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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본 크리스마스트리    
글쓴이 : 소지연    15-12-27 11:35    조회 : 5,636

                                                                                                              

                                                   내가 본 크리스마스트리

                                                                                                                                                                                                  

 한 해의 마지막 밤은 머뭇거리는데, 새해 아침은 눈치도 없이 기웃거린다. 때때로 불청객인 그들은 성탄절이라는 손님 하나를 앞세우고 온다. 빌딩들이 현란한 옷을 입고 선물 꾸러미를 든 발걸음이 빨라질 때면, 우리네 마루 한 편에 크리스마스트리없는 저녁은 썰렁하리라.

 “탄일종이......”

 희미한 노랫가락이 눈 속에 울려 퍼지던 그 밤에, 우르르 골목으로 뛰어 나간 아이들은 곱은 손을 불며 돌아오곤 했다. 감기는 눈꺼풀을 찬물로 누르며 대문을 두드리는 고요한 밤을 듣고서야 잠속에 들었다. 녹색의 소나무가지를 타고 오는 하얀 산타를 꿈꾸던 그 시간, 기적을 향한 첫 꿈은 시작되었나 보다.

 내 기억속의 어린 시절엔 크리스마스트리를 차린 집이 흔치 않았다. 예배당이나 시청 같은 건물 앞에 세워진 피라밋 모양의 구조물 앞에서 소년 소녀들은 두 손을 마주 하고 눈을 감곤 했다. 그때 기껏 빌었던 소원이래야, 색연필이나 벙어리장갑 같은 것들이었지만, 대문 밖으로 달려 나간 삽살개가 길을 잃지 않고 돌아오길 기도 한 적도 있다.

  어느 날, 아이들은 트리만큼 큰 키로 자라났고 반역은 시작되었다. 산타의 허구를 일찌감치 알아차린 그들은 갖고 싶은 것을 키워 갔을 뿐, 기도는 잃어버리고 있었다. 크리스마스트리는 이제 작은 기적을 향한 꿈의 터가 아니라 누군가가 알아서 차려주는 선물 밭이 되고 있었다. 나의 한창 주부시절도 예외는 아니었다. 열대의 나라, 필리핀의 성탄절은 눈이 없이도 성탄 분위기를 만끽했다. 서른 살 이주하던 해에 만난 크리스마스트리는 시월서부터 이집 저 집 당당히도 서 있었다. 플라스틱(plastic) 가지위엔 꼬마전구들이 불을 뿜어대고, 여백이 보이지 않게 매달린 크고 작은 오나멘트(ornament) 들로 나무는 겨우 제 몸을 가누고 있었다. 어느 샌가 익숙지 않았던 나도 질세라 하나 가득 채우곤 했다. 인생은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도 위안을 받는 것이던가. 자꾸만 다른 장식으로 더 많이 매달아 보는 동안 트리가 얼마나 팔이 아플지는 생각해 보지 못했다. 세상을 향한 염원만 뻗어나가, 때로는 어이없는 기적을 바라기도 했다.

  누구든 크리스마스트리를 연상하면 가슴은 두근거리리라. 새벽을 기다리는 성탄절 전야의 설렘이란, 설령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해도 행복 그 자체이다. 몇 해 전 유 튜브( You Tube)가 실어 준 한 동영상은 토론토 공항의 크리스마스트리에서 야기된 소박한 축제 하나를 소개하고 있었다. 성탄 전야에 웨스트 제트( West Jet)’ 항공 탑승을 기다리던 승객들은 받고 싶은 선물의 목록을 앙케트 받는다. 그들은 하루 산타 역을 하고 있는 한 남자의 제스처에 무심히 동참할 뿐, 별다른 의미는 두고 있지 않는 듯하다. 이튿날 목적지의 새벽 공항, 카르셀(carrousel) 앞에서 짐이 내려오기 시작 할 때였다. 갑자기 여기저기에서 탄성이 터지기 시작했다. 제일 먼저 내려온 짐들은 소원을 말한 이들이 수취인으로 된 패키지(package) 들이었다. ‘여러분의 산타가 발신인인 크리스마스 선물이 도착한 것이었다. 싱글남의 양말 한 켤레 다음으로 커다란 화면의 텔레비전 한 대도 내려왔다. 농담처럼 텔레비전을 써냈던 한 커플은 자신들의 눈을 의심했다. 이 모든 것은 크리스마스 위시(wish)를 모니터로 체크한 항공사 직원들이, 밤새 물품을 구매하여 일착으로 내리게 한 때문이었다.

  “메리 크리스마스 여러분! 원하는 꿈은 이루어집니다.”

  어디선가 귀에 익은 산타의 목소리가 공항 안에 울렸다. 여행길에 수령한 예상치 못한 선물로 승객들은 잠시 자신들의 집에 차려진 크리스마스트리를 잊었으리라. 공항 로비에서 시작된 놀라운 발상, 그것은 시들한 어물전에서 때아니게 건진 싱싱한 물고기와 같은 기적이었다. 명절 하루만이라도 승객과 소통하려 했던 한 항공사의 짝사랑이, 전파를 타고 흘러 와 어물쩍하던 내 성탄절에 불을 지폈다.

  그리고 보니 고국으로 이삿짐이 온 날, 먼지 벤 내 크리스마스트리도 따라 와 있었다. 사계절 무더위 속에 번개처럼 흘려보낸 젊은 날의 추억과 더불어, 갖가지 크리스마스 장식들도 함께 왔다. 간소화는 부르짖으면서 아직도 나는 물질을 이고 다니는 번거로움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셈이다. 오래된 악습은 물러가는 데에도 시간이 필요했던 것일까

 주인의 거주지와 라이프스타일이 바뀌니 트리마저 안절부절 못했나 보다. 차츰 삼단으로 된 내 크리스마스트리는 이단으로 줄어들었고 어느 날인가는 아래 칸만 휭 하니 남더니 그 나마도 자연스레 사라졌다. 간수하기도 수월하진 않았겠지만, 아직도 남은 가지에 매달려야할 낡은 욕망들이 이제는 스스로 구차스러워 했기 때문이다. 신기한 동영상 한편을 본 그 겨울. 목각으로 된 장식용 트리 하나를 찾아 놓았다가 새해 아침 그 마저 살포시 내려놓은 것은, 해마다 정월이 다 가도록 늘어 뜨려야 했던 묵은 의미들이 그만 식상해진 탓 일게다. 어느 동양 철학자의 말에 의하면 인간의 역사는 몸을 돌보는 시기와 마음을 가꾸는 시기를 번갈아 맞이해 왔다고 한다. 물질에의 향연이 포화상태일 즈음 철학에 눈을 뜨게 된다는 뜻이기도 했다. 이듬해 봄 뒤늦게나마 글 한편을 써야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기대치 않았던 선물을 매개로 의미가 탄생하던 그 때 그 동영상처럼, 내 마음은 한결 새로워졌다.

  지금은 옛 시청 앞에 서 있던 키 큰 트리나 더운 나라의 정열적인 트리, 또한 조그맣게 퇴화해가던 이즈음의 트리가 모두 눈앞에 없어 나를 자유롭게 한다. 그럼에도 섭섭지 않은 것은, 눈을 감으면 어린 시절 꿈속에서 보았던 늘 푸른 소나무 한 그루가 새로운 옷을 입고 다가오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동화같이 아름답지 않아도 좋다. 분에 넘치게 화려하거나 거대할 필요는 더 더욱 없다. 이제 막 매달아 가꾸어 볼만한, 한 번도 꾸어보지 못한 꿈을 키워 갈 수 있다면 딱 좋으리라. 언젠가는 거기에서 나올 아주 작은 미러클을 믿어보리니…….

 소나무여! 그리운 크리스마스트리여!

                                                                                        << 한국산문>> 20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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