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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원을 말해봐    
글쓴이 : 장정옥    15-07-28 23:45    조회 : 6,801

소원을 말해봐

                                                                                                                                                                  장정옥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지만 나의 소원은 코피한번 터져보는 것이다.

어머니는 학교에서 오자마자 집에서 기르던 해피와 함께 들판을 뛰어다니는 날 보고 건강은 걱정이 없다고 했다. 하얀 얼굴에 작고 예쁜 목소리를 지닌 언니는 걸핏하면 코피가 났다. 어머니는 언니 도시락에만 계란프라이를 넣어주었고 나는 아침마다 거울을 들여다보며 내 코를 주시했다. 한번은 세수하다가 새끼손가락으로 콧구멍을 호되게 찔렀는데(정말 실수였다.) 내 코는 끄떡도 없었다. 얼얼한 아픔만 남긴 채 그날도 계란은 언니차지가 됐다. 기다리던 코피대신 눈물이 나오는 바람에 아침 댓바람부터 질질 짠다고 지청구만 먹었다.

나이는 한 살 많지만 학교는 동급생인 육촌이 있다. 한 동네에 같이 살아서 사촌보다 더 가까운 사이다. 그 아이는 걸핏하면 배가 아프다는 이유로 밥을 안 먹었다. 그러면 아주머니는 계란찜이나 소시지반찬을 밥숟갈위에 얹어 주었다. 그 모습을 보고 나도 집에 와서 배가 아파서 입맛이 없다고 했더니 한 끼 굶으면 낫는다고 그냥 자라고 한다. 그날 밤 오빠가 슬쩍 건네준 고소한 옥수수 빵 반쪽이 아니었으면 배고파서 잠도 못 잤을 터이다. 그 뒤로 다시는 배 아프다는 말은 안했다. 사실 아픈 적도 없다.

여중생시절, 강한 햇볕이 내리쬐는 날 교장선생님의 훈화가 시작되고 나서 정확히 숫자 열을 셀 즈음이면 내 짝은 으레 얼굴이 하얘지면서 운동장에 주저앉았다. 그러면 담임은 나를 향해 그 친구를 양호실로 업고가라 했다. 나도 등에 식은땀이 흐르고 머리가 띵한데 그냥 데려가라는 것도 아니고 업고가라니. 속에서 울컥 치밀어 오르는 것을 삼키며 그 애를 업었다. 그땐 정말 내 등에 업히는 친구가 미웠는데 쓰러져 정신을 잃은 애답지 않게 잘도 업혔다. 그보다 더 나를 슬프게 한 것은 양호실에 데려다 두고 다시 오라는 선생님의 두 번째 말씀이다. 업고 가느라 힘들 텐데 거기서 좀 쉬게 하면 어때서.

그럴 수만 있다면 어느 누가 하늘거리는 코스모스 같은 여자이고 싶지 않겠는가. 나 역시 선택하라면 당연히 보호본능을 일으키는 모습을 택할 것이다. 오죽하면 대신 무거운 것을 들어주는 남자에게 시집을 갔겠는가.

피부가 하얗고 목소리 작고 행동이 느린 여자는 나의 꿈이었다. 굳이 꿈이었다고 말하는 이유는 이미 튼튼해 보이는 골격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큰 목소리에 행동이 빠른 내가 건강해 보이는 육체로 인해 당한 불이익은 수도 없이 많다.

봉사활동 중 식사 시간을 놓쳐 기력이 없는 나를 향해 건강해보여서 부럽다고 한다. 지금 배가고파 쓰러질 지경이라고 하는데도 힘이 넘쳐 보인단다. 바로 옆에서는 목소리 작고 버드나무가지 같은 낭창한 몸에 행동도 느린 한 분이 연신 김밥을 오물거리며 아주 천천히 먹고 있다. 사실 그 분은 봉사시간도 늦었고 무엇 하나 끝내는 일 없이 이리저리 왔다갔다만 하던 사람이다. 그런데도 앞 사람은 그 분에게 그렇게 조금 먹어서 어떻게 일을 하냐며 김밥 한 줄을 더 건넨다. 나는 아직 한 토막도 못 먹었는데.

어디서고 감싸주고 싶은 여자의 모습으로 나를 대하는 곳은 없는가보다. 속에서 서운함이 밀려왔다. 입에 김밥 하나를 막 집어넣자 갑자기 울컥하더니 뜨거운 것이 쏟아졌다. 분명히 그랬다. 앞 사람이 호들갑을 떨며 ‘코피다’ 소리치며 휴지, 휴지를 외쳐댔다. 나는 깜짝 놀라 코를 손으로 막았다. 앞 사람은 휴지를 손에 둘둘 말아 코를 향해 다가왔고 나는 멈칫했다. 그래도 앞 사람의 손은 멈칫거림 없이 코를 틀어막았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건 내 코가 아니었다. 수양버들 같은 작은 목소리를 가진 그 분, 김밥을 깨작째작(순전히 내 개인적 생각) 먹던 그 분의 코에서 빨간 피가 주룩 흘러내린 것이다. 여러 사람이 모여들어 옆 사람의 코를 휴지로 틀어막고 고개를 뒤로 한껏 저치며 ‘너무 힘들었나봐’를 연발한다. 어서 누워 쉬라며 자리를 치우는 호들갑이 벌어졌다.

아~ 이건 뭐. 진짜로 머리가 띵하고 맥이 빠져버렸다. 밥 때도 놓치며 어깨가 아프도록 그렇게 열심히 했건만. 나는 왜 코피도 안 나는지. 내게도 코피를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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