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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뒷모습    
글쓴이 : 박병환    15-03-26 15:39    조회 : 4,945
                      뒷모습
 
 한 사람의 현재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은 앞모습이다. 하지만 그 모습만으로는 그 사람이 지금 어디를 가고 어떤 말을 하려는지 종잡을 수가 없다. 한 인간이 내게 완벽하게 노출되었음에도 그 마음을 읽을 수 없다는 낭패감에 빠진다. 그래서 앞모습을 마주하고 있는 나는, 상대를 의식해 어느 정도의 가식적인 예의를 추스르게 된다. 그렇기에 나는 그 앞모습을 바라볼 때면 힘이 든다.
  반면 사람의 뒷모습은 누구나 최소한 중립적으로 보게 한다. 그것은 권력이 있든 없든, 돈이 많든 적든, 삶의 여정을 말없이 수행하는 구도자처럼 생각되기 때문이다. 또한, 측은지심이 생겨 상대가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지만, 동질감이 느껴져 저잣거리 삶의 전쟁을 무사히 마치고 돌아오라고 말해 주고 싶다.
 이러한 생각은 사물을 볼 때에도 느낀다. 퇴근하고 아파트에 들어서면 주차장을 지난다. 주차된 차들에 초점을 맞추면 앞모습 차보다는, 뒷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차들의 모습이 더 포근하게 느껴진다. 그들도 누군가의 삶의 여정에 동참하였고 그로 말미암아 존재 이유를 느꼈으리라는 믿음 때문이다. 그러기에 지나치는 순간만큼은 그들도 삶의 임무를 잘 마치고 돌아온 친구처럼 나는 느낀다.
  나에게 뒷모습은 어떤 의미가 있었기에 이렇게 집착하는 걸까? 뒷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인간이란 불완전의 한계를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 주고, 그러한 삶의 흔적을 사진첩으로 만들어 내게 살짝 내민 것 같기 때문이다. 노자의 천지불인(天地不仁)’ 말처럼 천지는 인자함을 드러내기도 하지만 때가 되면 어김없이 제 갈 길을 가는 것처럼 이 말과 똑 닮은 사회에서 사람은 태어났으므로 살아가야 한다. 살아가는 역정을 생각해 보면 누구나 희???락을 경험한다는 면에서 대동소이하다. 그러기에 뒷모습은 불완전한 인간이지만 서로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야한다는 맹자의 차마 어찌 하지 못하는 마음인 불인지심(不忍之心)’이 절로 이해되고 감응되어 사람들에게 응원군이 되고 싶다.
 사람들이 대부분 농사를 짓고 살 때 사람의 뒷모습은 매일 보는 일상사였다. 그 모습 중 특히 가족들은 아침이 되면 농토로 가서 일해야 하므로 부모의 뒷모습이나 자식들의 뒷모습을 자주 접하며 살았다. 그래서 마을 앞에 있는 우물의 깊이처럼 가슴의 아량도 깊어져 말을 하지 않아도 서로 보듬었다. 삽을 들고 가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보며 삶은 성실하고 근면해야 함을 배웠고 손수레를 끌고 가는 자식의 뒷모습을 보며 아버지는 자식의 앞날에 보탬이 되어주어야 한다는 정이 싹텄다. 그런데 산업사회를 지나 정보화 사회가 된 지금, 먼발치에서 가족을 지긋이 바라보는 마음의 여유와 사이 공간은 없고 또한, 도시는 점점 공룡화되어 좁은 인도에서 마주치는 상대는 그저 스쳐 지나는 바람처럼 자기가 가고 싶은 곳만 가느라 뒷모습에서 느끼는 인간의 동질감을 경험하지 못한다.
 1988년에 나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장 잊을 수 없는 사람의 뒷모습을 보았다. 그때 나는 수도방위사령부 예하부대에서 소대장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어느 날 독신 장교 숙소인 'BOQ'에서 숙식을 하고 아침에 중대본부에 출근했는데 중대가 비상이 걸렸다. 전날 중대 일직사령이었던 황 중위가 근무하다 심야에 '술집'에 갔는데 상급부대인 연대 일직사령이 순찰을 나와 적발이 되었다. 보고를 접한 대대장은 직접 중대본부에 와서 중대본부에 도열해 있는 황 중위에게 "황 중위! 너도 네 어머니가 너를 낳으셨다고 미역국을 드셨겠지!", 이 한마디만 하면서 대대본부를 향해 걸어 올라갔다. 중대본부에 도열해 있던 나는 중대 막사 앞으로 나와 대대본부가 100m밖에 떨어지지 않아 걸어가는 대대장의 뒷모습은 여느 때 사람들의 보여주던 일반적인 뒷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그때 터벅터벅 걸어가는 대대장의 뒷모습은 따뜻한 정도 묻어났지만, 세대 간 삶을 이어주는 끈의 모습과 삶의 의지, 태도, 자세를 동시에 보여 주었다. 그 당시 군 특성상 그렇게 간단명료하게 사건을 처리하는 건 처음 보는 모습이었지만 내가 만약 상관이 되면 꼭 그렇게 모든 걸 포용하면서도 긍정의 의지를 보여 주고 싶었던 이상적인 지휘였기 때문이리라. 이해할 수 없는 그런 상황에서 수많은 말을 하고 싶고 화를 드러내고 싶었겠지만, 모든 말을 아낀 채 걸어가는 뒷모습을 통해 그래. 후배 장교들아! 군인의 길이란 이런 것이다, 가고 싶지 않고, 하고 싶지 않아도 묵묵히 주어진 길을 가야 하는 거야. 이것이 군인이 가야 할 길이고 인생인 거야.’라고 무언의 가르침을 주었다. 사람의 뒷모습에 그 사람의 진실이 담겼다는 내 나름대로 진리가 내 마음에 각인되었다.
 이런 소중한 기억을 마음에 간직하고 있는 나는, 나의 뒷모습이 주위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일까? 이제는 좀 더 상대를 이해하는 배려심을 키워야겠다. 남의 말을 듣는 것은 생각처럼 쉽지가 않다. 사실은 거의 고행에 가깝다. 그러나 살아가면서 인내와 의지를 갖추고서 남의 말을 듣는 태도를 보여야겠다. 상대의 일반적인 주장이라도 그의 말을 경청하고 이해해주며 나의 행동을 되돌아보는 노력을 해야겠다
 내일은 연식(年式)이 된 남자들끼리 들판의 정자로 나가 볼 생각이다. 약간의 술과 안주를 들고 정자에 앉아 누군가 삶의 느낌을 이야기하면 그의 말에 호응해 주어야겠다. 그리하여 인생의 동지를 느껴볼 계획이다. 그리고 헤어질 무렵 뒤에서 걸어가며 그들의 뒷모습을 꼭 보아야겠다. 말없이 삶의 여정을 수행하는 구도자와 같은 그들의 뒷모습에서 그들과 나는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벗이 되고 일상의 지친 뒤안길 같은 그들의 뒷모습을 보며 세상살이에서 느끼는 처연함과 한편으론 의지의 표징도 내포하기에 끈끈한 삶의 동반자로서 연대의식을 가져 봐야겠다. 그리고 그 모습을 내 눈의 사진첩에 코팅하여 사람들을 이해하는 도덕의 잣대로 삼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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