을 바라본다. 빗발 맞으며 살던 시절이 지나면 어느 순간 달콤함이 오는 것도, 새파란 풋내기가 부끄러운 자신에 얼굴을 붉히는 인격체로 변하는 것도 감나무가 던지는 깨달음 일지도 모른다. 예전엔 까치를 위해 남겨두던 마음이 ‘까치밥’이었다면 이제는 누구의 손길도 닿지 않아 절로 까치밥이 되어버린 감들이 지천이다. 배려가 아닌 방치가 되어버린 그 풍경이 못내 쓸쓸하다.
이제 감나무들은 저무는 햇살 속에 희미해 진 고적한 사진첩처럼 서 있을 뿐이다.아침 잠을 깨우는 어머니가 멀찌감치 서 있는 상상 속으로 시간 여행도 한다. 감나무 아래서 뛰놀던 동네 아이들의 웃음소리까지도 들린다. 그 시절의 감은 여전히 겨울 홍시가 되어 시골집 감나무에 매달려 있다. 행여 추억이 애잔한 그림자 되어 다가오면 홀로 나훈아의 <홍시>를 흥얼거린다.
생각이 난다
홍시가 열리면
울 엄마가 생각이 난다.
추억이 또 가슴을 후빈다. 잘 익은 홍시처럼 내 그리움도 툭 터질 듯 붉게 물들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