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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경사 가는 길    
글쓴이 : 오윤정    15-02-23 22:13    조회 : 7,142
 
 
 
석경사 가는 길 
 
 
                                                         
                                                          오  윤  정
 
 
 
 
 일주문을 지나 가쁜 숨 몰아쉬며 산사에 다다른다. 마침 불어오는 바람에 춤을 추는 풍경소리가 청아하다.  큰스님 방 앞에 하얀 고무신 하나가 놓여있을 뿐, 절 마당엔 가을햇살만 한가로이 노닐고 있다. 작은 스님도 절일을 돕는 보살도 출타중인 듯하다. 부처님께 예를 올릴 요량으로 극락전의 문고리를 잡는다. 눅눅한 공기와 묵은 향내가 어우러져 어둠 속에 배어 있다. 삐걱거리는 법당마루를 밟고 아미타불 앞에 다가가 향 하나를 피워 올린다. 108배를 올리고 뒷걸음쳐 법당을 나온다. 파란 하늘을 머리에 인 관음상의 미소가 오늘 따라 한결 부드럽다.
 
 삼 년 전 늦여름 강원도 원주 외곽에 있는 석경사를 처음 찾았다. 조용한 산사를 찾던 중 지인으로부터 소개받은 사찰이다. 소초면 오르막 길에서 교황1리 길로 들어서면 작은 마을이 나온다. 십여 채 정도의 농가와 너른 논밭, 500년 된 보호수 느티나무가 마을을 지키고 있다. 논밭과 복숭아 농사가 마을사람들의 주업이다. 몇 해 전 이웃마을까지 침범했던 구제역조차 비켜간 평화로운 마을이다.
 인기척 없는 마을을 지나자 산 아래 일주문이 나타났다. 일주문 옆 공터에 차를 세우고 나무 그늘이 드리운 언덕길에 올랐다. 언덕길 아래로 개울물 흐르는 소리가 들렸다. 5분여 언덕을 오르자 공사 중인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장맛비에 패이고 주저앉은 길을 보수하는 중인 듯했다. 동행한 이가 합장을 하며 인사를 했다. 그중 건설현장의 작업복을 입은 깡마르고 작은 체구의 노인이 큰스님이라고 알려주었다.
 언덕길은 너른 절 마당으로 이어졌다. 극락전과 나지막한 산을 등지고 선 관음상, 그리고 서너 채의 요사채. 작지 않은 규모의 사찰은 정갈했다. 속세를 벗어난 고요함이 왠지 모를 편안함을 안겨 주었다. 해 질 녁 우리 일행이 절을 떠날 때까지 큰스님은 일손을 놓지 못하셨다. 그 후에도 몇 차례 절을 찾았지만 큰스님을 친견하지 못했다. 동안거를 앞둔 큰스님은 가을걷이와 겨울 땔감 준비에 여념이 없으셨다. 동안거 100일동안 스님들은 절 울타리를 벗어나지 않고 기도에 정진한다.
 법당의 묵은 창호지를 떼어내고 새 창호지를 바르는 가을이 지나가고 겨울이 시작됐다. 비로소 동안거에 들어가 일손을 놓으신 큰스님을 친견할 수 있었다. 삼배(三拜)의 예를 만류하던 노스님은 일배만 하라며 맞절을 하셨다. 법문을 청하자, 무엇을 구하려 기도하지 말고 자신의 불성(佛性)을 찾으라셨다. 애써 멀리 있는 절을 찾지 말고 일주일에 한 번 가까이 있는 교회나 성당, 절을 찾아 자신을 돌아보고 반성하며 살라고 하셨다. 오래 전 가톨릭교회에서 영세를 받았으나 지금은 이곳저곳 기웃대는 나를 꿰뚫고 계신 것은 아닌가 싶었다.
 
 큰스님에게는 수행자의 근엄함보다 자애가 넘친다. 미소 가득한 주름진 얼굴은 인자한 농부의 모습 같다. 산사의 매서운 겨울 추위에도 반팔을 입고 계신 스님은 50여 년간 하루 두 번 쌀가루 생식을 해오셨다. 어쩌다 마을 사람들이 스님을 위해 가져오는 두부를 조금씩 드신다고 한다. 마을 사람들은 자신의 소가 해산(解産)을 해도 스님을 찾는다. 절 안팎의 크고 작은 공사와 농사, 마을의 일까지 해결하시는 스님의 힘은 불가사의다. 독경 소리는 법당을 벗어나 너른 절 마당을 쩌렁쩌렁 울린다. 그곳에 머무신지 40여 해 되었다는 스님의 법랍(法臘)도 속세의 나이도 짐작만 할 뿐이다.
 대중공양실 벽면에는 1년에 네 번 절을 찾는 날이 쓰여 있다. 동안거 입제일과 해제일, 석가탄신일과 조상들의 제를 올리는 백중이다. 1년 내내 연중행사와 기도가 있는 여느 절과는 많이 다르다. 평상시 말 그대로 절간인 곳이 그날은 각지에서 온 사람들로 넘쳐난다. 주말이면 제 고향 집을 찾듯 가족과 다녀가는 이들도 있다. 저마다 절을 찾은 연유는 다를 것이다. 바람을 이루려고 찾은 사람도 , 미망(迷妄)에서 벗어나고자 찾는 이도 있을 것이다. 모두 삶의 무게가 버거운 중생들이다.
 나는 부모님 영가를 이곳에 모셨다. 후일 부모님의 제사가 늘 마음 쓰였던 나는 짐을 벗은 듯 한결 마음이 가볍다. 별스럽게 깔끔했던 부모님도 좋아하실 것 같았다.
 
 마음이 신산한 날에는 석경사를 찾는다. 부모님 곁이 그리워도 다녀간다. 여름이면 요사채 툇마루에 앉아 삶은 옥수수 한 자루에 마음의 배를 불리고, 겨울이면 군불 들인 아랫목에 시름을 내려놓고 간다. 석경사는 지친 내게 어깨를 내어주고 일렁이는 마음을 재워주는 내 마음의 쉼터다. 내 안의 부처를 찾아 헤매는 나의 길라잡이다.
 오늘도 나는 온기 품은 가슴으로 절을 나선다. 차 한 잔 내어주지 못해 큰스님은 못내 서운한 눈빛이다. 내게 깨달음의 길은 멀다. 그러나 위안의 길은 가까이 있다.
 
 
 
 
 
 
(2015년 1월호 한국산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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