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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명 : 김미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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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빈센트, 당신    
글쓴이 : 김미원    15-04-15 17:15    조회 : 6,425

빈센트, 

 5년 전 파리 근교 오베르 쉬르 우와즈(Auvers Sur Oies)에서 당신을 만난 후, 아니 그 전부터 당신은 내 안에 들어와 있었어요. 빈센트, 당신을 생각하면 마음이 저리고 먹먹해요. 하여 이번 남프랑스 아를르(Arles)로 당신을 만나러 가는 여정이 기쁘지만은 않았답니다. 생 레미 요양소와 정신병원에서 당신을 만나야하기 때문이지요.


 37년 짧은 생애를 고단하게 살다 간 빈센트, 당신,

 사산되었던 형의 이름을 그대로 물려받아 출생부터 불행의 복선을 안고 있었던 사람, 그림을 업으로 삼은 10년 동안 2천여 점의 그림을 그렸으나 한 점의 작품만 팔렸다고 전해지는 화가, 팔리지 않는 그림을 둘 곳이 없어 철제 침대 밑에 쌓아두었다는 화가, 하루 종일 그림을 그리다 저녁이면 카페에서 독한 압상트 주(酒)를 마시며 외로움을 달랬던 사람, 끝없이 펼쳐진 광활한 밀밭에서 권총으로 가슴을 겨눴지만 그마저 실패해 기어서 집으로 돌아와 이틀 후에야 철제 침상에서 세상을 하직한 사람. 고향 네델란드로 돌아가지 못하고 오베르 쉬르 우아즈에 동생 테오와 벗하며 묻힌 사람, 빈센트 반 고흐, 당신.

 목사인 아버지를 이어 가난한 사람들에게 성경을 전하고 싶었던 당신은 전도사 시절 변변찮은 월급마저 광부들에게 나눠주고 누더기차림으로 다녔지요. 사람들은 그런 당신을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았고 결국 브뤼셀 복음전도협회에서는 희생과 열정이 지나치다며 전도사 자격을 박탈하고 말았지요. 당신의 첫 번째 좌절이었을까요. ‘가지 않은 길’ 중 하나였을까요. 아니 어쩌면 ‘가지 못한 길’이었겠네요.

 무일푼 신세로 그림을 그리던 당신은 28살 때 임신을 한 채 거리를 헤매고 다니는 알코올 중독자 시엔이라는 창녀를 만나지요. 늘어진 젖가슴, 튀어나온 배, 우는 듯 얼굴을 묻고 딱딱한 의자에 앉아 있는 시엔을 그리고 당신은  <슬픔(Sorrow)>이라는 제목을 붙였어요. 약한 사람, 소외자, 소수자에 천성적으로 마음이 가는 당신을 느낄 수 있어요. 37년 생애동안 시엔과의 20개월이 여자와의 유일한 사랑이었다지요. 그나마도 시엔의 어머니까지 무능한 화가와의 동거를 반대해 다시 혼자가 되고 말았지요.

 ‘집에 함부로 들여 놓을 수 없는 물에 젖은 개’와 같은 당신을 유일하게 이해한 동생 테오가 없었다면 당신은 마음 붙일 곳이 없었겠지요. 그게 지상에서 신이 허락한 유일한 복이었나 봅니다. 테오는 화상(畵商)을 하며 형을 평생 돌보았지요. 당신이 파리에 머물 때 막 결혼한 아내와 함께 좁은 아파트에서 형과 같이 살 정도로요. 참 아름다운 형제애입니다. 생각하면 테오의 아내 요한나도 꽤 인정스런 여자였어요.

 알퐁스 도데의 순정한 소설을 좋아했던 당신은 프로방스를 동경하였던가요? 2년여의 파리 생활을 정리하고 남프랑스의 따뜻한 햇빛, 청명하고 맑은 하늘, 아름다운 자연을 찾아 아를르로 가지요. 나도 양버짐 나무, 사이프러스, 개양귀비, 노란 유채꽃이 맑은 하늘과 어우러진 그곳에서 한 일 년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을 정도였어요. 당신은 아를르의 풍경을 미친 듯이 화폭에 담았지요. 오직 그림을 그릴 때만이 자신을 찾을 수 있는 것처럼.

 드디어 가슴 졸이며 당신이 통원 치료를 했던 아를르 생 레미 요양소에 가보았어요. 수녀원에서 운영하는 요양소는 당신이 그린 그림과 놀랍게 닮아 있어 신기한 느낌이 들었어요. 요양소 중정 마당의 올리브 나무는 베어지고 없더군요. 우울하고 불안한 느낌의 환자들, 소실점에 가 닿으면 죽음으로 들어갈 것만 같이 여겨지는 긴 복도... 간질 발작이 반복될수록 사이프러스 나무는 휘어지고 구름은 춤을 추었어요.

 마음을 준 고갱과의 우정에 금이 가자 당신은 자신의 귀를 자르는 광기를 보였지요. 그 결과로 생 레미 병원에 입원을 해야 했어요. 테오는 당신을 병원 독방에 입원시켰지요. 입구에서부터 병원 건물까지 이어지는 50여 미터 길에는 당신이 그린 그림들과 동상이 도열해 있었습니다. 당신의 자화상 앞에서 오래 머물렀어요. 사진을 한 장 박았지요. 바로 몇 발자국 앞에 청동조각이 있더군요. 여전히 당신은 말라있고 눈은 형형하고 힘없이 늘어뜨린 양손엔 해바라기가 들려있었습니다.

 가로 3미터, 세로 3미터 정도의 당신이 머물던 정방형 방에 들어가니 철제 침대, 밀짚의자, 벽에 걸린 그린 두 점이 보였어요. 그런데 자세히 보니 침대 머리에 베개가 두 개 있더군요. 당신의 외로움이 훅 끼쳐왔습니다. 이 방 건너 당신을 묶어 목욕을 시켰을 욕조가 보이네요. 수녀가 남자 몸을 보지 않기 위해 욕조위에 댄 나무판과 목욕 중 튀어나가지 못하게 연결한 쇠줄과 자물쇠가 보통 욕조와 달랐어요.

 우울한 기분으로 고개를 숙인 채 당신의 체취를 느낄 수 있는 <밤의 카페 테라스> 무대를 찾아갔지요. 카페 앞에는 당신의 그림이 놓여있더군요. 점심 식사 시간이 지나 그런지 사람들 몇이 여유롭게 커피와 맥주를 마시고 있었습니다. 양버짐 나무에 비스듬히 기대 카페를 바라보며 남프랑스의 온화한 밤 기운을 느껴보려 눈을 감았습니다. 밤이면 노란 벽이 불빛을 받아 온통 주황색으로 변하는 카페에서 행복한 표정의 사람들 틈으로 싸구려 압상트를 마시는 당신이 보였어요. 밤이 깊어질수록, 사람들이 모여들수록 외로움은 더욱 깊어졌겠지요.

 1890년 2월, 테오가 아들을 낳았다는 편지가 생 레미 병원에 도착했습니다. 당신에게 조카가 생긴거지요. 테오는 ‘아이가 형처럼 끈기와 용기를 가졌으면 좋겠다’ 며 당신의 이름을 붙여주었어요. 당신은 조카에게 줄 선물로 <꽃 핀 아몬드 나뭇가지>를 그렸습니다. 푸른 빛이 도는 그림 속 하늘은 참으로 평안한 느낌을 줍니다. 아직 추위가 가시지 않은 겨울에 피는 아몬드 나무를 그리며 갓 태어난 조카를 축복하는 마음으로 온 마음을 다 해 부드럽게 붓질을 했겠지요.

 감옥 같은 병원에서 나오기를 바라는 형을 위해 테오는 그해 5월 정신과 의사 가셰 박사가 있는 파리 근교 오베르 쉬르 우아즈에 거처를 마련해줍니다. 가셰 박사에게 상담도 받고 친구처럼 지냈지만 당신은 여전히 동굴 속에 갇혀 있었나봅니다. 여기서 지내는 두 달, 정확히 67일 동안 당신은 아침 6시부터 저녁 늦게까지 그림을 그려 70여 점의 유화와 20여 점의 데생을 남겼지요. 죽음을 향해 달리는 기차처럼, 그림을 그리는 것만이 병을 이기는 방법이라고 생각했을까요. 영양실조로 이가 여러 개 빠지기도 했고 손에 붓을 쥐기도 힘들 정도로 마비가 오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림에 대한 열정도, 새 생명에 대한 사랑도 세상에 대한 원망과 분노, 병과 가난을 넘지 못했나봅니다. 당신은 1890년 7월 27일, 뜨거운 여름 한 낮, 그림을 그리러 이젤을 지고 올라갔던  <까마귀가 나는 밀밭>을 그린 장소에서 가슴에 방아쇠를 당겼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죽음에도 서툴렀습니다. <까마귀가 나는 밀밭> 에서는 자살 직전 불안했던 마음 상태가 드러난 듯 검은 까마귀들이 정신없이 낮게 날고 있습니다.

 오베르 쉬르 우와즈 신부가 자살했다는 이유로 장례를 주관해주지 않아 동생 테오와 친구 몇이 모인 조촐한 장례식에서 가셰 박사가 조사를 읽었다지요. ‘그는 정직한 인간이자 위대한 예술가였습니다. 그는 어느 누구보다도 미술을 사랑했습니다. 미술은 영원히 그를 살게 할 것’이라구요.

 5년 전 오베르 쉬르 우아즈에서 당신의 묘지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습니다. 당신을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이 성지 순례지처럼 그곳을 찾아오기 때문이지요. 공동묘지 제일 가장자리 벽에 붙어 한가한 느낌을 주었습니다. 참으로 초라했지만 외진 곳에 있어 세상의 쓸모없는 소란스러움에서 벗어나 있는 듯 했습니다. 묘비명도, 십자가도 없이 이름과 생몰연도만 적혀있는 아주 작은 비석이 당신이 어떤 죽음을 맞이했는지, 지상에서 어떤 대접을 받았는지 알려주는 듯 해 한없이 쓸쓸했지만 그 또한 인생의 본질이 아니던가요.

 당신은 테오가 보내준 돈으로 생활을 하며 그린 그림을 동생과의 공동작품으로 여겼다지요. 당신의 작품들은 테오에게로, 당신이 죽은 지 6개월 후 테오가 세상을 떠나자 그 아내 요한나에게로, 그 아내마저 죽자 당신이 그리도 사랑했던, 이름을 물려받았던 조카 빈센트 반 고흐에게 상속되었지요.

 당신에게는 늘 천재 미술가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닙니다. 세상은 어리석어 천재를 몰라보았을까요? 정규 미술교육을 받지 않아 세상의 화법(畵法)을 따르지 않은 당신 그림을 세상은 너무도 몰라주었습니다. 감자 세 알도 살 수 없었던 그림 한 점이 천억 원에 팔리고, 고향 네델란드 미술관에서는 당신의 그림을 보려고 세계 각국에서 모여든 사람들이 아침부터 줄을 서는 것을 하늘에서 본다면 어떤 기분일까요?


 한국에 돌아와 당신이 앉았던 밀짚의자를 꿈에서 보았어요. 꿈속에서도 마음이 아팠습니다. 내가 동시대에 살았더라면 당신을 사랑할 수 있었을까요. ‘그의 영혼에는 커다란 난로가 있다. 아무도 이 난로에 불을 지피러 오지 않는다. 행인들은 굴뚝위로 퍼지는 연기만 조금 바라볼 따름이다. 그리고 저마다 제 갈 길을 간다. 자, 어찌할 것인가?’라고 당신은 묻고 있습니다. 어쩌면 나 역시 난로에 불을 지피지 않고 제 갈 길을 갔겠지요. 눈물이 흐르네요.

 기념품점에서 사온 ‘밤의 카페 테라스’ 머그잔에 커피를 따르고 ‘아몬드 나무’ 안경집에서 돋보기를 꺼내 당신의 화집을 펼칩니다. 별이 빛나는, 별이 빛나는 밤(Starry, Starry Night) 노래 구절이 입가에 맵돕니다.

 더러운 것이 가라앉아 정화된 듯한, 그 어떤 평온한 느낌이 축복처럼 마음에 퍼집니다. 당신의 난로, 참 따뜻하네요. 고마워요. 불우(不遇)했지만 불후(不朽)한 빈 ? 센 ? 트, 당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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