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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I와 동행하는 수필 세계 (2026년 1월호 기고문)    
글쓴이 : 박용호    26-02-15 00:52    조회 : 5


 

AI와 동행하는 수필 세계

 

  스마트폰에서 음성을 문자로 바꾸는 STT(Speech To Text), 사진 속 글자를 읽어내는 ITT(Image To Text)를 익힌 것이 불과 얼마 전이다. 시니어로서 이 정도면 꽤 따라가고 있다고 자부했다. 그런데 202211, 'ChatGPT'라는 것이 세상에 나왔다.


 처음에는 또 하나의 검색 도구쯤으로 여겼다. 그러나 직접 대화를 나눠보고는 얼어붙었다. "19세기 조선 후기 실학자들의 개혁 사상을 현대 한국 사회에 적용한다면?"이라고 물었다. 몇 초 만에 정연한 답이 흘러나왔다. 역사적 맥락, 현대적 해석, 적용 가능성까지. 이건 검색이 아니었다. 사유였다.


 기계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손끝이 차가워졌다. 내 지적 작업의 토대가 흔들리는 느낌이었다. 공상영화에서나 보던 일이 내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이게 시작이라면 끝은 어디일까. 두려움과 호기심이 뒤섞였다.


 (Zoom)으로 진행되는 AI 유료 강좌에 등록했다. 강사는 'Prompt(프롬프트)', 'Hallucination(환각)' 같은 용어를 쏟아냈다. 알아듣지 못하는 단어가 수두룩했다. 노트에 받아 적으며 열심히 따라갔다.


 "호숫가 벤치에 앉은 젊은 남녀가 석양을 바라보는 장면을 그려 줘. 인상주의 화풍으로." 엔터를 누르자 몇 초 만에 그림이 나타났다. 황홀했다. 다시 지시를 추가했다. "여자의 머리에 모자를 씌워 줘. 남자는 기타를 들고 있게." 그림이 수정되었다. 나는 화가도, 디자이너도 아닌데 작품을 '지휘'하고 있었다.


 AI 세계는 춘추전국시대로 진입했다. ChatGPT를 익히는 사이 Copilot, Claude, Gemini가 쏟아져 나왔다. 200조 원을 쏟아붓겠다는 아마존과 애플까지 뛰어들었다. 20245월에는 ChatGPT-4o가 나왔다. 음성, 영상, 텍스트를 실시간으로 통합 처리하며 사람과 농담까지 주고받았다. 카메라로 상대의 표정을 읽고 감정 상태를 파악하는 수준이었다.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는 더 나아갔다. 그가 만든 'Neuralink'는 인간의 뇌에 칩을 이식한 장애인이 생각 만으로 기계를 움직이는 실험에 성공했다. FDA 승인까지 받았다. 블로그에 "어떤 미래가 전개될지 두렵기도 하다"라는 글을 올렸다. 두려움은 솔직한 감정이었다.


 그러나 세상은 이미 AI와 함께 살고 있었다. 젊은이들은 고민을 AI에 털어놓고 조언을 구했다. 만족스럽다고 했다. 대학생들은 과제를 AI로 작성했고, 직장인들은 보고서를 AI와 함께 썼다. 어느 로펌은 변호사 10여 명을 해고하고 AI를 들였다. 일자리를 잃을 직종 순위를 예측하는 기사가 연일 쏟아졌다.


 바로 'AI 글쓰기' 강좌를 신청했다. 2023년 말, 자전 에세뜨겁게 전진하고 쿨하게 돌아서를 냈다. 6개월이 걸렸다. 하루 종일 모니터를 보며 쓰다 보니 시력이 급격히 나빠졌다. 안과를 들락거렸다. 그때 AI 글쓰기를 알았더라면 2개월이면 충분했을 것이다.  씁쓸한 생각이 들었다.


 지금 몇 가지 AI앱을 쓴다. 유료도 쓰고 무료 버전도 활용하고 있다. 쓴 글을 올리고 "수필 전문가 입장에서 이 글을 평가해 줘"라고 지시하면 구조, 문장, 감정선까지 짚어준다. 마음에 안 들면 "이 부분은 더 구체적으로, 저 문장은 간결하게" 추가 지시를 한다. 백 프로 마음에 들게 하지 못하기 때문에 본인이 결국 다듬기를 하지만 글쓰기 보조수 겸 스승 역으로 이용한다.


 여기에는 함정이 있다. 내가 AI에 올린 글은 그 순간부터 AI의 데이터베이스에 편입된다. 나만의 독창적 표현이라 여긴 것이 순식간에 보편적 자산이 되는 것이다. 누군가 비슷한 주제로 AI에게 물으면 내 표현이 변형되어 나올 수 있다.


 생각해보면 모든 창작이 그렇지 않았던가. 작가는 선배 작가를 읽으며 배운다. 모방하고 응용하며 자기 색깔을 만든다. AI도 같은 방식이다. 다만 참고할 자료가 인류가 쌓아 올린 지식의 바벨탑 전체라는 점이 다를 뿐이다. 그렇다면 붓과 먹을 고집하며 워드프로세서를 거부하는 것처럼, 전통 방식만 고수해야 하는가.


 2024년 일본 문단에서 흥미로운 일이 벌어졌다. '구단 리에'라는 신인 작가가 로 아쿠타가와상을 받았다. 일본 최고 권위의 신인문학상이다. 수상 소감에서 그는 솔직히 고백했다. "AI의 도움을 5% 정도 받았습니다." 문단은 술렁였지만 결국 새로운 창작 방식으로 인정했다. AI를 부정한 도구로 보던 시각이 바뀐 순간이었다.


 요즘 서점에는 AI로 쓴 책이 쏟아진다. 몇 개월 만에 여러 권을 냈다고 공공연히 말하는 작가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전통 방식으로만 쓴 글이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까. 더 중요한 질문도 있다. 응모작을 심사하는 위원이 AI 글쓰기를 모른다면 제대로 된 심사가 가능할까. 최근 한 언론 단체의 심사 위원장이 심사 위원들의 대화를 알아듣지 못해 당혹스러워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AI 글쓰기 용어가 낯설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작가는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

AI는 기억과 통계로 글을 쓴다. 정교하고 논리적이다. 그러나 사람은 상처와 기쁨, 시간 속 추억의 무게로 쓴다. 아직은 깊이와 문학적 온도에서 우위에 있다. AI가 흉내 내기 어려운 것은 '낯설게 하기', 역설, 반전 등이다. 논리와 데이터 만으로는 포착할 수 없는 인간 내면의 모순과 비약이다. 작가는 바로 이 지점을 파고들어야 한다.


 그러나 AI를 완전히 외면해서도 안 된다. 리에 작가처럼 적절히 활용하는 것이 현명하다. 체력과 시력을 아끼는 길이기도 하다. 핵심은 80~90%를 내가 직접 쓰는 것이다. 나머지 10~20%AI의 도움을 받는다. 문단의 연결, 구조 조정, 모순 확인 같은 기술적 부분에서 말이다. 자기 바탕 글 없이 AI만으로 쓴 글은 격식은 있을지 몰라도 생명력은 없다.


 AI 시대의 적응이란 두려움을 호기심으로 바꾸는 일이다. 새로운 도구를 받아들이되 자신을 잃지 않는 것이다. 글쓰기는 더 이상 혼자 맛보는 고독이 아니다. 인간과 기계 지능이 나누는 새로운 예술의 대화다. 이 대화에서 멀어질수록 젊은 세대와의 교감도 멀어진다.


 변화에 대해 두려움을 갖는 것 보다 도전하여 본인의 것으로 소화해 내는 것이 중요하다. 새로움에 접근하고 활용하는 사람을 손가락질 하고 머물러 있는 사이에 경쟁자는 저만치 앞서 가 있을 것이다. 호기심을 가지고 시대적 변화를 올라타는 변신이 절실히 요구되는 때보인.

 

** 글은 한국산문2026년 1월호 AI 시대, 수필 쓰기’ 편에 기고된 본인의 글을 인용한 것임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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